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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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마샬의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은 매력적인 책이다. ‘지리적 조건의 수인(囚人)‘ 정도로 번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의 수인이란 규정에 대항(?)하는 공간의 수인 정도의 말이리라. “인간은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공간 앞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한다.“(이정우 지음 탐독(耽讀)‘ 188 페이지)는 멋진 말을 생각한다. 부연해 말하자면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장소 앞에서가 아니라 공간 앞에서다.

 

장소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은 사물들을 담고 있는 빈 터.“로 인간은 이 추상적 사유의 대상에 입문해야만 과학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탐독저자의 설명이다. 팀 마샬이 지리로 인한 한계를 절감할 수 있는 예로 든 것은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만들어낸 물리적 장애물, 우기에서 비롯된 난관들, 천연자원이나 식량 차원에 대한 접근 등은 피할 수 없다. 이념은 스쳐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10 페이지)

 

나는 예상하지 못한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내 편견을 확인했다. 저자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지리가 최대의 장애물이며 고립의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아프리카 남쪽 땅의 상당 부분은 정글과 늪, 사막 또는 가파른 고원지대라 설명한다, 이런 지형에서는 밀이나 땅을 재배하기도, 양을 치기도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코뿔소나 가젤, 기린 등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 되기를 완강히 거부한다.(224 페이지)

 

서유럽과 남유럽의 차이는 또 어떤가. 두 유럽이 보여주는 양상은 대조적이다. 남유럽은 북유럽에 비해 농업에 적합한 연안 평야가 적고 가뭄이나 여타 자연재해의 피해를 더 많이 받았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러시아에게 세바스토폴은 단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부동항이다. 그렇지만 흑해를 나서서 지중해로 진출하려면 1936년 몽트뢰 협정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의 관리를 위임받은 나토 회원국 터키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139 페이지)

 

보스포루스 해협은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가르는 바다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터키는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으로 나뉜다.(정인경 지음 보스포루스 과학사수록 강응천 추천사) 저자는 인도와 중국이 한 달 간 이어진 1962년 국경 분쟁 이후 충돌한 적이 없는 것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히말라야)이 두 나라 사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10 페이지)

 

중국이 이제까지 변변한 해군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데도 지리적 원인이 작용했다. 광활한 땅덩어리와 긴 국경선, 짧은 바닷길 덕분에 굳이 해양 세력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23 페이지) 그런 중국이 해양 강국이 되려는 이유는 명백하다.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자원이 고갈되거나 자원 유입 통로(해상)가 봉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42 페이지)

 

저자는 중국과 미국이 해상에서 벌일 충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금세기 강대국 외교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 말한다.(42 페이지)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었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20155월 두 나라가 지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거의 145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해역까지 진출한 베이징의 이 같은 결정은 자국 해군력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지중해에서 발견된 가스전에 은근히 눈독을 들이는 러시아와, 중국은 나폴리에 주둔하는 미국의 제6함대를 포함해서 이 지역에서 나토의 영향력을 제거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156, 157 페이지)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한반도의 지리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것이 남과 북 사이에 인위적 분단이 가능한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리상으로 동과 사이에 실질적인 분단이 빚어졌다. 반도의 서쪽 지형은 동쪽보다 훨씬 완만하며 인구의 다수도 이곳에 모여 산다.(169 페이지) 섬나라 일본은 과거에는 고립을 택했지만 이제는 군사적 개입을 선택했다. 중앙아메리카는 지리적 측면에서 보면 파나마 단 한 곳만 빼면 살아가는 데 유리하지 않은 곳이다. 지금 중국으로부터 파나마로 새로운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브라질 국토의 1/3은 정글 지대다. 개척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브라질 정부는 화전 농업 종사자들에게 정글의 나무들을 베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몇 년이 지나면 작물을 재배할 수 없을 정도로 토질이 나빠진다는 점이다. 농부들은 더 많은 삼림을 벨 수밖에 없다. 일단 파괴된 삼림은 다시 자라지 못한다.(208, 209 페이지)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는 셰일 가스와 셰일 오일이 널리 퍼져 있는 지층이 있다. 스페인어로 죽은 소(Dead Cow)를 의미하는 바카 무에르타 지층으로 유명한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소 도매 시장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이 인위적으로 그려놓은 선들이 그대로 국경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목격되는 내전들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민족들을 한 국가 안에서 억지로 단일 민족으로 묶으려한 식민주의자들과 그들이 쫓겨난 뒤 새로 부상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한 신진 지배 세력, 그리고 그에 수반된 폭력의 결과물이다.(229 페이지) 아프리카에게 자원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오랜 세월 외부인들의 약탈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원 공유를 주장함에 따라 다른 나라들은 훔치기보다 투자를 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혜택이 별로 돌아가지 않는다.(235 페이지) 제국주의 영국이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 남아프리카를 지배한다는 것은 희망봉을 재배하는 것이었고 이는 곧 대서양과 인도양 사이의 해상 교통로를 장악하고 있음을 의미했다.(249 페이지)

