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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파코 로카 지음, 김현주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주름>
한 줄 한 줄 깊어가는 '주름'처럼 쌓아온 인생의 마지막 날,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겠습니까 ?...
노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이고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전에 티비에서 죽음에 관련된 오락 프로를 봤는데 참가자가 많이 울어서 더이상 진행을 하지 못했던 장면이 생각난다. 죽음을 전제로 내게 가장 소중했던,, 기억하고 싶었던 목록을 작성한 뒤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는 장면이었는데 출연자 못지않게 나도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을 울었다. 무엇을 지워야 하나.. 보통은 자신에게 소중했던 물건들이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늘 옆에 끼고 살았던 휴대폰 과 사진들,, 수첩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차마 지우지 못하고 남는 것은 가족들이었기에 가족이라는 의미와 죽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을 했더랬다..
가족 중에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났다. 우리 할머니도 알츠하이머, 즉 치매 환자셨기에 어린날에 보았던 하루, 또 하루는 지옥과도 같음을 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슬픈 현실도 나는 안다.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도 안다...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려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픔을 조금은 알것도 같다. 가끔씩 돌아오는 정신의 암담담을 느꼈던 할머님을 통해 나는 보았고 알아버렸다... 알기에 서글프고, 서글프기에 무섭기도 하다.
자꾸만 없어지는 기억 속에서 남겨진 가족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요양원이라는 곳에 모신다 한들 누가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 그 깊은 심연을 나는 보았고 느꼈기에 책을 읽어가며 할머니를 추억했다. 치매 환자로 인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어머님을 보았기에 나는 우울했다.. <주름>은 스페인 작가 파코 로카의 친구 디에고의 아버지 에밀리오씨의 이야기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버지를 닮기 시작하면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거라고 한단다..거울 속의 모습이 작가의 아버지를 닮기 시작했다면 ,내가 보고 있는 거울 속의 나는 내 어머니를 닮았다는 것을 느껴본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 노환이 찾아와 어쩌면 내게도 생길 수 있는 병이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에밀리오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젊은 시절의 자신인데 돌아보면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의 처연함... 얼만큼 가슴이 먹먹해져올까. 노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웠던 일을 생각하고 더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할 노년이면 좋으련만 모두 그렇지 못하듯 치매라는 병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는 기억을 잡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름>에는 요양원의 생활이 이런것이었구나 싶을 만큼 공감되게 그려졌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씩 기억을 잃어가는 진행 단계를 걷고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에밀리오와 그의 병원 친구는 탈출을 감행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제대로 ,사람 답게 살아보려고... 그러나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이 책에는 두 편의 만화가 들어있다. <주름>과 <등대>. 등대는 스페인 내전 상황에서 패전 뒤 가까스로 살아남아 섬으로 떠밀려온 열여덟살 병사와 외로운 등대지기 노인의 이야기다. 청년은 등대지기로 부터 모비딕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살아갈 희망이 없었기에 하루 하루 무의미한 삶을 이어가던 중 노인이 만들고 있는 배와 환상의 섬 라퓨타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난파되어 섬까지 떠밀려온 자재로 배를 만들어 라퓨타에 가기로 하는데...
<등대>역시 가슴 아픈 이야기임에는 틀림 없다. 작가가 여러번 수정을 거쳐 세상에 내보낸 책이니만큼 애정도 깊겠지만 책을 읽어가는 독자 역시 책에 애정을 느낄듯하다. 짧은 컷 만화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을 그런 책... 이 책이 내게 그러하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추억을 잃는다는 것... 머리에서 사진이 한장씩 날아가는 책표지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날,, 나는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