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가 지났다. 설, 한식, 추석과 함께 우리의 4대 명절로 꼽히는 절기가 동지다. 조선은 어땠을까? 태조실록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동지를 맞이하여 중국의 황제 있는 곳을 향하여 축하의식을 갖고 신하들의 하례를 받다."
중국 황제 있는 곳을 향하였다는 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있다. 화양서원이다. 우암 송시열을 모신 충북 괴산의 사당이다. 이곳이 특징적인 것은 남향이 아닌 북향을 취했기 때문이다. 명나라에 대한 충절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배치다.
특정한 날에 중국을 향해 의식을 치르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중국을 바라보도록 건물을 설계한 것이다. 동지가 4대 명절의 하나인 이유는 길고 길었던 겨울의 어둠이 조금씩 줄어드는 시점일이어서 희망을 떠올리기에 마땅하기 때문이다.
태종실록에는 동지이기에 임금이 문소전(文昭殿)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는 구절이 있다. 문소전은 경복궁에 조성된 태조의 첫 번째 비 신의왕후 한씨의 사당이다. 그러니 태종이 어머니 사당에 나아가 참배한 것이다. 태종실록에는 동지는 양(陽)의 기운이 생기는 날이고 군자가 즐거워하는 날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우리가 따뜻한 겨울을 염려하듯 당시에도 날씨 걱정을 했다. "이미 동지(冬至)를 지났으므로 마땅히 추워야 할 터인데도 따뜻하고 마땅히 눈이 와야 할 터인데도 비가 오니 음양(陰陽)이 어긋나는데 어찌 감응(感應)을 부른 바가 없겠습니다?”(성종실록), “요즈음 일기가 불순하여 동지(冬至)가 지나도 기후가 봄과 같고 장마가 멎지 않습니다. 가을 장마도 좋지 않은 것인데 하물며 겨울 장마이겠습니까?....임금이 하늘을 받들어 대함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하다면 어찌 천변이 있겠습니까?”(중종실록)
나이 때문인지 성탄이 온 것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 동지(冬至)가 지난 것이다. 겨울이 아직도 적어도 한 달 이상 남았지만 동지가 지났으니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은 목소리로 축 성탄(聖誕)이라는 말을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