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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 지식과 지혜를 실천으로 이끄는 마음 여행서 ㅣ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4년 12월
평점 :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우리 시대 교양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대표적인 인문학 작가로 자리매김한 채사장이 5년 만에 다시 시리즈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작가는 전작 1, 2권에 이어 3권이 아니라 0권 <제로> 편을 출간하며 전례 없는 시리즈 구성을 보임과 동시에, 0이라는 숫자로 인류의 방대한 지성사를 연결하며 깊은 지식까지 아울렀다. 그리고 이제 5년 만의 신작 ∞권 <무한> 편은 깊은 지식으로 잠영했다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실천’의 영역을 다루며, 10년간 인문 분야에 큰 반향을 일으킨 시리즈의 정점을 찍는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수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왜 알면 알수록 채워지지 않을까? 작가는 이 문제에 오랜 시간 천착한 끝에, 지식이 삶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실천하지 못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실천이란 바로 나와 세계의 실체를 알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간 지식의 모든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자신만의 연결고리로 인문학의 대축적지도를 그려낸 작가는 어느덧 지식과 지혜를 넘어 삶이라는 영원한 숙제를 풀어내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깨달음으로써 요원할 것만 같던 좋은 사람이 되는 법,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법, 고요하고 평온하게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인터넷 알라딘 제공>
현대인은 지식의 광야에 던져졌다. 그곳은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지평선만이 끝없이 나를 둘러싼 광활한 공간이다. 길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현대인이 지식의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지도를 제시하는 일이었다. 다양한 학문 분야 간의 연결고리를 거대하게 그려낸 이 대축적지도는 현대인이 지식과 지식을 이어가며 길을 헤매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 지도 역시 또 다른 지식이었던 까닭이다. 광야가 가물듯 길도 메말랐고,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지쳐갔다. 이제야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쏟아지는 지식이 아니었다.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앉아 그것을 소화할 여유. 우리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실천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천은 광활한 지식의 대지 저변을 흐르는 지하수와 같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메마를 수밖에 없고 그 땅에는 비쩍 마른 잡초만이 앙상한 머리를 내밀 뿐이다. 실천의 과정을 통해 지식이 소화되어 지혜가 될 때, 지혜는 땅 위를 적시고 대지는 그제야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이 책의 목표는 뚜렷하다. 지식의 포화 시대에 그것을 소화할 나머지 절반의 영역으로서의 실천을 제안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다. p8~9
하지만 공허하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도 무언가 부족하다. 더 많은 콘텐츠를 욕망하게 되고 그것을 향유하지만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디어의 형식에 따라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짧은 길이의 미디어는 당연하게도 긴 길이의 콘텐츠를 담아낼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소비자가 극도로 많은 양의 콘텐츠를 접하게 되지만 동시에 극히 제한된 콘텐츠만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p72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분절된 시간을 원래의 연속된 시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비어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행위하지 않는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 하지는 않지만 쉬운 방법은 아니다. 누구나 이렇게 변명한다. 그걸 누가 모르나? 나도 비어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하지만 돈을 벌고, 가족을 챙기고, 사회생활을 하고, 내가 해야할 의무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걸 하지 말라는 것인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둘 다 취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겨우 들 수 있는 무거운 물건 이라면 지금 것을 내려 놓아야만 다른 것을 들 수 있다. 당신의 현재 삶도 무겁고, 새로운 삶도 무겁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p74
