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 水>을 상징하는 감괘가 겹친 중수감(重水坎)은 내가 좋아하는 괘다. 엎친 데 덮친 격의 어려움을 의미하지만 소성괘의 가운데에 양효가 자리하고 위아래에 음효가 자리한 것이 대칭이어서 좋아보이는데다가 그런 소성괘 두 개가 위아래로 배치된 정연한 질서의 괘이기 때문이다.
이 괘의 육사(六四; 네 번째 음효)는 납약자유(納約自牖)다. 어두움(어려움)에 처해 스스로 창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周易)이란 인간사의 변화상을 64개의 괘(384효)로 코드화한 텍스트다. 다른 책들도 인간사의 여러 국면을 말하지만 집중적으로 변화에 초점을 맞춘 책은 주역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주역의 경고에 귀를 닫았다.”는 말은 “그는 인생의 경고에 귀를 닫았다.”는 문장으로 고쳐도 좋으리라.(어기서 말하는 그는 연산군이다.) 어떻든 납약자유(納約自牖)란 구절을 읽다가 스스로 창문을 만든다는 의미의 자유(自牖)는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의미의 자유(自由)가 아닌가, 란 생각을 했다.
요즘 내 심정이기도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지금까지 참 자유롭게 지냈으면서도 실로 그 소중함을 몰랐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모두 깨달음은 이미 넘치게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