감정 연구 - 따뜻하고 친근한 감정의 힘
권택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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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영 교수의 ‘감정 연구’는 뇌과학의 최신 성과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및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등을 근거로 감정과 느낌, 공감, 소통 등에 대해 논한 책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윌리엄 제임스의 동생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등의 작품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새로운 해석을 많이 포함해 눈길을 끈다.

 

책을 수월히 읽으려면 우선 감정과 느낌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감정(emotion)은 외부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이고 느낌(feeling)은 인지(認知)다. 감정이 먼저 몸을 통해 나타나고 의식은 그 후 그 감정을 느낀다.(12 페이지) 즉각적 몸의 반응이 감정이고, 그것을 학습을 거쳐 예측하고 인지하는 것이 느낌이기에 느낌은 인지와 거의 같으며 착오를 불러일으킨다.(112 페이지)

 

의식이 진화한 인간에게는 동물처럼 단순하고 즉각적인 몸의 반응과 더불어 더 높은 차원의 느낌이 작용한다.(39 페이지) 감정은 전두엽에 연결된다. 그래서 기억뿐 아니라 학습, 인지. 판단 등 뇌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사랑이 감정이고 동시에 생각이며 가치 판단이란 의미다.(128 페이지) 사랑은 자의식이고 기억하는 모든 것(14 페이지)이고 감정이면서 동시에 필링 즉 느낌이다.(29 페이지)

 

궁금한 것은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이란 감정과 사랑이란 느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강할까, 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녀 사이의 사랑이 오래가려면 에로스(성적 사랑)만으로는 안 되고 필리아(우정)만으로도 안 된다. 치열한 열정으로 시작하여 때로는 우정처럼 함께 다투면서도 이해하고, 부모의 사랑처럼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가장 높은 신의 사랑을 언젠가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물론 가장 밑바닥에 있으면서 가장 오래된 에로스의 위력이 녹록지 않기에 이런 조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31 페이지)

 

중요한 점은 감정은 힘이 세다는 점이다. 진화한 인간은 가장 강한 동물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취약한 동물이기도 하다.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것이 감정이다. 감정이 많고 세분화될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며 그런 만큼 생존력이 높아진다.(29 페이지) 감정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유기체의 생명 본능(207 페이지)이고 유기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외적 자극에 대응하는 내적 반응(232 페이지)이다.

 

인간에게도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 주로 뇌의 아랫 부분에서 감정을 저장하고 몸으로 반응하는 과정이 일어나지만 해마가 진화하여 서사적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과 배움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기능은 뇌의 상부에서 주로 맡는데 하부와 상부의 뉴런들은 상호 접촉하고 소통한다. 이때 하부와 상부를 중계하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은 변연계다. 두려움은 모든 동물에게 있지만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불안심리가 있고 뇌의 상하균형이 깨질 경우 질병(anxiety disorder)이 된다.(39 페이지)

 

중요한 점은 뇌의 상부가 손상되면 생명은 유지할 수 있지만 하부가 손상되면 생명 그 자체를 잃는다는 점이다.(123 페이지) 뇌의 상부와 하부의 대조적인 면처럼 우뇌와 좌뇌의 대조적인 면도 흥미롭다. 우리는 우뇌보다 좌뇌를 중시하지만 우뇌가 손상되면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한다. 좌뇌는 사물의 부분만을 본다.(309 페이지) 감정은 기억의 저장에도 영향을 준다. 뇌 안에서 감정을 수용하여 의식에 전달하는 편도체는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와 붙어 있기 때문이다.(205 페이지)

 

의식은 감정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완벽한 해결은 없고 타협이 있을 뿐이다.(45 페이지) 이 부분에서 이성과 감정의 관계를 철학자들의 대립(?)을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립이라 했지만 저자에 의하면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성에 감정으로 저항했고 니체는 칸트의 이성에 감정으로 반발했다.(23 페이지) 스피노자가 감정을 이성보다 열등하게 보았던 당대의 주류 사상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감정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은 대단히 뇌과학적이다.(181 페이지)

