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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상에 숟가락 하나>
숟가락 하나... 밥을 먹을때 사용되는 숟가락이 지상에 하나뿐이라... 함축적 의미를 담고있다 여겨진다. 숟가락이 지상에 하나밖에 없을리 없건만 왜 현기영 작가님은 숟가락 하나라는 표현을 하셨을까... 아주 오래전에 티비에서 숟가락 일곱개에 관한 미니시리즈를 방영했던적이 있었다. 김정현? 이정현? 아무튼 이런 이름을 가진 칠남매의 맏언니로 열연했던 소녀는 나중에 꽤 유명한 가수로도 데뷔를 했으며 테크노 댄스가수로서 화려한 활동을 했었는데 가수로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던 그녀를 볼 때마다 일곱개의 숟가락 속 맏언니의 모습이 겹쳐져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여섯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나가는 이야기로 간단히 정리하면 꽤나 진부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드라마를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일곱개의 숟가락을 지키고자..그 일곱개의 숟가락 위에 허기를 담고, 눈물을 담아 하루치의 생명이 연장되었던 처절함이 숟가락 위에 올려진 맨밥에 와닿는다. 숟가락의 의미는 삶이었으며, 생명이었음을.. 한숟가락 위에 올려진 밥이 가져다주는 생명 연장의 소리없는 울림을 현기영 장편소설 속에서 다시 만났다.
배곯던 시절을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도 우리들의 윗세대의 이야기라 여기더라도 ’숟가락 하나’에 담겨진 ’지상에’ 의미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 이 소설은 현기영 작가님의 어린시절이었으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생생한 장면이었음을 보았다. 알려진 사실, 보도된 내용, 학습된 역사 속에 감춰진 전쟁의 소용돌이를 어린 아이의 눈으로 느끼며 고달프지만 희망이 꿈틀대는 소리없는 가난과 더불어 제주도의 현무암에 덧칠해진 피맻힌 역사를 본다. 작가님의 고향 제주도가 이 소설의 배경인데 지금까지 나에게 제주도란 그저 아름다운 섬이었고 관광지였지만 이 한권의 소설로 인해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돌아본다. 3.1사건, 4.3 봉기, 5.10 선거,양민학살,전쟁,,,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었던 제주도민들의 절규를 작가님의 어린시절 속에서 함께 마음졸이고, 애닳아하고,두려움에 몸을 떨어본다.
어릴적의 흉터가 늙어서 다시 드러나고 그 흉터를 통해 잊혀졌던 그 시절이 다시 되살아난다는 작가님의 마음은 내게도 있었던 어린시절의 흉터를 더듬어보게 만들었고 그 흉터를 꽁꽁 싸매고 있었던 백색의 무명천을 한겹 한겹 벗겨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가난했고 외로웠지만 모두가 가난했기에 기죽을일 없었고,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던 장난질은 평화의 시기였고 평화의 시기가 지난 뒤 찾아온 암흑의 시기에는 숨소리조차 크게 내쉬면 안될만큼 두려웠으며 급박하게 돌아갔던 어둠의 잔재들 .. 이 모든 상황들은 이후 세대인 우리들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절히 느껴지고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 또한 귓가에 메아리쳐온다.
웬깅이, 똥깅이, 돌팍이,,, 별명으로 불리웠던 어린시절, 덕지덕지 얹혀진 까만 때, 부스럼, 바다, 해안, 전쟁, 한라산, 폭도, 죽음, 동포, 아버지, 어머니, 대지와 자연 안에서 성장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고있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청소년 성장소설로 읽어도 좋지만 우리들이 몰랐던 제주도의 아픈 과거를 담고있기에 청소년 권장도서로 중고생 아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글을 쓰면서 어린시절의 행복과 즐거움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까지 얼만큼 아프셨을까..
현기영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 가 당선된 이래 중후한 문체로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잊혀져간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되살리고 조명하면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지상에 숟가락 하나], 그리고 수필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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