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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백양나무의 어린 가지로 태어나 암소의 회초리로 쓰이기 위해 농부 최씨의 손에 꺾이고,
여러곳에서 다양한 모험을 하며 나중에는 똥친 막대기로 쓰이지만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봇도랑에 뿌리를 내린다.-
어린 나뭇가지가 의인화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때론 어린 나무의 이야기 인지
어린 소녀의 이야기 인지 모를만큼 세심한 묘사가 돋보였으며 ,중간중간 들어있는 삽화
만으로도 한편의 그림 동화를 읽은 듯 알싸한 느낌이었다.
잔잔한 감동과 알싸한 삽화가 함께하는 <똥친 막대기>는 10월의 깊어가는
가을 내음이 깊게 묻어나는 책이었다..
"면도칼로 날려 버린 듯 매섭게 질려 나갔습니다.
나무라 해서 고통을 모르는 줄 알았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
<-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버렸던 나뭇가지들도 이런 고통을 안고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나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살았던 것일까..
60p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을 다스릴 때 아이에게 회초리를 스스로 마련해 오라고
윽박지르곤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를 위한 배려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가하는 이중의 형벌일 테지요.
매를 맞는 것은 기왕에 닥친 일이니까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맞을 회초리를 스스로 마련하는 동안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될것이 분명합니다."
<- 스스로의 회초리를 마련하는 재희를 보며 어린 백양나무가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초리를 만들거나, 찾아오라고 시키는 어른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이중의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지만 똥친 막대기
속의 어린 백양나뭇가지로 인해 어른들이 바꿔야 할 점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따끔하게 꼬집어 주는듯하다.
어미나무의 곁가지에서 암소의 위협용 회초리로 선택되어 재희네 집 싸리문에
걸렸다가 어린 나무가 좋아하는 소녀의 회초리가 되었을땐 미안해하고,
결국 뒷간에서 똥친 막대기가 되어버렸지만, 언제나 꿈과 희망을 한아름 안고 살아가는
어린 백양나무를 닮아가고 싶어진다.
164p 나는 비로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내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내 운명의 속살 안으로 가만히 손을 내민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사방 어디를 살펴 보아도 내가 뿌리를 내리고 다시
새잎을 피우려는 작업을 훼방놓을 천적은 없었습니다. 그대신 나는 필경
외로울 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혼자서 자란 나무의 그늘은 가지와 잎이 많아 더욱 시원하지요.
똥친 막대기가 되어서도 꿈과 용기, 희망을 잃지 않고 마침내 봇도랑에 뿌리를 내리는
어린 백양 나무의 이야기는 소근소근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노랫말 같았고,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든다.
거센 파도처럼 격정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햇빛이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위의 평화로움 같은 잔잔한 감동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