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총애하던 정조 사후 6년이 지난 1806년부터 1824년까지 정치적 위험을 피해 18년의 자발적 유배 시간을 보낸 풍석(楓石) 서유구는 자신을 다섯 가지를 낭비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오비거사(五費居士)라 칭했다.
그가 낭비했다고 말한 다섯 가지는 1. 젊어서 공부한 시간, 2. 출사해 규장각 각신으로 보낸 시간, 3. 집안이 몰락해 향촌에서 농사와 농학에 매진한 시간, 4. 조정에 다시 불려가 벼슬한 시간, 5. 임원경제지를 편찬한 시간 등이다.
겸양의 말이 아니라 후학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기 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그 이전에 치열하고 성실하게 삶을 살았던 서유구에게도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겠다고 생각할 단서가 아닐까 싶다.
정약용보다 두 살 어린 서유구는 정조가 초계문신들에게 시경(詩經)에서 문제를 내 답을 제출하게 했을 때 두각을 나타냈다. 579 문제에서 서유구가 제시한 답은 181개가 채택되었고 정약용이 제시한 답은 117개가 채택되었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의 요리편의 이름을 정조지(鼎俎志)로 정했다. 서유구는 정(鼎; 솥)과 조(俎; 도마)가 요리 도구이지만 고대부터 희생(犧牲) 제물을 담던 제기였다는 점에 착안을 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여러 한자에 제사의 의미가 있다. 예(禮)는 제사상을 풍성하게 차린 것을 의미하고 특(特)은 특별하다는 뜻 외에 제사에 바치는 희생(犧牲; 제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재상을 뜻하는 재(宰)에는 저민 고기의 의미가 있다.
봉선(封禪)에서 봉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하고 선은 땅에 제사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약체상증(礿禘嘗烝)에서 약은 봄 제사, 체는 여름 제사, 상은 가을 제사, 증은 겨울 제사를 이른다.
제사가 참 세분화, 전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유구는 정조(鼎俎)와 제기(祭器)를 연결지어 무슨 말을 하려한 것일까? 향을 피워 혼(魂)을 부르고 울창주(鬱鬯酒)를 부어 백(魄)을 부르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만끽할 수 없을 고대 제사의 세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