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지원센터 代理 근무(7월 7일 13 – 17시)를 앞두고 어제 간단한 미팅을 가졌다. 한옥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도 좋을 만큼 아름답다. 한옥 119 (출동) 제도를 비롯 서울시가 한옥 건축과 보존 등을 위해 시행하는 제도들도 주목할 만하다.
한옥 119 출동 제도는 한옥지원센터와 함께 한옥 장인이 요청이 발생한 현장으로 출동해 한옥 개, 보수를 돕는 등 긴급 사안에 대해 조치를 취해 주는 제도이다. 늘 그렇듯 해설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최준식 교수의 ‘동(東) 북촌 이야기’를 구입했다.
이 책에는 한옥만이 아니라 초가(草家)도 복원해야 한다는 글 등 듣기에 따라 불편할 수 있는 내용들도 있다. 과거 대부분의 선조들이 살던 집은 기와집이 아니라 초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김시덕 교수의 ‘서울 선언‘이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은평 한옥마을 조성 과정에서 파괴된 수많은 평민들의 무덤을 예로 든다. 저자는 우리는 왜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들을 함부로 없애 버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지난 달 16일 강릉 답사 때 만난 한 자원봉사자 생각이 난다. 60대 후반쯤의 이 분은 내가 그날 함께 해설자로부터 들은 이씨(李氏) 왕가의 터부를 회상하며 해설 때 활용하면 좋으리란 이야기를 하자 이해 못할 반응을 보였다.
터부란 나무 목자가 들어 있는 이(李)라는 성(姓) 때문에 도끼를 의미하는 쇠 금(金) 즉 김씨를 경계해 김씨 여자를 며느리로 삼지 않으려 했다는, 공식 확인이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해 못할 반응이란 종교적 반발을 일으킬 수 있으니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분은 왜 해설자에게는 그 말을 하지 않았는가? 해설자가 교수여서 그랬는가? 이 날 이 분은 초면인 내게 이 말 말고도 시험 앞두고 답사를 왜 왔느냐, 이어폰으로 계속 음악을 들으면 귀에 이상이 생기지 않느냐 등의 말을 했다.
나는 조선 왕릉, 궁궐, 종묘, 고택 등이 주례 고공기, 풍수, 주역 등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듯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음양오행과 주역, 사주 등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였으니 해설에 그런 내용을 반영하지 않으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분은 상대와 뜻이 다르면 답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원칙이라며 함구(緘口)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자원봉사자가 대답할 말이 있었을까?
김시덕 교수는 조선왕조 중심주의를 문제 삼는다. 조선왕조 중심주의란 조선 왕조와 사대부 문화의 계승을 서울의 정체성 확립과 동일시하는 관점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박제된 느낌을 서울의 고택(古宅)들에서 얻는다면 지나칠까?
물론 나는 얼치기이다. 조선 왕조와 사대부 문화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비판하는 만큼 서민 문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은 아니다. 고택, 사찰 등을 탐방하는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왠지 그런 고급 문화가 싫어 모임과 거리를 두고 고택 대신 민가, 사찰 대신 사하촌을 순례했다는 인병선 님(초대 짚풀 생활사 박물관장)이 생각난다.
나는 고급 문화의 상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짚풀이 서민문화를 잘 드러내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르는 것이 참 많은 입장으로는 어둔 밤길을 걷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