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2년 10월
평점 :
<패러독스 13>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를 정말 좋아하는데 SF 소설은 본적이 없다. 이 작가가 이런류의 책을 쓰다니....조금 의외였고 놀라웠지만 결과적으로 재미는 있었다. 이 작가는 사회문제를 소설 속에 녹여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느꼈는데 <패러독스13>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발견했다. 안락사의 문제도 그렇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인간의 심리적 갈등도 비교적 잘 표현되었으며, 이러저러한 사건의 소용돌이 안에 독자를 가둬놓고 두드리듯 사건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574P의 많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릴 정도의 강한 흡입력은 여전했지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가질 수 있는, 보여줄 수있는, 전해줄 수 있는... 독특한 창의성이 약간 결여되었다 느껴졌던 점이다. 재미는 있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이 영화가 살짝 생각났고, 저 부분에서는 다른 작가의 책이 살짝 비춰질정도였으니 <패러독스 13> 안에서 영화 두어 편, 소설 두어 편이 동시에 버무려진 맛이 난다는게 아쉬운 부분이다. 책을 읽어가며 살짝 ~ 그리고 또 살짝~ 비춰졌던 영화와 책을 마음먹고 찾아보면 적어도 다섯편은 찾아낼 수 있을듯하다.
paradox ..역설... 배리,역리,또는 이율배반이라고도 한다. 명확한 역설은 분명한 진리인 배중률에 모순되는 형태로 인도하는 것이 보통이며 논리적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나타내며, 본문은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듯 망가진 도쿄 시내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에서는 13시 13분 13초에 사망한 상태지만 패러독스 현상에 의해 또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열 두명의 생존자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가 생각났고 평행이론에 의해 또다른 세상의 '나'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작가는 평행이론과는 약간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싶은듯했다. 실제로 평행우주나 이론, 초자연적 현상인 패러독스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으로 가득차게되는데 이는 SF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재미로 읽는다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게될것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경찰 세이야와 그의 이복형제 후유키는 1억 5천만 엔 상당의 금괴와 보석 탈취범을 잡고자 잠복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13시 부터 13시 20분 사이에는 가급적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눈앞의 범인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세이야는 동료들을 지휘해 앞뒤로 포진하고 있다. 그 와중에 파출소 소속인 동생 후유키는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인 행동으로 범인이 탄 차량을 덮치고 범인은 도주를 감행한다. 후유키는 차에 매달려 범인을 따라가던 중 세이야는 총격을 입고 쓰러졌고 후유키도 총에 맞았다.충격으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만큼의 어둠이 지난 후 돌아보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버렸고 형 세이야와 후유키는 생존자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구성된 열 두명의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이런것인가 하고 느껴질만큼 망가진 세상에서 좌절 하지만 일단 이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남기로 작정하는데...
과연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살아남은 존재는 그들 열 두명이 전부인가? 인류가 모두 사라지고,시공간이 뒤틀린 세상에서 그들이 선택한 길은 무엇이며 , 왜 P-13 현상이 발생한 것인가? 그 비밀을 풀기위해 총리공관으로 향하는 생존자들은 때로는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만 하고 , 또 때로는 아무 필요도 없을 것만 같았던 야쿠자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며 나아간다. 선입견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등에 커다란 문신을 한 야쿠자는 생존자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함께할 수 없는 존재로 분류되는 그런 선입견.. 부상당한 가족이 있을 경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희망이 거의 없는 부상자를 안락사 시키고 삶을 향해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 내가 부상자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 인간이 정해 놓은 법과 관습이 모두 필요없어지는날, 모든 것은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우리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