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 서평을 써 게시했다. “새로운 삶은 그저 나의 길을 함께 가며 웃는 것, 비극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운명과 자유의 놀이터다.“란 글을 인용한 뒤 영성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눈뜨게 해준 김화영(金華永; 김리아로 개명) 님께 감사드린다는 말로 마무리한 서평이었다. 저자께서 이 서평을 읽으시고 당신의 다른 책(’영성, 삶으로 풀어내기‘)을 보내주셨다.
아침 유튜브를 통해서는 다니엘 밀리오레의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의 중요 부분을 전해 받았다. 기독교적 믿음은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생각하는 신앙이고, 기독교적 소망은 피상적 낙관이 아니라 기초가 튼튼한 소망이며, 기독교적 사랑은 낭만적 순진함이 아니라 두 눈을 활짝 뜨고 빈틈 없이 살피는 사랑이라는 말이 와닿았다.(신앙이어야 하고, 튼튼한 사랑이어야 하며, 살피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질문하지 않는 신앙은 이데올로기, 자기도취, 열광주의, 미신, 우상숭배로 전락하게 된다는 지적도 좋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말은 인간의 진정한 삶이 중단되는 이유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는 용기가 없어서란 말이다. 모두 독특하게 사유하려는 진지한 고민이 엿보이는 말들이다. 다소 마음이 평안해졌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