 

스피노자는 감정을 인지와 구별하지 않았다. 둘은 하나의 살아 있는 실체이자 우리를 움직이는 에너지이며 생명의 근원인 신이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마음에서도 일어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몸에서도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몸과 영혼을 분리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자세히 나눠 긴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가 욕망이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느낌,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25 페이지)

 

책의 1/ 3 지점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대립을 목도한다. 그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윌리엄 제임스의 대립이다. 프로이트는 상처를 주는 말이나 사건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믿어 평생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상흔을 치유하려 했는가 하면 제임스는 따스함과 치밀함을 가진 사건이나 말이 더 잘 기억된다고 보았다.(122 페이지) 저자는 두 심리학자의 말이 다 옳다고 판정하면서도 영리한 뇌는 생명을 위해 힘들고 아픈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하도록 만들었다는 말을 더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도 흥미롭다. 플라톤은 극(劇)이 관중의 감정을 흔들어 공화국 건설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을 통해 극이 왜 필요한지 우회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감정이란 억압하면 제거되지 않고 한꺼번에 폭발하기에 살살 달래어 정화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 감정 게임의 절정이 그 유명한 카타르시스다. 이 단어는 원래 몸 안의 나쁜 내용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용어였다.(137 페이지) 저자는 감정이 이렇게 중요하거늘 왜 지금껏 감정을 억압하고 인지와 판단을 더 높이라고 말해왔는가, 의문을 제기한다.(46 페이지)

 

저자는 감정을 억누르면 이성이 활동할 것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느낌이 이미 판단을 내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8 페이지) 저자가 “자주 끌어들이는” 학자가 있다. 윌리엄 제임스가 당사자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의 통찰이 최근 뇌과학자들에 의해 그대로 증명되기 때문이다.(180 페이지)

 

윌리엄 제임스는 “한 인간의 자아는 그가 그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총 합산이다. 그의 몸과 심리적 강도뿐 아니라 옷과 집, 아내와 아이들, 그의 조상과 친구들, 명성과 직업, 그가 소유한 땅과 말, 그리고 심지어는 요트와 은행 수표까지 포함된다. 이 모든 물질이 그에게 같은 감정을 부여한다.”고 말했다.(49 페이지) 한 인간이 물질과 상관 없이 순수한 개체로 존재한다고 믿고 가르쳐온 초월적 자아는 없고 영혼과 몸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가치와 물질이 그의 의식을 구성한다는 의미다.

 

윌리엄 제임스는 1884년에 쓴 ’감정이란 무엇인가‘에서 (슬퍼서 우는 것이고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울기에 슬프고 웃기에 행복하다고 말했다.(126 페이지) 행동이 일어난 뒤 인지가 발생한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가설은 최근 뇌과학을 통해 진실로 밝혀지고 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현상학과 심리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 가운데 베르그송이 있다.(73 페이지) 베르그송은 기억을 현실에서는 접근 불가능한 순수기억, 습관적 기억 즉 몸의 기억,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회상 혹은 삽화적 기억인 이미지 기억으로 나누었다.(72 페이지)

 

베르그송이 기억을 이미지 기억으로 부른 것은 우리 뇌가 과거의 사실을 현재 입장에서 이미지화하여 떠올린다는 의미다.(80 페이지) 이는 감정과 느낌은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기에 어떤 대상에 대한 고정불변의 절대적 감정이나 판단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런 만큼 대상에 대한 감정과 인지는 주관적인데 이는 대상도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53 페이지)이라는 말과 함께 보아야 할 말이다.

