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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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간을 거슬러 간다면 나는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그보다 더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잘살고 싶다..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내 삶이 그렇게 마냥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되는 것은 아니기에 (늘 이렇게 제 잘난 맛에 산다. 그래도 그게 자기비하보다는 낫지 않냐... 는 식으로...)

단지, 어렸을 적 언제쯤으로 되돌아간다면 하는 쯤에서 정리하곤 한다...

 

그때는 참 순수하고, 세상에 두려울 것도 눈치볼 것도 없었는데.. 하는 느낌이랄까..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가슴속에 '추억'을 담고 살아간다.

그것이 가끔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고,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그리움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처일 수도, 고통이나 회한일 수도 있다. 그럴때는 '추억'이라기 보다는 그냥 과거의 고통, 내지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그 '추억'속에는  그 당시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의 깊이, 소통의 정도에 따라

그것을 기억하는 것도 다를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와 함께 관계를 맺고 소통 하고, 존재했던 수많은 이들이

아직까지도 내 삶에 어떠한 형태로건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나또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사람이 너무도 소중하고 애틋하고 그 어느누구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는 존재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청구회 추억'은 단순히 추억을 넘어서, 관계와 존재에 대해서,

또 가르치고 배우는 삶에 대해서,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을 채워가는 무수한 만남과 그것이 지니는 진정성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고, 성찰하게끔 한다.

 

 

우연한 기회에 절대 우연히 사귀지 않은 소년들과의 만남과 그들과 맺은 관계가

사형을 선고받고 삶의 가장 막다른 지점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관계로 승화시켜내는 신영복선생님의

자유로움과 인간에 대한 존중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무게와 깊이로 만남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그 속에서 나는 어떠한 입장의 동일함을 갖고 있는가?

어떠한 진정성을 담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차피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스승이기도 합니다"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어떠한 삶의 깊이에서 나온 것인지 새삼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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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육의 성공 - 경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의 학력으로
후쿠타 세이지 지음, 나성은.공영태 옮김 / 북스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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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산타클로스와 핸드폰 노키아로 유명한 나라 핀란드.

국가 경쟁력 1위, 청렴한 나라, 여성권한척도 에서도 3위안에 손꼽히는 나라 핀란드

그리고, PISA(학업성취도 국제 비교 연구)에서 수년째 1위를 하고 있는 나라 핀란드.

지금 전 세계가 핀란드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영어몰입교육이니, 사교육 열풍도 모자라 학교와 아이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서열을 매기는 일제고사에 반대해

현장체험을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고 교사들을 해임시킨 나라 대한민국도

PISA에서 2위라는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렇게 교육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교육철학을 갖고 있는 한국과 핀란드에 세계는 또다시 놀라고 있다.

그 비결과 차이는 무엇일까?

 

1. 아이들이 '나 스스로를 위해서 공부한다'

핀란드는 굳이 경쟁을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그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한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사회도 학력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다. 교사도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것은 사회가 자신을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안심과 인권을 소중히 하는 복지사상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평등한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교육의 기본은 등ㅅ를 매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발달을 지원하는 데 있다는 점을 철저히 한다.  특히 사회 여러 곳의 루트를 통해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학교 교육 제도가 마련되어 학습을 보자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3. 학교 교육이 최대의 효과를 올릴 수 있도록 교사를 전문가로서 신뢰하고 교사가 일하기 쉬운 직장을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서 국가의 교육 관리 권한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학교, 교사 개개인에게 교육 권한을 이양하였다.  사회전체가 교사를 신뢰하고 있으며 교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 교육받을 권리를 복지 정책으로 보장하고 있다. 초등하게서 대학까지  수업료는 무료일 뿐만 아니라 고등하교까지는 교재나 교구, 급식, 통학요금 등 여러 방면의 학습 환경이 무료로 제공된다. 또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의 하숙비에도 역시 보조금이 나온다. 학력 향상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아이들이 만족하는 충실한 학교생활을 주요 교육 과제로 삼고 있다...

 

학교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문제는 언젠가 학교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학생들의 태도와 가치관을 존중해나가며, 학생이 만족하고 충실하게 지내는것이 학교 생활의 목적이며,

가르치는 것 보다 배우는 행위 자체에 역점을 두고, 학교란 본래 학생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곳이며

교육의 최종목적은 '아이들과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나라 핀란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에서 당당히 한 주체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힘과 여유를  키워주고,

마음놓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인다는  그런 믿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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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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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후배와 얘기를 하다가,  늘 힘들다고 얘기하고, 늘 어렵다고, 죽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과

도대체 어떻게 관계를 맺는게 좋을지에 관한 얘기를 나눈적이 있다.

