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꽃으로 - 유안진 산문집
유안진 지음, 김수강 사진 / 문예중앙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상처를 꽃으로>

요즘 에세이와 시집이 왜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그나마 에세이는 사람 사는 세상을 또다른 눈으로 볼 수 있기에 가끔 찾아 읽지만 , 시는 함축된 언어의 몸짓이기에 어려움이 먼저였고, 어려운 것을 피하는 나의 습관 때문에 자주 읽지 못해왔다.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보았던 시 마저도 뜻을 오롯이 내 안에 간직하지 못하고 내맘대로 , 내 뜻대로 해석하고 읽어왔는데 유안진 시인의 에세이집을 읽어가며 간간히 포함된 시의 향연을 맛있게 마셔봤다.

 

이 책을 읽기 전, 주말에 아이들과 중고 서점엘 다녀왔다. 예전에는 그렇게 많던 서점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졌고 지금, 내가 사는 도시에는 대형 서점만 두 곳 남아있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지만 기억나는 헌책방이 두 곳 있고, 아이들과 나들이 삼아, 아이들 표현대로 하자면  득템하러  가끔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넷 모 서점에서 헌책방을 곳곳에 오픈했는데 동네에 원래 있던 오래된 헌책방 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책 정리도 잘 되어있어 새책방 못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오래된 헌책방만의 특별한 무질서함 ,책냄새가 없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새로 생긴 헌책방의  넓디 넓은 공간을 두어바퀴 눈으로 훑으며 둘러보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시집이 모여있는 코너였는데 생각보다 시집이 많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곳에서 평소에 좋아하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2,400원에 데려와 행복했는데 , 본문 중간중간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다는 유안진 시인의 귀여운 투덜거림이 보여 한참을 미소지었다. 슬러퍼를 끌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 보기는 많이 봤지만 한번도 들러본적 없는 커피 전문점에 들어갔는데 왜 한번도 찾아주지 않았느냐는 주인의 인사에 대한 유안진 시인의 속마음을 잠깐 옮겨보면~~

 

- 커피는 가짓수가 많아 성가시다. 미식가도 아니고 고상하지도 못해 골라내기도 힘이 든다. 얼굴은 익은데 왜 이제야 들러주느냐고 한마디하는 주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다가도 , 별투정 다 듣네. 동네에 새 가게가 생길 때마다 들러야 하는 의무까지 져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고, 안 마셔도 좋으니 지나다니지만 말고 자주 들러달라는 말에 또 웃어주고 만다. 안 팔리는 게 커피만인가? 시집은 더 안 팔리는데...  책방에 가봐요! 시집 코너는 아예 눈 씻고도 못 찾지. 골목마다 생기는 커피집을 생길 때마다 어떻게 다 들러주느냔 말이다. 한잔에 자꾸 말을 걸어 후루룩 마시고, 그렇게 답답하던 집에 와서 벌렁 누워 책을 펼치니, 내 세상이 따로 없다 - 1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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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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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시인은 내 학창시절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기억된다. 코팅된 책갈피, 책받침도 생각나고 , 친구들과 우정을 다짐하며 주고 받았던 시절이기에 신문에서 처음 접한 에세이 출간 소식을 몹시도 기대했었다.  지금까지 저자님의 책을  몇 권은 읽었을테지만 기억 저편으로 모두 날아가버렸는데 <상처를 꽃으로>에서 그분을 많이 알아버린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속에 표현된 내용들이  그분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왠지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느낌이기도 하여 더 좋아진다. 포근함 속에 숨겨진 까칠함도 간간히 보이고, 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드러났던 그분의 짧막한 시 한편, 생활 한편이 마냥 좋아진다. 이런 맛에 에세이를 찾아 읽는 것이겠지만, 편안한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유안진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다보탑을 줍다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을 주었다

국보 제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빠알간 구리동전

꺽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을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 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본문 153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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