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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조창인 장편소설: 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작가는 부성애를 그린 소설 <가시고기>를 통해 알게되었다. 참 많이도 울었고 오랫동안 기억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5년 만에 <살아만 있어줘>를 들고 독자들 곁으로 찾아왔기에 반가웠다. 이 소설도 부성애를 그린 소설이었고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거침 없이 펼쳐진다. 아무 것에도 희망을 가지지 못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자살을 꿈꾸는 스무 살 해나와 베일에 가려진 스타 작가 은재. 어린시절 은재의 친구였던 해나의 엄마와 아빠는 해나의 스무 살에 곁에 없었고 세상 어딘가에도 가녀린 해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어 외로움에 지쳐 생을 마감하려 했던 시간들을 지나 개구리 발가락을 닮은 은재와 해나가 조우하게 된다. 아니, 오래전부터 먼 발치에서나마 해나를 지켜주고 있던 은재였지만 그에게는 시한부 삶이 남아있었고, 미주와 함께 자살하려 했던 해나는 살아남았고 은재가 입원한 병원에 머물게 된다.
-생각이 짧아서 죽으려던 게 아니다. 읮가 약해 빠져서? 천만의 말씀이다. 생각을 했으면 당신들보다 더 했다. 몸과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강렬하게 맞서도 봤다. 살고 싶었지만 도무지 살아지질 않았다. 그리고 당신들이 보지 못했건 보지 않으려고 했던, 괴롭고 덧없는 인생을 솔직히 인정했을 뿐이다. 그게 비난받을 짓이라면 얼마든 하시라.-92p-
함께 자살을 기도했던 미주는 죽었고 해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 때문에 미주 가족의 원망을 들었으며, 병실을 함께 쓰는 어린 소라의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까 두려워 병실을 바꿔달라 항의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해나는 자살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혀있음을 실감하며 자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들을 하나씩 꼽아본다. 세상을 온통 적으로 돌린 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해나에게 다가온 아저씨 은재.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의 내일을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고 믿는 해나와 아빠의 죽음 이후로 엄마에게 끝모를 미움이 알알이 맺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스스로를 몰아쳤던 모녀 사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해나는 아버지 기호와 엄마, 은재와 자신이 얽힌 진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하루 또 하루를 살아내며 보여주는 감동은 짧은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 내가 시한부의 삶을 통보받고 깨달은 게 있다. 들어볼래?" 해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궁금하진 않다. 다만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사느냐 역시 그 못지않다. 인생은 산모퉁이를 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퉁이를 돌아봐야 거기가 사막인지, 초원인지 알 수 있다. 여러 모퉁이를 돌아봐야 해. 그래야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말할 수 있는 거다." -190p-
늘 자살을 꿈꾸는 해나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기 위해 애쓰는 은재의 눈물겨운 노력은 독자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것 같다. <가시고기>만큼 눈물샘을 자극하며 줄줄 흘렸던 눈물과 애절함은 조금 덜 했지만 이 소설은 이 소설 나름의 감동이 있고 영화로 만들어져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살아만 있어달라는 은재의 말이 내게는 왜그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미혼모의 아이를 친자식보다 더 뜨겁게 가슴에 품어준 사람이야. 나는 엄마로서 일부러라도 냉정하게 굴어야 했어. 딸에게 미움받는 엄마가 되자. 그래야 해나 스스로도 엄마보다그이를 더 찾을 테니까. 그래야 내딸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고 오래오래 사랑받는 아이로 자랄 수 있을 테니까. 이게 부모의 마음이야. 한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 봤어. 부모의 마임이 어떤 건지? 없을 거야.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 그게 옳아.- 32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