 

레바논은 산맥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되었다. 프랑스가 그렇게 했다. 시리아는 소수파가 다수파를 지배하는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이란 북서부에는 유럽이면서 아시아이기도 한 나라가 있다. 터키가 그 나라다. 터키는 자신들의 북쪽과 북서쪽에 있는 이웃들에게 진정한 유럽으로 받아들여져본 적이 없었다. 터키는 국토의 5 퍼센트 이하가 유럽에 속해 있다.

 

대다수 지리학자들은 터키 국토의 아주 작은 면적 즉 보스포루스 해협의 서쪽만을 유럽으로 보고 나머지 즉 보스포루스의 남쪽과 남동쪽은 넓은 의미에서 중동으로 보고 있다.(293 페이지) 유럽은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순간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는 75백만명의 터키 인구가 유럽 국가들로 몰려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터키가 대형 이슬람 국가라는 점도 이유의 하나다.

 

파키스탄은 순수한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물론 이는 분단상황을 말해주기도 한다. P는 펀잡, A는 아프가니스탄, K는 카슈미르, S는 신드, T는 탄을 의미한다.(313 페이지) 북극은 21세기 경제 및 외교의 각축장이다. 북극 즉 arctic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아르크티코스(arktikos)는 그리스어로 곰 근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별 두 개가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는 큰곰자리를 의미한다.

 

북극해의 넓이는 1,409만 제곱 킬로미터다. 러시아만큼 넓으며 미국의 1.5배에 달한다. 하지만 해저의 대륙붕은 그 어떤 대양에 비교해도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북극 지역은 캐나다 일부, 핀란드,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미국 알래스카 일부까지 포함한다.

 

북극 지방의 얼음이 녹아가자 북극이사회의 8개 회원국(북극 접경 국가 5개국: 캐나다,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 북극권 국가 3개국: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들은 더욱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정학(geopolitics) 토론이 지극학(geopolarctics)으로 변모해 가는 양상이다.

 

북극이사회에 끼지 못하는 나라들 중에서 이 지역에 대한 합법적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나라들이 있다.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개념에서 북극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주권 문제는 동일한 욕망과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군대와 상업적 운항을 안전하게 확보하려는 욕망과 자기가 잃어버린 곳을 남들이 차지할지 모르는 데에 따른 두려움이다.(358 페이지)

 

현대 기술이 우리를 지리라는 감옥에서 탈출시켜준 사례들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저자는 인간 본성의 탐욕스런 부분을 극복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되는 그레이트 게임을 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지리가 모든 사건의 방향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지도자들 역시 지리라는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력이라는 족쇄만을 풀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 속에 갇혀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자원을 탐하는 원초적 경쟁이 형성한 틀 속에 말이다. 우리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36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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