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이야기도 계급적 – 맞는 표현인지 모르지만 – 으로 접근할 수 있고 흥미 위주로 접근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녹지(綠地)가 주는 혜택에서조차 소외된다는 기사와,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비극이라는 주장을 하는 책(뉴욕대 사회학과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한 것과 별개로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흥미를 느꼈다.
저자에 의하면 유럽의 도시들은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만들어진 까닭에 사람보다 조금 더 빠른 마차의 속도에 맞춰 거리가 만들어져 (자동차에 맞게 도시가 만들어진 미국의 도시들에 비해) 도시의 도로망이 짧은 단위로 나누어짐으로써 사람들에게 거리의 다양성과 도로의 공간감을 더 잘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흥미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1995년 7월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 일주일간 700여명이 사망한 시카고를 예로 들며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치, 사회적 실패라고 규정한다.
700여명의 대부분은 노인, 빈곤층,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폭염사회’는 의미가 깊은 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흡인력도 대단한 놀라운 책이다.
자꾸 우리의 현실을 비춰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지금 폭염을 겪는 현실보다 한번 상승한 온도는 되돌려지지 않는다는 말이 더 힘을 빠지게 하는 이때 클라이넨버그의 책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꼭 읽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