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탓일까? 근원(近園) 김용준의 '김용준 수필선집'을 읽으니 참 좋다. 간결 소박한 글이 읽는 맛을 느끼게 한다. 아무 데나 펴보아도 좋고 아무 데서나 펴보아도 좋은 글이다. 잘 알듯 김용준은 상허 이태준 선생이 지어준 노시산방이란 이름의 집에서 살았던 분이다.

 

근원은 옛 고자를 써서 고시산방이라 하는 것이 어떻냐는 말이 있었지만 노()자가 좋아 노시산방이라 이름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니 자신을 오수노인(午睡老人)이라 칭한 최순우 선생 생각이 난다.

 

성북 준비를 하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인 이상에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상은 구인회 등 이태준과의 인연, 수향산방의 김환기, 변동림과의 인연이 있다. 평론가 김민수는 김환기 화백의 점() 그림과 이상 시인의 선에 관한 각서가 연결된다는 말을 한다.

 

이상은 제비다방을 비롯 무기(むぎ: ) 다방, 츠루(つる; ) 카페 등을 열었다. 그에게는 공간에 대한 감각, 선호가 있었다. 무엇보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이고 여성을 자신처럼 거세된 존재로 보며 불쌍히 여겼지만 아파하지 않는 존경스러운 존재로 본 이상.. 매력적이다.

 

나는 상자에 갇힌 근대인을 풍자한 이상(李箱)이 마음에 든다. 그의 글들, 그에 대한 글들을 읽자. 그의 권태는 시간이 남아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데서 온 권태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사로서 창의성이라고는 필요하지 않은 관공서 건물 설계를 답습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말한 윤동주 시인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서촌에서 너무도 다른 두 시인을 거울로 비교한 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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