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쏟아지고 있다. 이 말에는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 쏟아지고 있다고 하면 함량(含量) 미달인 시도 마구 활자화하는 것을 연상하게 할 수 있겠지만 모두에게 시는 각고(刻苦)의 시간들을 보낸 끝에 내놓는 어엿한 자식들임에 틀림 없다.

 

이런 말을 하는 내게 궁금하게 여겨지는 점들이 있다. 1) 무미하고 건조한 시들을 쓸 때도 시인들은 아름답고 단아해 흥취(興趣)를 자극하는 시들을 쓸 때처럼 힘든 숙성의 시간들을 보내는가? 2) 시가 아름답고 단정한 정도와 인성(人性)은 얼마나 비례하는가? 3) 복제본만 난무하는 무미 건조한 시대를 고발하는 시와 그에 대한 해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가? 등이다.

 

1)은 잘 모르겠고 2)는 비례 정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되고 3)은 내가 해당하는 경우이니 시가 문제가 아니라 해설이 문제라고 해야겠지만 위로의 차원이든 소신을 피력하는 차원이든 다른 견해로 나를 구원해 줄 분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2)를 말하는 것은 최근 술자리에서 시와 인성 특히 성적(性的)인 문제로 인한 괴리를 목도한 탓이다. 이럴 때 시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차원에서 추락해 양가감정의 대상이 된다. 분명 명실상부한 시인들이 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시 기능인이라 할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면도날에 검지를 베는 분명한 사건...손끝의 통증..”이란 구절이 있는 시를 분명한 사건이란 말에 주목해 밀란 쿤데라의 말로 해명한 나는 무응답에 심란하다. 내가 인용한 쿤데라의 말이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은 통증을 과소평가하는 지식인의 말이다.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이야말로 훨씬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자아의 토대는 사유가 아니라 감정 중 가장 기초적인 감정인 고통이다...고통이야말로 자기중심주의의 위대한 학교.”라는 말이다.

 

철학과 시 사이에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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