 

처음에는  하소연과 넋두리 또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상대에게 '공감' 하며,  위로도 하고,

맞장구를 쳐가며 얘기를 잘 들어주다가도, 일방적으로 말하기자와 듣는자의 역할이 고정되다보면

듣는자는 어느새 한계에 도달하게 되고 어느순간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럴때는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지, 그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 무언가 '조언' 또는 설득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관계'의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건 '내'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줘야 하나 혼자 고민하며,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상대방은 어느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페이스로 돌아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땐 심히 배신감(?) 조차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의 '생존본능'이란 참 무섭고,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자기 문제는  자기가 가장 잘알고 있으며, 해답 또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언가 조언과 충고를 해주거나, 자기보다 훌륭한 누군가, 또는 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와 용기를 찾아가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 잘 나가는 사람들, 위인들은 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눅들게 하고,

 '나는 그들처럼 잘 난 것도 없는데...' 하며 오히려 의지를 꺽어버리고, 오히려 '잘난 그들'과 비교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더욱 폄하시키거나, 비하시키게 된다는 거다.

 

반면에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저 사람도 해냈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지를 북돋아 주며, 절망속에서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힘들고, 지쳐, 더이상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니 세상 모든일과 사람들이 나에게 태클을 걸고, 정말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정신과 의사이면서, 심리학자인 빅터프랭클이 '죽음'밖에는 단지 기대할 것이 없는 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는지, 아니 오히려 그를 수감하고 있는 나치들보다 마침내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밝혀놓는 이 책은 우리모두의 삶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나치의 수용소에 조차도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때의 '선택'의 기준은 바로,  '삶의 이유' '삶의 의미' 인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을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으로 빠뜨리는 것은 실은 어떤 사람이나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또 그 상황에 대해  어떤 반응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 선택은  내가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싶은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가 꾸는 꿈은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삶이 괴롭고 힘들다면,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내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

내 삶의 '이유'를 찾는것,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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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버스
존 고든 지음, 유영만.이수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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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에서 더 이상 즐거울 일도, 기뻐 뛸 일도 없고, 마치 온 세상이 한통속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 것 같고,

도대체 왜 나한테 만날 이런 일만 생기는 거야! 라며  삶의 벼랑 끝에 선 우리의 주인공 '조지'

 

팀과의 중요한 회의를 앞둔 월요일 아침,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바퀴는 펑크나 있고,

할 수 없이 한 버스에 오르게 된다. 이름하여 '에너지 버스'

그리고 그 순간 부터 조지의 인생 대역전이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나 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자신'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간극의 차이 만큼 우리는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언제나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나 대신 내 인생의 결정권을 통째로 내 맡기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맡은 수 많은 역할과 책임에 짓눌려 무엇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것 조차도 잊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습관적으로 '난 너무 불쌍해~ '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즉시 당신버스 운전대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걸까?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이상태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것...

최소한 지금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그 출발은 바로 당신버스의 운전사는 바로 '당신자신'임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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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버스 2
존 고든 지음, 최정임 옮김 / 쌤앤파커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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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까지는 (에너지버스1) 별반 새로울 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진부하다고 하는게 아니라, '원칙'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확인하는 거라고 할까?

내 버스의 운전사는 바로 '나'임을 깨닫고, 그 버스를 어느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인지도 알았으나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바로 '연료'가 없으면  아무리 내가 운전을 하고, 목적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운전하는 버스의 연료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에너지버스 2는 바로 그 '연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늘 즐겁고 행복하게, 또 올바른 방향으로 내 버스를 운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운전사가 '나'라는 것에만 몰두해, '버스' 본연의 역할(?)인 '손님' 태우는 것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시비를 걸어오는 손님, 술에 취한 손님을 상대하느라 오늘 하루를 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노선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정해진 노선에 따라서 버스를 운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숙달된 운전솜씨로 그냥 무미건조하게 운전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때로는 버스에 '연료'가 떨어졌다는 것을 잊은채 달리다가 중대한 사고의 위험에 도달한 적은 없는가?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을 정작 '나'와는 관계없는, 내 '책임' 이 아닌 '불평불만'으로 치부해버리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 버스의 '연료'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내가 버스에 태울 손님들과 '방향'을 공유하고, 그 손님들을 나의 '돈벌이'가 아닌 진정 '사람'으로 존중하고,

비록 나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들마져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내가 오늘 하루도 잘 운전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내가 오늘 하루도 버스를 운전 할 수 있음을 '감사' 해 하며,

기왕에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거라면,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운전에 임하는 것

내 버스를  바로 이런 연료로 채운다면, 확실한 방향을 갖고, 내가 운전하는 내 버스는

그 어느 버스보다 더 가야할 길을 충실히 가는 버스가 되지 않을까?

 

나에게 '연료'의 힘과, '연료'에 대한 고민을 안겨다준 에너지버스에게 감사의 맘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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