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과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주교 신앙을 위해 단식 14일만에 31세로 세상을 떠난 이벽(李檗; 1754-1785)은 가족들 사이에서 고집이 센 사람으로 통했다.(벽은 황벽나무 벽이다.) 그가 천주교를 알게 된 것은 소현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인질로 갔다가 귀국할 때 아담 샬에게서 받은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온 6대조 이경상 덕이다.

 

임제선사를 깨우치게 이끈 황벽선사도 황벽나무 벽자를 썼다. 황벽은 마인드가 상당히 유연하여 노파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려 했던 선사다. 세살짜리 아이도 자신보다 나으면 배울 것이고 백살 노인이라도 자신보다 못하면 가르쳐줄 것이라는 마음으로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던 '뜰 앞의 잣나무'의 스님 조주선사를 닮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럼 이벽은 고집이 세고 황벽선사는 유연한 것인가? 아니다. 자신이 진리라 믿은 천주교를 끝까지 믿은 이벽이나 노파에게서까지 배우려 할 정도로 유연했던 황벽선사나 모두 진리에 철두철미했던 것이다.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니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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