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발 헤어질래?
고예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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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발 헤어질래?

고예나 작가는 2008년 장편소설 <마이 짝퉁 라이프>로 제3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작을 몇 편 읽어봤는데 나름 괜찮았기에 기회가 된다면 <마이 짝퉁 라이프>도 읽어봐야겠다. 이 소설의 제목만 보면 연인들의 이야기라 생각되지만 특별하게도 자매의 이야기였다. 예전에 읽었던 단편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처>에서도 자매간의 숨겨진 애증을 보았는데 이 소설도 그렇다. 자매간의 애증, 늘 함께였기에 보일 수 없었던 자매들의 속내가, 내게는 조금 부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 집으로 돌아오니 권지연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나는 두부를 엄마에게 준 후 과자를 들고 내 방으로 왔다. 권지연은 내 과자도 말하지 않고 훔쳐 먹는다. 말하고 먹으면 아무 말 안 하겠다. 왜 남의 과자에 손을 대느냔 말이다. 그 행동이 괘씸해 나는 며칠 전부터 과자를 내 옷장에 숨겨두고 먹는다. 옷장을 연다. 열두 개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이 열두 개밖에 안 된다. 분명 열세 개였는데. 내가 얼마나 노이로제에 걸렸으면 걸린 옷 수까지 외우겠는가. 저게 이 틈을 타 또 내 옷장을 습격한 것이다. 아무리 지랄을 해도 듣질 않으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 51p- 언니 권혜미의 독백 ㅎㅎ

 

- 어쩜 한집에 살면서 저렇게 야박하게 굴 수가 있냔 말이다. 내가 무슨 밖에서 낳아 온 이복동생도 아니고 같은 피를 나눈 자매로서 어쩜 저럴 수가 있냔 말이다. 언닌 늘 내가 옷을 몰래 입은 걸 가지고 혼을 낸다. 왜 말하고 입지 않느냐. 말하고 입으면 입게 해줄 걸 왜 그러냐고. 하지만 언니는 말하면 빌려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변명을 대며 못 입게 한다. -63p - 동생 권지연의 독백ㅎㅎㅎ

 

언니의 옷을 몰래  입은 동생. 그런 동생이 못마땅해 으름장을 놓고, 옷 한벌도 못빌려주는 언니가 또 괘씸한 동생. 매사 명령으로 일관하는 언니와 언니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동생...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자매들의 아옹다옹한 다툼은 한걸음 더 나아가 큰 싸움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상은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했고 , 소설 속의 권혜미와 권지연 자매는 좀 웃기는 자매이기도 하다. 웃기지만 많이 부럽기도 했던 작품 속의 인물들에게 푹~ 빠져버린것 같다.

 

- " 언니랑 싸운 다음에 내한테 전화 좀 걸지 마라. 양쪽에서 전화를 거는데 내가 머리가 지끈거린다. 니도 잘못한 게 없진 않지만 언니 밑에서 산다고 고생이 많다. 어제는 또 엄마한테 얼마나 닦달을 해대는지. 집에 오자마자 방구석에 머리카락좀 치우라고 잔소릴 하질 않나"

"나처럼 언니하고 단둘이서만 살아봐. 내가 얼마나 불쌍한지 알게 될걸?"

"너거 언니는 시엄마보다 더 하다. 아주 삼대 할매가 따로 없다. 어제 밥을 차렸드만 계란이 너무 짜다고, 이런 국은 이제 하지 말라고, 갈비가 너무 달다고 하질 않나. 세수 한 다음에 그냥 아무 말 없이 엄마 로션 바르면 될 거를 오래된 화장품은 쓰지 말라고 잔소릴 하질 않나. 엄청나게 닦달을 하더리. 이런 식물은 집 안에서 키우니까 지네가 나오느니, 새로 산 소파보다 예전 것이 더 푹신하고 좋은데 왜 바꿨냐느니, 왜 우리에게 안 물어보고 엄마 취향대로 샀냐느니, 부츠에서 냄새 나면 신발장에 숯을 넣으라느니, 세면대 좀 청소하라느니, 걸레 색깔이 이게 뭐냐느니 아무튼 너거 언니 때문에 엄마가 진이 다 빠졌다.- 128p- 엄마와 지연의 통화.ㅎㅎ

 

소설을 이끌어가는 자매 외에도 엄마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 엄마가 등장하는 부분 또한 상당히 재미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엄마와는 정말 달랐기에 소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딸들에게 주연상을 준다면 엄마에게는 특별한 조연상을 주고 싶어진다.  두 딸이 싸움을 하고 나면 엄마에게 전화를 쪼르륵 해서 하소연을 하면 엄마는 또 전화 당사자와 다른 딸내미의 흉을 실컷 보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렇고~~ 아무튼 엄마와 두 딸이 아니라 세 자매라고 해도 될듯하다. 재미있는 세 사람의 아웅다웅한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독자인 나는  그저 부럽기만 했다.

 

실제로 이런 가정이 있을수도 있을텐데, 그들이 나의 부러움을 알았더라면   그냥 내게 던져주고 싶은 관계일지도 모르겠지만, 한번도 이런 느낌을 가져본적 없는 나는 좋다.. 그들의 싸움도 좋고, 엄마와의 전화도 좋기만 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자매들의 전쟁에만 초점을 맞추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매의 갈등 이외에도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수 밖에 없는 가족간의 진~ 한 사랑이 밑바탕이었기에 끝마무리는 훈훈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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