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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원미동 사람들>
예전에 한번 읽었던 내용이지만 최근에 청소년 아이에게 읽히고자 다시 읽어봤다. 표지도 같고 내용도 같은데 오래전에 읽었던 때와 지금 읽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느낀점도 다르고 감회도 새로웠으며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 혹은 사람들이 나를 원미동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기 때문일까? 개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타인을 돌아볼 수 있을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건 아닐거란 생각이 드는 늦은 밤이다.
경기도 부천의 어느 한 동네 원미동. 똑같은 집장사들이 지어놓은 주택. 지금이야 세련된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겠지만 이 글이 쓰여질 당시만해도 질척이는 거리와 도시의 세련됨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시골동네였나보다. 가난에 찌들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타관 사람들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넘어야만 했던 소시민의 삶 한자락이 살포시 느껴진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아귀다툼도 들릴듯하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지붕낮은 집들도 보일듯하다. 한참 후에 태어난 나로서는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마음을 그저 짐작해 볼 뿐이지만 거기서 내 어린시절 한토막을 발견하는 호사를 누렸고 빛바랜 동무들과 뛰놀던 작달막한 골목길과 연탄재가 눈앞에 펼쳐진다.
살이 에일듯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이삿짐차 짐칸에 짐처럼 얹혀 원미동에 자리잡게된 젊은 부부의 사연은 이렇다. 서울의 높은 전세값을 충당할 길이 없어 숫한 이사 끝에 서울시 전세값에 조금의 돈을 보태면 집을 살 수 있기에 늙은 노모와 어린 딸, 만삭의 아내와 함께 찾은 마지막 희망인 열여덟평 연립주택. 그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 도착한 원미동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11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지만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화자의 나지막한 목소리 혹은 회상에 내 기억을 얹어놓듯 담담히 펼쳐진다. 작가는 가난에 찌들리고 불평등한 세상에 쫓기듯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희망을 말하고자 했음인가, 곳곳에서 드러나는 원미동 사람들의 희망 한 줌 내 손안에도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