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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보트 -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샬럿 로건 지음, 홍현숙 옮김 / 세계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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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라이프 보트>
-1884년, 선원들과 소년이 라이프보트에 탄 채 표류하던 중 식량을 목적으로 소년이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선원의 일기가 발각되어 그들은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법률 교과서에 실린 실화를 모티브로 샬럿 로건 작가의 손에서 쓰여진 한편의 심리 드라마<라이프 보트>를 읽기 전에,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실제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내려갔다. 그저 소설로만 읽어갈 수 없었고, 독자로서 관망하듯 냉정하게 바라볼 수 없었기에 아마 오래도록 가슴 한켠에 답답함을 안겨줄것만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져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가?.. 답을 못하겠다. 나름대로 정의에 대해 , '정의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지난날이 의심스럽고, 깊디 깊은 마음 속의 소리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만 같아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소설의 내용은 그레이스의 회상이자 일기로 시작된다. 부유했던 집안의 맏딸이었던 그레이스의 아버지는 어느날 동업자의 사기에 휘말려 파산했고 아버지는 자살을 선택했다.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던 자상한 어머니는 상실의 늪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현실적인 동생 미란다는 조금의 좌절 끝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가정교사로 나섰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직업을 가지겠다는 생각 보다 신문 한켠에 실린 부유한 은행가 헨리의 약혼 소식을 접하고 그를 유혹하기로 한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는 작전에 성공하고 약혼자가 있었던 헨리는 그의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레이스와 결혼을 감행했고 그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탈출하여 호화로운 여객선에 탑승했지만 얼마 안가 여객선은 침몰하고 그녀는 라이프보트 14호에 탑승하여 목숨을 건졌다. 그리하여 자그마한 보트에 운명을 맡긴 서른 아홉명의 생존자들의 광기와 불신,다툼과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린 소설..
-희생양을 선택해야 한다면 분명 메리 앤이나 마리아처럼 나약한 인간이어야 할 것 같았지만, 막상 남자 중 누군가가 - 닐슨 씨였던가? - 이런 상황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보트에서 할 일이 많으므로 희생되어야 할 대상은 여자여야 한다고 말하자, 온 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가 그런 생각과 그토록 힘들게 맞서 싸웠던 건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메리 앤, 어때요? 바다에 몸을 던지면 괴로움이 한결 덜할 거예요. 어차피 죽을 거라면,. 배고픔이나 갈증으로 죽는 것보다 물에 빠져 죽는 게 훨씬 낫다고 들었어요. " - 173p-
-우리는 모두 체면을 벗어던지고 발가벗은 상태였다. 먹을 것과 쉴 곳을 빼앗긴 상황에서는 선함도 고귀함도 설 자리가 없었다.-177p-
이 소설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아니,, 친절을 떠나 소설이 생명체인양 스멀거리듯 살아나 독자인 나의 정신을 옭아매어 놓아주지를 않았다는 것이 맞을듯하다. 보트의 무게를 줄이고자 희생양을 선택할 때의 상황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고, 하디가 모두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품속에 숨겼던 것이 무엇인지도 끝내 알 수 없고, 선원이자 14호 라이프보트의 책임자였던 하디의 생존 소식을 끝내 알려주지도 않았듯이 많은 부분을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 채 끝을 맺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끝내 이 소설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예견했을것 같다. 또한 작중 화자인 그레이스가 내가 되고, 내가 그레이스가 되었던 것처럼 두서 없이 혼동됨은 이전까지 있어왔던, 간직하고 있었던,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나의 도덕 관념의 뿌리가 흔들림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두려움 때문이었고, 이후의 세월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할것 같다..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기 위해 널빤지를 잡고 있던 사람이 널빤지를 뺏으려 하는 자를 밀어낸다면 , 그건 살인인가 아닌가에 대해 긴 토론이 이어졌다. 그럼 널빤지에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 먼저 와 있던 사람을 밀어냈다면 그 사람은 살인자인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살려고 몸부림칠 테고 널빤지는 한 사람만 지탱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획일적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가? 생존한 사람의 그런 행동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존자는 불행하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가? - 262p-
도덕이란 무엇인가? 생존이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눈감을 수 있는 것인가? 혹은 나의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사건의 중심인 라이프보트 14호에 내가 있지 않았음을 감사해야 하나.. 지금까지 믿어왔던 정의 말고, 진짜 정의란 것이 있기는 할까...? 소설 한편을 읽고나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보기는 또 처음인것 같았고 오래도록... 아주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그런 소설이었음에 작가에게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