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던 오래 전 박옥줄 교수가 번역한 레비스토르스의 ‘슬픈 열대’(삼성출판사)를 읽었다. 지금은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다. 어제 모 방송에서 ‘슬픈 열대‘에 대한 해설을 접했다. 자신을 공간을 여행하는 고고학자라고 설명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학문적 출발을 가능하게 한 세 학문으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지목했다.
이 학문들은 표층이 아닌 심층을 주목하는 학문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어제 방송을 보았기 때문인지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어딘지 분주하게 옮겨다니며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싸움 구경을 하다가 일행 중 한 명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진 꿈이었다.
꿈 속에서도 무언가를 움켜 쥐고 놓지(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라니.. 아무튼 정신분석학 이야기를 듣자마자 꿈을 꾸었다는 것이 기이하다. 정신분석학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이 꿈이 아닌가.
그런데 정녕 꿈이라 할 것은 우리의 시원(始元) 자체가 아닌지? 35억 년 전 미스테리하게 출현한 최초의 생명체 시아노박테리아가 햇빛, 바다 속 이산화산소, 물 등을 이용해 만든 에너지를 쓰고 난 뒤 생긴 찌꺼기를 배출한 것이 바로 산소(酸素)라는 것이 나는 꿈만 같다.
허수경 시인이 “..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 어느 범벅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이게 꿈 아닌가..”란 말을 했으니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거창한 것인가? 물론 시원은 꿈 같아도 현실은 현실이리라. 내가 딛고 선 터전인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