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 - 스피노자와 함께 인생의 새 판 짜기
신승철 지음 / 사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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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철의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의 주저(主著) ‘에티카의 메시지로부터 비롯된 책이다.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이란 부제를 가진 에티카는 자로 재고 칼로 자른 듯한 논리적 형식 속에 가장 비논리적인 영역의 정서, 사랑, 욕망의 자기 과정을 그려낸 책이란 것이 저자의 주지(主旨).

 

스피노자는 물론 신승철의 책들을 읽으려면 정동(情動)이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감정과 정동을 날카롭게 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감정은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기분 및 고립된 상태의 기분을 의미하고 정동(情動; affect)은 움직임과 관련된 생각, 삶과 관련된 것. 돌봄, 살림, 보살핌, 섬김 등과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기쁨, 슬픔, 욕망 등이 정동의 기본적 형태이며 여기서 우울, 희망, 공포, 연민, 호의, 후회, 겸손 등이 파생된다고 말한다. 중요한 점은 기쁨, 슬픔 등의 정동은 아주 사소한 우발성에서 기인한다. 우발적인 것은 그저 돌발적이고 휘발적인 것이 아니라 정동의 자기원인이 되어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발적인 것은 외부로부터 수동적으로 주어지지만 우리의 삶 내부에는 수동을 능동으로 바꿀 정동과 사랑의 능동적인 능력 즉 기쁨의 능력이 숨어 있다. 저자는 꽃은 한 뿌리에서 나와도 남성성이 강하면 수술을, 여성성이 강하면 암술을 만든다는 말을 하며 삶의 미세한 영역에서 사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 여성성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자신은 자신 안에 잠재된 여성성의 영역을 더 계발할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욕망이란 말은 갈애나 탐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로서의 욕망이자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라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그것을 코나투스(conatus: 자기보존욕구)라 불렀다.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 가타리는 사랑을 되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남성 되기는 없다는 전제하에 사랑이 성립하려면 여성의 여성 되기와 남성의 여성 되기가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내면에 여성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 되기는 이미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살림의 지혜, 생태적 지혜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에티카의 출발점은 아주 작은 삶의 영역(국지적 영역)이다.

 

되기의 존재론은 존재의 존재론에 대한 의문에서 생겨난다.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바로 이렇게 존재할까?, 세계는 왜 꼭 그렇게 존재할까? 현실성보다 더 많은 존재, 실존하는 세계보다 더 큰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인 인간은 늘 이렇게 묻는다..현실과 가능이 꼭 들어맞도록 일치한다면, 있음과 있을 수 있음(그리고 있어야 함)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절망도, 기대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다른 삶으로의, 바깥으로의 이행을 들뢰즈, 가타리는 되기라 부른다.”(이정우 지음 천 하나의 고원’ 164, 165, 166 페이지)

 

저자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해야한다는 당위나 의무가 아니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있다는 경우의 수를 제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되기는 사랑이라 말한다. 소수자 되기가 여성 되기, 노숙인 되기, 장애인 되기, 아이 되기, 동물 되기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51 페이지)

 

공동체가 전제되지 않은 내재성의 철학은 상상하기 어렵다. 스피노자의 삶은 렌즈 세공을 하는 작은 도제조합의 영토를 비롯해 친구들과의 교류와 우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적인 관계망과 배치 위에서 이루어졌다.(내재성이란 초월성의 영역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내재성의 철학은 프로이트의 동일시와 다르다. 프로이트는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동일시를 전이(transference)라 부르면서 각별히 중요시했다.

 

스피노자의 내재성은 타자와의 동일시가 아니라 타자가 갖고 있는 생명과 활력으로서의 특이성을 자신의 내재성(타자화된 외부가 자신의 내부적인 삶과 마음, 생활에 자기원인으로 들어와 있다는 의미다.)으로 이해하면서 공통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차이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과정이다.(67 페이지) 연대한다는 것은 다른 삶, 다른 생각, 다른 관계가 생산되고 환대받는 것을 의미한다.(68 페이지)

 

스피노자는 프로이트에 앞서 무의식이란 개념을 고안한 사람이다. 스피노자에게 무의식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념이나 내면이 아닌 배치의 관계망에서 서식하는 마음이라 보았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삶에 순식간에 자리 잡는 욕망을 허구나 가상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구성하는 원천이자 자기원인이라 생각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절제된, 어쩌면 촌스럽게 느껴지는 정서의 기하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115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사랑은 신적 속성이자 신체변용이다.(123 페이지) 스피노자는 순수, 겸양, 소박을 초월적인 신의 것으로 두지 않고 삶의 내재적인 것으로 보았다. 스스로 가장 먼저 내재적인 신, 범신론적인 신에 입각한 삶을 살았다.

