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결속은 깨어졌다. 인간은 마침내 그가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음을, 그가 이 우주 속에서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우주의 그 어디에도 그의 운명이나 의무는 쓰여 있지 않다. 왕국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의 피날레 글이다. 10년 전 처음 읽은 이래 가끔 다시 읽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책이다. 프랑수아 자콥의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역자(이정우 교수) 서문에 의하면 ‘우연과 필연’은 미시세계의 우연성과 거시세계의 필연성이 맺는 관계,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치 문제를 논한 책이다.
어떻든 모노는 모든 종교와 거의 대부분의 철학, 심지어 과학의 일부까지도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려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영웅적 노력의 증거로 규정(궁리 출판사 번역본 71 페이지)한 데 이어 운명이란 진행되어 나가면서 쓰이는 것이지 결코 먼저 쓰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205 페이지)
'우연과 필연’ 이후 10년만에 읽은 책이 에드윈 풀러 토리의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이다. 토리는 죽음은 맞은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상세히 언급했다. “사람이 죽으면 몇 시간 내에 피가 고인 피부에는 시반(屍斑)이 생기고 나머지 부위는 잿빛이 된다. 며칠 동안 사후경직으로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부패가 시작된다.
최초로 부패하는 장기인 뇌는 아미노산과 지질로 분해되며, 회색의 점액이 되어 시신의 귀, 코, 입으로 흘러나온다... 신체 면역계에 의해 억제되어 있던 수천 수백만 마리의 장내 세균이 창자와 기타 장기를 분해하며 그 과정에서 가스를 배출하여 몸이 부풀어 오르는데 그로 인해...몸 바깥에서는 눈, 입, 생식기 주변에 maggot이 꼬여 피하지방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1주일이 경과할 무렵 잔뜩 부풀어오른 체내 장기들이 파열된다. 피부가 녹색이 되고 곳곳이 떨어져나간다. 이때쯤에는 몸 전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maggot 무리 외에 근육조직을 선호하는 딱정벌레들이 합세한다. 2주일이 경과할 무렵의 시신은 사실상 용해된다. 허물어지고 푹 꺼져서 결국에는 땅으로 스며든다. 시체 썩는 냄새는 멀리서도 맡을 수 있으며 과일 썩는 냄새와 고기 썩는 냄새의 중간 정도로 강렬하고 역하다....”
이 리얼한 글 이후 토리는 ‘우연과 필연’의 피날레 글과 공명(共鳴)할 글을 소개한다. 영국의 의사이자 철학자 레이먼드 탤리스의 글이다. “한편 당신의 두개골은 지금 당신이 maggot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을 품어주듯 그 maggot들 또한 품어준다. 지금 당신에게 느껴지는 두개골의 말 없는 단단함은 바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당신의 머리는 누구의 편도 아니며 하물며 당신 편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의 머리는 언젠가 자신을 둥지로 삼을 새의 울음에 무심하듯 당신의 슬픔, 두려움, 기쁨에도 무심하며,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상을 맺게 해주는 빛을 환대하듯 당신의 눈구멍 틈새로 스르르 기어들어오는 뱀 또한 환대한다.
당신의 썩은 머리를 갉아먹고 그 위에서 폴짝거리며 자라는 생물체들은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독창적이었는지, 음란했는지 따위를 추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다.”(187, 188 페이지) 모노가 말한 '무관심'과 탤리스가 말한 추호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공명하는 것이다.
토리는 다른 사람의 일이었던 죽음이 자신에게도 일어나리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을 미래에 온전히 – 이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 투사(投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자전적 기억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 역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은 뇌가 진화함에 따라 신이 소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일로만 알았던 죽음을 자신의 일로 상상하려면 자신을 미래로 투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을 책이다. 물론 다른 부분도 꼼꼼히 음미하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