 

전두엽 이야기를 하자. 나의 전두엽은 시간과 장소의 영향에 따라 계속 변모하는 경험들을 저장하고 인출한다. 이것이 컴퓨터와 다른 점이다.(148 페이지) 뇌의 이런 특성이 무한한 상상력과 독창성의 원천이다.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내 느낌이 존재하기에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감정과 인지가 달라진다(151 페이지)는 말도 가능하다. 많은 뇌과학자들이 동의하듯 진화는 최선의 대응을 위해 현재를 중시한다. 과거를 위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최선으로 대응하기 위해 회상하는 것이다.(155 페이지) 이런 것을 전이(轉移)라 한다. 컴퓨터는 뇌와 달리 전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경험을 저장하는 전두엽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해마에 의해 업데이트된 자료들을 내놓는다. 그리고 경험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해마는 옆에 붙은 편도체의 영향을 받는다. 편도체는 주로 하부로부터 온몸의 반응인 감정을 기억하여 상부로 전달하는 변연계의 일부다. 해마는 현재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 그러므로 주로 이들의 합작에 의해 저장된 과거는 언제나 현재 입장에서 재해석된다. 시간은 과거를 연결하는 이 서사적 기억에 의해 태어난다.

 

이것이 의식의 진화다. 이때 의식은 나라는 자의식이다. 여느 동물들과 달리 나의 경험, 나의 과거, 나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나의 시간이고 주관적이다. 그런데 자의식은 개인의 의식이면서 동시에 사회 의식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약속이 함께 작용한다. 시계와 달력이 필요하고 이로써 내가 감지하는 시간은 달력이나 시계처럼 규칙적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계적 시간과 다르게 간다.(167, 168 페이지)

 

프로이트 이야기가 재미 있게 다가온다. 저자는 그를 아주 오랫동안 연구했음에도 왠일인지 그의 말을 자꾸 오해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프로이트의 억압은 의식 안에 무의식이 위장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억압된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된 뜻이다. 무의식을 억압해야 한다는 의미가 이니라는 말이다.(140 페이지) 자아가 현실을 대변하고 초자아가 강력한 이드의 대변자(223 페이지)라는 말도 그렇다. 이는 프로이트의 말이다. 프로이트의 글에서 중요한 것은 초자아가 이드의 변형이라는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뇌 구조를 연상시키는 구조의 책이라는 설명도 흥미롭다. 파충류에서 시작하여 포유류를 거쳐 인간의 뇌에 이르는 진화의 단계처럼 ‘월든’은 먹고 잘 곳을 마련하는 몸과 물질의 요구에서 정신과 우주의 깊이를 탐색하는 상승구조의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인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연의 일부인 파충류의 생명 보전 욕구가 강력하게 남아 있다. 소로는 “나 자신의 일부분이 그 잎사귀이며 식물의 부식토”라는 말을 했다.

 

이런 새로움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그림에 대한 해석 부분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그림은 당연히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것이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화폭에 파이프를 담은 그림이다. 우리가 실제 파이프로부터 보는 것은 깊이감(입방체)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렇게 저장된 경험의 눈으로 그림에 없는 것을 본다. 그림 속 파이프가 실체가 아닌 재현(된 것)이라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싱겁다.(146 페이지)

 

저자는 예술을 생명을 보존하는 항상성의 뿌리로 정의한다.(141 페이지) 18개월 이후 자의식이 생기고 사회화가 시작되기 전 몸의 기억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는 유아기 망각에서 망각은 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상이라는 기능을 얻으면서 지워진 것일뿐 몸의 기억으로 더 오래 남는다는 의미다.(309 페이지)

 

예술 작품이 꽉 막힌 감정을 흐르게 하여 재조정하고 균형을 취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을 준다는 에른스트 크리스의 견해가 후에 항상성의 원리로 발전했다.(267 페이지) 에른스트 크리스는 프로이트가 생전에 출판하지 않은 중요한 글인 ‘과학적 심리학에 관한 연구’(1895년)를 발견해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1950년대)한 사람이다.

 

몸이 느끼고 의식이 판단한 결과로 얻는 지혜인 공감은 뇌와 심리학을 연결하는 가장 유용한 고급 개념이다.(311 페이지) 그토록 오랜 시간 예술이 지속된 이유는 공감의 효력 때문이다. 공감이라는 개념을 음미하게 된다. 덧붙여 기계와 다른 인간의 특성(스스로 경험하고 실수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란 개념도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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