 

물론 이는 개인도 수행하면 신이 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렇게 생각하기 이전에 사물, 생명, 식물, 광물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범신론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모두가 소중하고 유일무이하고 특이한 것으로 가득하다.(125 페이지)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 행동을 변화시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144 페이지)

 

스피노자는 욕망을,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이라 정의했다.(149 페이지) 스피노자는 사랑과 욕망이 많아질수록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는 평행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평행론의 끝에는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진다는 결론이 있다. 지혜는 우리 안의 여성성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에 달려 있다.(153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앎이라는 문제는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수많은 진리를 내가 얼마나 많이 수용하고 취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지혜를 나의 신체변용을 통해 얼마나 사랑하고 욕망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160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가 추구한 생태적 지혜의 노선은 생명과 삶이 던지는 문제제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물음표, 호기심, 문제의식, 질문이 많아질수록 더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상을 뻔한 것으로 보지 않으려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161 페이지) 전문가만이 문제의 핵심과 본질은 이것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 제기는 답이 없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특히 삶, 사랑, 실존에 관한 질문이라면 더욱 그렇다.(162 페이지)

 

스피노자에게 정신은 신체변용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전개되거나 성숙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164 페이지) 저자는 물론 모든 정동, 사랑, 욕망의 흐름이 과연 지적이고 이성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작동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174 페이지)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일시적으로 다가와 마음에서 공회전하는 생각이 감정이고 그 감정 중에서도 자기원인에 따라 움직이는 생각이 정동이라고.(182 페이지)

 

주자(朱子)와 스피노자의 삶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주자는 황제에게 올릴 상소문을 쓴 후 주역으로 점괘를 보고 올릴지 말지를 결정했다. 스피노자는 유한 속에 내재된 잠재성을 통해 무한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스피노자의 이런 태도를 이론적으로 구현해낸 사람이 들뢰즈다. 그의 노마드는 제자리에서 여행하는 법인 국지적 절대성을 의미한다.

 

국지적 절대성의 과제는 국지적인 영역인 지금 여기 - 가까이에 무한한 잠재성이 내재한 삶과 신체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하면 촉매하고 고무하여 색다름을 생산하고 창조할 것인가이다.(186, 187 페이지)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자 되기라는 개념은 스피노자의 정동 개념을 현대적으로 혁신한 개념이다.

 

정동의 흐름이 성공주의, 승리주의, 성장주의의 논리처럼 위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소수자에 대한 사랑을 통해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는 점에서 그렇다.(190 페이지) ’에티카는 후반부에서 전반부와 전혀 다른 필체, 내용 등을 보여준다. 그를 후원하던 공화파 드 비트 형제가 잔인하게 피살당한 사건이 그런 변화를 초래했다.

 

스피노자는 3부 이후 당대의 증오, 예속을 영예로 여기던 상황, 맹목적 신앙에 빠진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고심했다. 스피노자는 입구와 출구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 소진을 이기지 못하고 에티카완성 2년 후인 167744세의 삶을 마쳤다.(195, 196 페이지)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영구적 사랑의 탈주선이었다.

 

스피노자는 혼자였지만 가상의 독자를 설정해 자유인의 해방전략 즉 사랑이 곧 혁명이라는 것을 일갈했고 민주사회와 다중에 대한 민주주의 전략을 이야기했으며 사랑, 욕망, 정동의 지도 그리기를 시행했다.(215 페이지) 노마드 이론에 최적화된 사람이 은둔자로 불렸던 스피노자일 것이다.(220 페이지) 문제는 현실을 뻔하고 비루하게 보는 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생명과 자연이라는 그 신기한 외부가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삶의 내재성은 곧 외부성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잠재성을 더 풍부하고 다양한 특이성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255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를 탈근대의 예수로 정의한다. 답을 내놓는 철학이 아닌 아이처럼 호기심, 상상력, 질문을 던지는 탈근대의 상황으로 지평을 가로질러 주파했기 때문이다.(270, 271 페이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자기원인에 따르는 욕망 즉 정동의 개념이다.(285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를 완성하고 정치론과 민주주의에 대해 정리하던 중 폐결핵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아무런 소유도 없었고 병마에 시달리려 가냘픈 몸만이 있었다.

 

그는 임종을 지켜준 로데빅 마이어와 친구들을 평생 투명한 렌즈를 응시했을 그 눈으로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다.(287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신 즉 자연이 지닌 질서를 이해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할 수 있을 뿐 결코 복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신은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욕망, 정동이다.(29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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