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클라이머즈 하이 : 요코야마 히데오>

'흥분 상태가 극한까지 달해 공포감이 마비되어 버리는 상태'를 클라이머즈 하이라고 한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야 친숙한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암벽은 물론이요 동네 뒷산도 잘 오르지 못하는 내게는 조금 생소한 단어였다. 클라이머즈 하이.. 이 상태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한번 느껴보고 싶기도 하고, 왠지 두려울것 같기도 하다.

 

책 제목의 느낌은 이러했고 소설 자체는 어느 한곳도 흠 잡을 곳이 없을만큼 완벽에 가까웠다. 등반 과 기자라는 직업에 문외한이지만 순수한 독자로서 완독한 이 소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듯했다. 한 권의 소설 속에 가족도 있었고, 한 가정의 가장, 아버지, 자녀들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관계 속에서 불거지는 암투와 신의 .. 이 모두를 소설 한 권으로 보았다. 기자라는 직업과 비행기 사고라는 큰 틀에서 곁가지로 뻗어나간 소박하면서 작은 줄기가 아닌 각기 다른 생명을 유지하며  유키라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인 내게 전달되었던 그런 느낌이었으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긴장이 온 몸의 혈관을 뛰노는듯 했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시점이 아사아나 항공기 사고와 맞물린 시점이었기에 아침마다 읽는 신문 한글자 한글자.. 한 페이지 또 한페이지를 새롭게 읽는 계기도 되어주었다. 신문지가 아닌 신문을 만들기 위한 기자의 고군분투와 고뇌가 소설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기에  지금까지 무성의하게 읽어왔던 기사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게 되었고.,

 

주인공 유키는 지방 신문 긴타칸토 기자다. 악마의 산이라 불리우는 쓰이타테이와를 함께 등반하기로 했던 친구 안자이는 의문을 남긴 채 병원에 실려왔고 의식불명의 상태에 놓여져 있다. 사장과 전무 사이에서 줄을 타야만 하는 신문사 직원들 사이에서 안자이의 선택은 무엇이었으며 유키에게 다가오는 손길은 누구의 손길이었던가. 어린날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키는 그의 아들 준과의 사이도 멀어져만 가고,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는 아버지의 빈 자리에 유키를 놓아둔다.

 

그리고 동기들은 승진을 거듭해 책임자 위치에 앉아있지만 유키는 후배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승진을 거부하며 평범한 사회부 기자의 자리에 머물던 어느날 520명의 탑승객을 태운 항공기가 군마현에 추락한다. 작은 소도시의 신문사는 일생일대의 사고에 집중하고 유키는 일본항공기 사고의 데스크로 임명되었다. 기자의 눈으로 보고 사고 현장을 밟은 느낌으로 현장감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후배의 기사를 살리려고 하지만 윗선에서는 암투 아닌 암투를 벌이고 결국 후배의 기사는 신문에 싣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한다.

 

-때려눕히고 싶었다. 온몸에서 피가 맹렬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이런 일로 해고라고? 좋다. 잘라봐라. 여하튼 이걸로 데스크는 폐업이다. 같은 기자의 원고를 두 번이나 죽인 데스크를 따라올 병사가 있을 리 없다. (중략) 가족도 필요 없다. 겉치레다.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 걸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벌벌 떨면서 아들의 눈치나 살피고 사는 것은 더 이상 싫다. 해고됐다고 하면 유미코도 정나미가 떨어지겠지. 혼자서 살아가면 된다.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인 편이 훨씬..... - 135p-

 

기사 하나를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신문기자들의 처절하리만치 아프고 또 아픈 얼룩진 마음도 엿보였고 , 붉고 찢어진 눈과 비뚤어진 마음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윗선들의 감춰진 속내도 어느정도 읽혀지고 보듬어진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까지도...책을 읽는 내내 항공기 사고를 취재하는 기자는 어느새 내가 되었고, 사고의 유가족 또한 내가 되었으며 사고 당사자가 내가 되었을 만큼 인물 한 사람 한사람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소설 곳곳에서 가슴이 턱.. 턱 .. 막혀왔다. <클라이머즈 하이>는 중간중간 더는 진행할 수 없을만큼 가슴 한켠이 아려와 망설이기도 했고, 빨리 읽어 결말을 보고 싶기도 했던 그런 소설이었다.

 

-간자와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도 왜 울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간자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이어지고 무언가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유키는 소파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추락 현장이 실제의 현장이었던 것은 첫날뿐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간자와는 본 것이다. 520명의 사망자를 만들어 낸 일본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의 실체를. - 200p-

 

-오스타카 산에서 사야마 기자.

젊은 자위대원은 인왕처럼 무서운 얼굴로 서있다.

두 손으로 작은 소녀를 꼭 끌어안고 있다. 빨간 잠자리 핀, 파란 물방울 원피스. 연한 갈색의 가녀린 오른손이 축 처져있었다.

자위대원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저렇게 푸른데.

구름은 두둥실 떠있는데.

새는 지저귀고 바람은 유유히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있는데.

자위대원은 지옥을 내려다보았다.

그 어딘가에 있을 소녀의 왼손을 찾아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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