방법은 없는 것인가? 몰아치는 파도를 잠재워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다행히 우리는 이제 안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 그것은 마음의 심해에 있다. 바다를 보라. 행복, 분노, 질투, 혼란, 우울, 쾌락, 즐거움. 이 모든 감정의 파도는 바다의 표면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파도의 바탕이 되는 깊은 마음의 심해, 텅 비어 있음은 파도치지 않고 흐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깊게 침묵한 이유는 이 움직이지 않는 심해에 닿기 위해서다. 이제 이곳에 이르렀고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고요와 평온이다. 사람들은 고요와 평온도 감정의 하나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요와 평온은 인간적 감정에서 비롯된 무엇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적 상태다. 이것은 바탕이자 배경으로, 모든 인간적 감정은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고요와 평온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변화하는 고통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행복이라고 이름 붙일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면 그에 부합하는 유일한 실체는 이것 뿐이다. 우리는 고요하고 평온한 이 텅 비어 있음을 이렇게 불러야 한다. 진정한 행복. p140~141
꿈이 환영인 것처럼 현실도 환영이라는 진실이 우리를 반드시 무기력과 허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같은 깨달음에도 어떤 이는 이 순간이 환영이라는 진실을 긍정적인 삶의 태도에 연결한다. 꽃이 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꽃병에 꽂아두듯, 그는 환영처럼 사라질 현실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현실이 환영이고 유한하다는 것은 존재론적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기력으로 연결할지 혹은 긍정적으로 수용할지는 주관적 해석이다. 삶을 허무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 평가할 것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삶이 유한하다 해도, 삶이 영원하다 해도 그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다 평가할 것이다. 현실이 환영임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저 삶에 너무 빠져들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계가 유의미하다는 판단에서의 물러섬이고, 동시에 세계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의 물러섬이다.
시야가 좁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평가에 익숙하다. 그들은 좋아 보이면 긍정하고 나빠 보이면 부정한다. 매력적이면 끌어당기고 혐오하면 밀어낸다. 눈에 보이면 있다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한다. 존재는 실재라고 생각하고 부재는 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렇게 쉽게 판단해버리는 이유는 이들의 사유가 거칠어서다. 하지만 세계의 실상은 언제나 섬세하다. 세상을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지혜가 요구된다. 미각이 섬세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달고 짠 맛에만 끌리듯, 지혜가 섬세하지 않으면 극단적 사유에 쉽게 이끌린다. p237~238
물질은 중독적이기에 당신이 그것을 너무 적게 가질수록, 또는 너무 많이 가질수록 그것을 더 사랑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한가? 그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샤워를 할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찬물과 더운물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온도를 맞추듯, 자신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정도의 물질을 마련해야 한다. p317
천천히 눈을 뜬다. 충분히 쉬었다. 침묵은 오래 지속 되었다. 세상은 아직 적막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시계를 본다. 이제 사랑하는 이들을 깨우고 그들을 챙긴후 출근할 시간이다. 어제는 나도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화를 내었으며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조금은 줄이리라. 심판이나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보상이나 인정 때문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경험하기로 한 것도 나임을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으리라. 나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으리라. 이제 시간이 되었다.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아간다. p339
좋아하는 배우, 혹은 감독의 작품이 영화관에 걸리면
고민없이 기꺼이 관람하는 것처럼
채사장의 책들도 그러한 것 같다.
안보면 궁금한 지대넓얕시리즈!
첫 권이 나온 지 10년 만의 완결편이라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지난 연말에 구입한 책인데
이번엔 왠일인지 진도가 잘 안나가서 이제야 다 읽었다.
가끔은 궁금하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혼란스럽고 주저앉고 싶은데,
어떻게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바쁘게 걸음을 옮길 수가 있는 걸까?
모두가 삶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상에 빠진 자가 현실을 보지 못하듯,
현실에 빠진 자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무엇이 그리도 불만인가?
무엇이 그리도 혼란스러운가?
그리고 충고가 이어진다.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마음을 편히 가져라.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노력하고 매진해라.
꿈을 펼쳐라.
방황을 끝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어른이 되어라. p30~31
제법 두꺼운 책 내용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다.
새해가 되면...
구정이(설날이) 지나면...
3월부터...
이렇게 미루어 두었던 나의 계획들과 다짐들을
이제는 시작할 때이다.
괜찮아, 잘하고 있고, 잘할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