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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백양나무의 어린 가지로 태어나 암소의 회초리로 쓰이기 위해 농부 최씨의 손에 꺾이고,여러곳에서 다양한 쓰임새로 쓰이지만 어린나무는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메마른 가지의 자양분인 물을 갈구하듯이 의연하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비가 많이 오던 어느날 돼지의 등에 실려 몸을 맡긴채 흘러흘러 햇볕을 잘 받을 수 있는 봇도랑에 뿌리를 내린다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삽화는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묘미로 다가온다.
백양나무 어린가지가 의인화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때론 어린 나무의 이야기인지 어린소년의 이야기인지 모를만큼 세심한 묘사가 돋보였다.
25p "면도날로 날려 버린 듯 매섭게 질려 나갔습니다. 나무라 해서 고통을 모르는 줄 알았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 <-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버렸던 나뭇가지들도 이런 고통을 안고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나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살았던 것일까..
암소의 회초리로 쓰이려던 어린 나뭇가지는 다행이 회초리로 쓰이지 않았지만 농부 박씨의 사립문에 엮인 싸리나무 미이라들의 좁은 틈에 끼이게 된다.
그날밤 어린 나무가 좋아하는 재희의 시험성적 때문에 어머니 최씨는 재희에게 회초리를 꺾어오라고 말하게 되고 재희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사립문에 있던 어린나뭇가지를 택하게 된다.
60p "어른들은 보통 아이들을 다스릴 때 아이에게 회초리를 스스로 마련해 오라고 윽박지르곤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를 위한 배려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가하는 이중의 형벌일 테지요.
매를 맞는 것은 기왕에 닥친 일이니까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맞을 회초리를 스스로 마련하는 동안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될것이 분명합니다."
<- 스스로의 회초리를 마련하는 재희를 보며 어린 백양나무가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초리를 만들거나, 찾아오라고 시키는 어른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이중의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지만 똥친 막대기 속의 어린 백양나뭇가지로 인해 어른들이 바꿔야 할 점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따끔하게 꼬집어 주는듯하다.
어미나무의 곁가지에서 암소의 위협용 회초리로 선택되어 재희네 집 싸리문에 걸렸다가 어린 나무가 좋아하는 소녀의 회초리가 되었을땐 미안함에 몸둘바를 모르고 , 결국 뒷간에서 똥친 막대기가 되어버렸지만 어린나무는 꿈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164p 나는 비로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내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내 운명의 속살 안으로 가만히 손을 내민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사방 어디를 살펴 보아도 내가 뿌리를 내리고 다시 새잎을 피우려는 작업을 훼방놓을 천적은 없었습니다. 그대신 나는 필경 외로울 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혼자서 자란 나무의 그늘은 가지와 잎이 많아 더욱 시원하지요.
똥친 막대기가 되어서도 꿈과 용기, 희망을 잃지 않고 마침내 봇도랑에 뿌리를 내리는
어린 백양 나무의 이야기는 소근소근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노랫말 같았고,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든다.
거센 파도처럼 격정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햇빛이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위의 평화로움 같은 잔잔한 감동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