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전공하지 않아서이거나 못해서이겠지만 세종은 내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왕이다. 하기야 전공자가 아니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라면 정조도, 성종도, 중종도 관심 밖에 두어야 옳으리라. 정조에 대해 집중하느라 그랬다고 볼 수도 없다. 정조에 대해 정통하지도 못했으니 면목이 없거니와 공부는 두루 하는 것이 옳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하겠다.
본질이라 하기 어려운 '여진족인 태조의 후손'이라는 이슈, 과학기술이란 이슈 정도에 집중 했을 뿐 세종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것은 문화해설을 하는 입장으로 변명의 여지 없이 부끄러운 일이자 위험한 일이다. 물론 세종을 천문학, 음악 등의 키워드로 언젠가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사실 조금씩이라도 읽어야 후에 고생하지 않을 것이다. '후에 제대로'란 말은 불성실한 공부를 의식한 수사(修辭)인지도 모른다.
최근 내가 사는 연천에 뒤늦게 관심을 기울이는 나는 오늘 (중고를 파는 오프라인 매장인) 알라딘에 나온 박현모 교수의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를 구입했다. 종로 알라딘으로 건너오기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석제 저자의 '세종이 꿈꾼 나라'를 읽다가 가사평, 송절원, 불로지산(佛老只山), 거여평, 부로지산(夫老只山) 등의 연천의 주요 지명들이 강무(講武)와 관련해 언급된 것을 확인했다.
연천이 세종의 강무가 펼쳐진 곳이라는 말은 얼마전에 들어 알고 있었다. 단 그저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러던 중 오늘 종로 알라딘에서 박현모 교수의 책에서 세종이 강무를 지나치게 거행했다는 내용을 접했다.(강무는 사냥을 겸한 군사훈련이다.)
비판도 지지도 아닌 있는 그대로 읽되 연천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단서를 얻는다면 좋겠다. 박현모 교수의 책을 산 것은 이런 점 외에도 세종의 아버지 태종을 비롯 황희, 박연, 정인지, 김종서 등의 신하와 세종과 비교되는 군사(君師) 정조 등 아홉 사람이 본 세종을 기록한 책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어서였다. 기획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요즘 나는 이렇게 충동 구매의 대책 없음을 자탄(自嘆)하는 마음으로 책을 살 이유를 스스로 몇 가지는 제시할 수 있어야 중고일망정 구입하자고 다짐하고 있다.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송파(松坡)에 이어 광진(廣津)을 해설하게 되었는데 그간의 조선사 위주의 공부를 지양하고 고구려, 백제 등의 역사를 익힐 기회라 생각한다.
고구려는 내가 사는 연천의 호로고루와 임진강을 통해서도 익히고 있다. 그간 조선사에 다소 소홀해 세종을 읽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종은 정통성 없이 (반정으로) 왕이 된 까닭에 타개책으로 성리학과 사림을 택했다는 임자헌 님의 설명을 듣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요즘 지치고 힘들어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지만 한국사는 그런대로 쉽게 읽고 있다.
귀신을 잔뜩 싣고 다닌다는 의미의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란 말로 죽은 사람들을 잔뜩 나열하는 시(詩)를 조롱했던 이규보의 비판의식을 역사서 읽기에 비추어 보아야 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쉽게 읽히지만 역사서 읽기는 어렵다. 우리 역사서를 읽으면 조선이나 고려, 삼국 등의 인물들 이야기를 많이 인용하고 현대서를 읽으면 서양 사람들 인용 빈도가 높은 것이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책을 잘 안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어휘력이 초라해짐이 느껴지고 문제의식이 사라지거나 엉성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니 인용 빈도가 높은 것을 우려하지 말고 열심히 읽되 내가 공들여 생각한 것 다시 말해 덜 의존적인 이슈들을 다듬는 것이 옳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