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시인의 시집 ‘나의 다른 이름들’에 실린 ‘당신의 거처’란 작품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음이 아득하면 머무는 곳도 절로 외지게 되니 당신/ 의 거처 또한 묘연하여 물소리 깊고 구름이 높았다”
마음이 아득하면 머무는 곳도 외지게 되는 것처럼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눈에는 물, 구름 등 흘러가는 것들만 들어오는 것일까?
‘당신의 거처’의 앞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고독에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백 년을 거듭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차츰 각자의 색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독이 문제인가? ...
‘물의 점령’에서 시인은 “수로의 해초들이 죽은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둥둥 떠다/ 니는 새벽의 표정에 체온을 다 빼앗기고 돌아와 나는 쓰러/ 진다// 다만 너를 너무 괴롭히지 않기 위해 그곳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오지 않기 위해// 물속의 빛들을 너무 편애하지 않기 위해, 물 밖으로 다/ 시 나오지 않기 위해// 다만, 이 생을 조금만 더 사랑하기 위해”란 말을 한다.
이 시도 물의 시다. “이 생을 조금만 더 사랑하기 위해“란 표현에 나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평형을 지향하는 물처럼 두 극단(넘침과 무無)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시인의 눈물겨운 노력에 공감할 수 밖에. 내 이야기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