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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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한겨레 사회부 기자 임지선씨가 엮어낸 책으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줄임말이 책제목이 되었단다. 현실은 시궁창이라...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너무 아픈 청춘들에게 섣부른 위로를 건넬수도 없는 현실에서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라 생각되었는데 읽다가 눈물이 나서 한참 울어버렸다. 어떤 세상이든 다 그렇겠지만 빛과 그림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요즘은 힐링이 대세인가보다. 너도나도 힐링.. 치유의 글을 찾아 읽고 거기서 어떤 위안을 받고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위안 조차도 버거운 이들에게는 한낱 그림 속의 떡이 아니었을까.. 먹을 수도 없고, 가질수도 없는 그림의 떡.. 그저 굶주린 배를 안고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책 <현시창>은 너무 아파 소리도 지를 수 없을만큼 지쳐있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스치듯 지나쳤던 슬픈 젊음이 보내는 소리 없는 외침에 가슴 한켠이 저려오고 아파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 한권..

 

임지선 기자는 기자로서 나의 세대에 관해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고민했고 신문과 방송에서 살인범으로,자살자로,사기꾼으로 등장한 그들도 기자 처럼 젊은 청춘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삶을 취재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우리는 뉴스에서,신문에서 짧게 보도하는 내용을 보고 들으며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왜 살인범이 되었고,사기꾼이 되었고 자살자가 되었는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마지막 행위만을 두고 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한탄을 하지만 그들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간 기자의 수첩을 보니 온통 아프고 또 아픈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위안의 말조차도 버거운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마트 지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울시립대 학생 황승원씨의 죽음 위에 덧칠해진 대형 마트의 횡포에서 사회는 그들 남매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을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가느다란 줄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어린 여동생의 눈물을 봐야하는 나도  너무 아프다.. 지나치다 못해 아이들이 병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 죽어가는 이 세상에서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생각해본다.. 영재들만 모아놓은 카이스트에서 연이어 발생한 자살 학생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과열된 경쟁에서 죽음을 택해야만 했을까...사회가 부추긴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내 아이만 아니면 된다는 잘못된 부모들의 생각이,,, 돈이면 다 된다는, 결국 성공이란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자식을 위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 두텁게 가려져 있지만 결과적으로 부모를 위한 경쟁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했더랬다... 묻지마 살인,,,잘나가던 강남 키드들이 묻지마 살인범이 된 이유에 대해,,냉동 창고에서 죽어갔을 젊은 아들을 위해,,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일하다 얻은 병 때문에 죽어갔던 꽃다운 청춘을 위해... 모두 깊은 생각을 해야할때가 아닐까 싶다..

 

<현시창> 에필로그에 임지선 기자의 편지가 실려있다... 한글자 한글자를 읽어 내려갈때마다 눈물이 솟구쳐 힘겨웠지만 여기에 다시 옮겨본다...

 

비와 당신, 그리고 앞으로 만날 당신에게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비가 왔습니다. 당신이 다니던 학교에 갔지요.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를 다니다가 경제적 부담에 1년 만에 그만두고,다시 수능을 쳐 입학했다는 서울시립대에는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지나다녔을 캠퍼스, 수업을 들었을 강의실을 천천히 돌아보며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스물넷, 너무 젊은 나이에 죽은 당신을 말입니다.

 

당신은 수업만 듣고 곧바로 집에 가는 학생이었다지요. 밥은 학생식당에서 2,500원짜리만 먹었다고 과 동기들이 전했습니다. 동아리도 가입하지 않고,모꼬지도 가지 않았다고요. 누군가 당신에게 꿈을 묻자 " 엄마와 편히 사는 것"이라 했다는 당신, 삶이 외롭진 않았나요. 이마트 기계실에서 질식하는 순간에 무엇을 떠올렸나요.

 

빈소에 가니 당신을 무척 닮은 여동생이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많이 울면서도 끈질기게 당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부모의 사업 실패 후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상태에서, 오빠는 늘 동생의 공부까지 챙겼습니다. 동생의 눈물에 가슴이 너무 아파 명함을 건네며 힘든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당신처럼 죽도록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지. 비싼 등록금에 학자금 대출을 받고 위험한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가도록 권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보증금 1000만 원짜리 월세 반지하방에 이제 오빠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가 하는지를 묻는 눈동자 앞에서,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섭씨 1,600도 쇳물에 빠져 죽은 당신을 만나러 간 날에도 비가 왔지요. 가을비가 어찌나 차갑던지 사고 현장, 가대한 용광로 옆에 서서 몸을 떨었습니다. 그렇게 크고 뜨거운 용광로 위에서, 당신은 쇠막대기 하나를 들고 허리 높이에 허술하게 걸린 쇠사슬 안전대를 한 발 넘어 청소작업을 했다지요...

 

용광로 앞에서당신의 영정사진을 놓고 당신의 타다 만 다리뼈와 두개골을 건져놓고, 부모님은 오열하셨습니다. 회사 사람 한 분이 당신이 이듬해에 결혼을 하려 했다더군요..당신의 죽음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용광로 쇳물에 빠지는 사고가 이후에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같이 젊고 건강한 노동자들이 쇳물에 빠져 죽는 나라, 엄청난 흑자를 내며서도 안전시설을 갖추는 데는 인색한 기업, 그런 세상을 살다간 당신을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저는 그저 장례식장 밖 차가운 빗속에 서 있었습니다...... 이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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