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마지막 무애도인(無碍道人)“ 무산(霧山) 조오현 스님의 입적(入寂: 526) 기사를 읽는다. 세수(歲首) 87, 승랍(僧臘) 60세의 시조 시인이신 스님의 입적을 한 일간지에서는 시의 세계로 홀연히 떠난 것으로 표현했다. 실재에 부합할뿐 아니라 멋지기까지 한 표현이다. 일지(一指) 스님이 성철(性徹) 스님의 입적을 불생불멸의 풍광 속으로 고요히 걸어 들어가신 것으로 표현한 것 만큼 의미 있어 보인다.

 

스님에 의해 처음으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목격전수(目擊傳授)란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 스님의 공이 컸다. 목격전수는 입 열어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의미이다. 눈끼리 마주친다는 의미의 독일어 블릭 움 블릭(Blick um Blick)이 생각나지만 함의(含意)도 배경도 다를 것이다.

 

2007년 제19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에 즈음해 스님은 불가의 목격전수(目擊傳授)’라는 말처럼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은 나를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인사를 하자는 인사를 했다. 내게 가장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표현은 마지막 무애도인이란 말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말로 인해 탐욕과 권력에 물든 파계(破戒) 권승(權僧)들을 비판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거리낌 없다는 표현은 집착과 욕망의 폭력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숱한 문제승들을 부끄럽게 하는 효과를 발한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표절, 성폭행, 도박, 학력 위조 등 세속의 기준으로도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회심(回心)하겠는가, 이다.

 

이도흠 교수에 의하면 이런 파계 권승들로 인해 300만의 불자가 절을 떠났다. 나도 불자였다면 당연히 그 대열에 들었을 것이다. 생황, 배소, , 필률, 비파, 요고, , 공후, 방향 등의 악기가 내는 화음(和音)이 그만 화음(花陰)이 되는 시간...꽃그늘 아래로 너울거리며 내려오는 모든 알 수 없는 음계를 다 들이마시며 어느새 누워 있다는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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