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링의 13소녀
옌거링 지음, 김이경 옮김 / 뿔(웅진)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크리스천 베일 주연,장예모 감독 영화 원작소설 <진링의 13소녀>

중일전쟁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핏빛 역사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고 그로인해 발생된 반일감정 또한 깊게 자리하기에 옌거링 장편소설 <진링의 13소녀>를 읽어가는 내내 아프고 또 아픈 우리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겪어보지 못했지만 수많은 자료와 역사책,가르침으로 덕분에 직시하게 된 역사적 상황 속에 진링의 13소녀와 13명의 기녀들의 선택이 아프기만 하다. 어리디 어린, 순수하디 순수한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두 신부의 고뇌가 손에 잡힐듯하고 문을 열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 고뇌에 빠져본다. 

 

중립적 위치를 지키려던 잉글먼 노신부와 양저우 밥이라 불리우는 파란눈의 부신부. 태생은 파란눈이되 중국인으로 길러져 생각마저도 중국인같은 밥과 잉글먼 신부는 자신들의 보호아래 피신하지 못한 성가대원들을 지켜내고자 성당문을 굳게 잠그지만 한 무리의 기녀들이 담장을 타고 넘어와 그들에게 자비를 구한다. 그리하여  난징 최고의 기녀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소녀들은 그녀들을 혐오하면서도 알수없는 은밀한 비밀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어느날 부상당한 채 숨어든 소령이 있었고, 성당 밖에서는 산을 이룬 시체들을 매장하는 시체매장원에 의해 발견된 두 명의 병사가 있다. 그들을 성당으로 인도했고 두 신부는 또다시 고뇌에 휩싸이지만 결국 그들을 성당의 정원에 들여놓는다. 참.. 난감한 일이다.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려는 신부를, 군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지켜야 할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담보로...  외국인들에 의해 설립된 안전지대도 결코 안전하지 않은데 성당이라고 안전하기만 할까... 매장원에의해 살아서 성당에 오게된 병사들의 생생한 증언은 모두를 경악하게만하고 성당 밖은 시체가 산을 이루었으며 피의 강이 흐른다..

 

                                         

 

-"여기 형세는 이미 통제 불능이네. 물도 없고 식량도 없는데 다시 세 사람이 늘다니... 생각 좀 해보시오. 열여섯 명의 여학생 중에 가장 큰 애가 이제 열네 살이오. 당신들이 내 위치라면 어떻게 하겠소? 내가 하는 것처럼 군인들을 여기에 못 들어오게 할 것이오.군인들은 일본군을 부를 거고,이렇게 하는 게 이 아이들에게 공정한 건가요?" - 

 

어디를 가나 제 한몸의 평안과 보신을 위해 배신의 길을 걷는 매국노가 있듯 난징 대학살 현장에도 매국노는 있었고 그들은 무장한 자국 병사들을 설득하기에 바쁘다. - " 중국 사병 여러분! 위대한 일본제국 군대는 포로를 특별 대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기를 내려놓기만 한다면 쌀밥과 뜨거운 차,그리고 제국 군대의 통조림 고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혹한의 날씨와 굶주린 병사들 사이로 일본군들의 삐라가 흩날리고 상관들의 배신과 명령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소대들은 투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에 ' 제네바 협약'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그렇게 산처럼 쌓인 시체 산에 한 사람의 몫을 더한다...

 

끔찍한 과거, 학살, 전쟁의 참혹함.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전쟁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우리의 역사도 핏빛으로 물들었음을 알고있는 독자들은 우리의 아픈 과거가 되살아나 참담한 심정이 될듯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과 그들의 꽃같은 소녀시절이 여기에도 있었으니 그 참혹함을 표현하기에 죄스러워진다. 페허가 된 난징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폐해져가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도 있고, 구씨가 죽은 연못의 물을 먹은 성당의 소녀들처럼 내 속도 울렁거림이 멈추지를 않는다..

 

세 명의 군인을 성당에서 끌어낸 일본군은 환청인듯 들려오던 어린 소녀들의 소리를 감지하고 학생들이 아직 성당에 있음을 알게된다.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성당에 한 소대의 일본군이 총칼을 차고 들이닥쳐 소녀들의 안전을 위협하는데 두 신부는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것인가..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기녀들의 아픈 선택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며 그렇게 핏빛으로 점철된 역사와 더불어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13살의 소녀중 한명이었던 멍수쥐안은 살아남은 기녀들과 조각난 역사의 증언을 찾아나서며 회고하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 "다른 민족의 여성을 침범하고 더럽혔지만 ,사실 그 민족의 존엄성을 간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러한 사진을 전리품으로 삼은 것은 능욕을 당한 민족의 영혼을 깊게 상처주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깊은 영혼의 상처는 몇 세기가 지나야 치유될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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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대학살 -

1937년 12월∼1938년 1월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과 그 주변에서 일본의 중지파견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인 포로·일반시민 대학살 사건이다.

난징사건이라고도 한다. 일본군이 중국 만주에서 산둥성지난을 거쳐 난징으로 진격 중에 약 30만 명을 살해하였고 난징 점령 뒤에 약 4만 2000명을 살해했다. 전후 극동군사재판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개의 자선단체가 난징에서 매장한 유기시체만도 15만 5337구(그 중 어린이가 859구, 부녀자가 2,127구)였고, 그밖에 양쯔강에도 대량의 시체가 버려졌다.

학살은 기총()에 의한 무차별사격과 생매장, 또는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는 등 극히 잔학한 방법으로 자행되었다. 또한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방화(시내의 약 1/3이 소실됨)도 횡행하였다. 피해는 중국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미국·영국독일 등의 외교관 저택에도, 또한 중국인 피난민을 구조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학교·교회 등도 약탈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극동군사재판에서 당시의 총사령관인 마쓰이가 이 대학살의 책임자로서 사형에 처해졌다. 또 당시의 제6사단장 하세 히사오[]를 포함한 여러 명이 난징의 법정에서 전쟁범죄자로서 사형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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