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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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으로는 무슨 내용이 전개 될 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것은 오직 작은 아이일 뿐.

아마도 여늬 평범한 소설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그저 어림짐작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작가는 한 강, 남자이름 같다.

 

나의 이 모든 선입견은 모두 틀렸다.

생각만으로도 천진난만 할 것 같은 소년의 이야기는 온데간데 찾을 길 없다.

그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도무지 닿아오지 않을 그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폭력이 난무하고 상상할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 마치 길을 잃고 서 있는 것 처럼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이 죽어서 들어온다. 하나 둘도 아니고 무더기로.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1장 2장 읽어가면서도 왜 죽어야 하는지, 책을 읽으면서도 독자인 나는 왜 헤매어야 하는지 계속 어리둥절이었다.

이런 처참한 상황은 전쟁이나 대테러가 자행되었을 때나 생길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부상자도 실려오고 때로는 죽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런데 여기는 죽은 사람들의 천지다.

태극기로 몸을 감싸고 애국가도 부른다. 누구를 향해 어디를 보면서 이 사람들은 당하고 있던 것일까?

그리고 누가 무엇때문에 이들을 이 처참한 지경에 이르도록 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모든 것이 팩트, 사실이었다. 그것이 1980년에 일어났던 이해할 수도 없는 사건, 5 18 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실제로도 너무 늦게 알게 된 사건이다. 의아스러웠고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 나라에 태어나서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 그리도 미움 받을 짓이었던가 묻고 싶었다.

죽음을 당할만큼, 고문을 당하고 끌려 다닐만큼?

이런 일이 백주대낮에 몇 날 며칠동안이나 진행이 되었고 자행되었다는 그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작가 한강은 그  오월의 사건 속에서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찾아 헤매이던 소년을 본다.

자료를 뒤적이며 불면의 밤을 보냈고 그들이 하는 말을 담아내려고 그녀 스스로 총칼에 찔리는 악몽에도 시달렸다.

그들이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사라져 간 그 뒷모습을 쫓으며 대신 그 날을 재현해 내고 만다.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똑같은 질량으로 민주주의가 들끓고 있었는데

국민들이 바라고 원한 일을 왜 총칼로 짓누르는가. 국민은 국가 지배층, 권력들에 무조건 굴종하는

부속품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  이런 질문이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뒤늦은 분노와 늦게 알게 된 미안함으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말로만.  국민을 위하는 나라, 웃긴다.

이러니까 스스로 손을 들고 이 나라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이더라.

이제는 인구면에서 세계 최고령 국가로 이름을 올릴 날도 멀지 않았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줄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런데 그 남아있는 인구에서조차도 불평등과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떠나가고 있다.

텅 빈 국가를 예상해 본다. 기득권자들은 어떤 표정이 될까.

 

또 한 편으로, 광주에 밀고 들어왔던 군인들, 특별히 잔인했던 그들은 위에서 시켰다고 해서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대단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한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다 한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아무 죄책감이 없었다 했던 이야기가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건 왜 일까?

 

광주   5 18 은 마치, 자신이 낳아 기른  다 자란 자식을 부모가 때려서 죽여 버린 것 같은 도저히 납득 못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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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 어느 시골교사가 세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방법
황주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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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혁, 사회 변혁, 이런 과제들에 생각만 하고 있고 답이 진정 없는걸까?

대안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는지 방법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원하는 대중이 없다면?

변하기를 바라면서 그것을 원하는 대중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의 저자는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은 어떤지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을 짚어 본다. 학교는 곧 사회로 나아가는 기점인데 학력, 학벌이 권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티켓인 셈이다. 그 의미는 교육이  계급을 결정짓게 되는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되며 누구라도 차지하고 싶은 성공을 위해서 교육은 경쟁 구도로 갈 수 밖에 없다. 부모가 가진 부와 권력이 오롯이 자식에게로 세습되다시피 하는 현상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순서로 가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 것의 이유를 가장 우선적으로, 학교 다닐 적에 공부하지 않았던 탓으로 먼저 돌린다. 임금 구조가 잘못 되었고 전반적으로 오류가 있음을 생각해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고통 받기만 하는 대중들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질문하지도 않는다. 대중이 이러할 진대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 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나 잘못된 교육 정책을 고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런 잘못된 정책 하에서의 최대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큰 목소리로 용기 내어 저자는 말하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은 배워야 할, 그리고 알고 있어야 할 역사적인 순간들은 배제시키고 일제 강점기 하의 고난과 고통만 부각하는 교과서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배려나 존중을 마치 수험서를 참고해서 인성을 주입시키는 것과 같은 교육방법은 나중에 어떤 사회인으로 길러져서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될 지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바로 그 결과임을 말한다. 노동자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노동 조합을 끔찍히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게 만들었고 단체 행동은 엄연한 불법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가? 대단한 학교 교육이 가져온 성공적인 모습일 뿐이다.

 

나도 학교란 그런 곳인줄 알고 살았다. 지켜야 할 규칙들, 왜 지켜야 하는지 지키라고 하니까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따랐을 뿐이다. 그 많은 학생들도 모두 나 처럼 지시와 규율을 따라야 한다고 하니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따랐을 뿐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았던, 선량하다 못해 너무나 교육에 익숙했고 길들여진 생활을 했다. 그렇게 자라 온 사람들이 이 사회를 차지하고 있다. 남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것이 당연한 삶인 것 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사회를 통제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말 잘 듣는 양순한 시민 교육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경쟁에 내 몰린 아이들이 노예처럼 살기 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도 나도 대학을 향한다. 직장이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 곳 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고통받으며 노예의 삶이니 헬조선이니 하는 암울함을 느끼면서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저자는 묻고 있다.

 

 

:::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왜 대안없는 비판이냐고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먼저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이 고통은 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  내 고통의 뿌리에 닿지 못한 질문은 쉽게 방향을 잃어 버린다. 정확한 질문은 내 고통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게 질문이 정확하면 답은 이미 도처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대중이 질문하기 시작할 때 세상은 변할 것이다.   (48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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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책 - 위대한 독립 영웅 30인의 휴먼스토리
여시동 지음 / 서교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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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 같은, 역사적인 기록물과 육필 메모라든지, 후손들의 혹은 주변인들의 증언을 모으고 다듬어서 이루어진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들을 가능하면 많이 접하고 싶다. 학교에서 배워 온 역사라는 것은 지극히 한정적이고 시험에 필요한 만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고 싶은 내용들과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들을 새로 접하게 되는 것이나 뒤늦게 알게 되는 계기는 이런 책들을 통해서 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상해 임시정부는 김구와 몇몇 의사분들하고만 연결지어 알고 있어왔고  아주 유명하게 자주 나오던 분들의 이름만 알 수 있었을 뿐이지 이 책에서 언급되어 나오는 수 많은 다른 분들의 이름이 나는 낯설다.

 

상해 임시정부 아래에서 나라를 되찾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었고 항일 투쟁을 벌였던 일들은 마치 전해 내려오는 하나의 이야기인 것 처럼, 파란만장했던 시절의 그 사람들까지도 실존의 이미지는 어쩐지 크게 닿아오지 않게 한다. 남의 나라 땅에 서 있는 임정 기념관과 더불어 그들의 행로를 따라 둘러보면 아, 역사 속 그날에 그들이 있었고 이런 장한 활동을 해 냈었구나 하는 느낌이 그제서야 들게 된다. 타국에 서 있기에 더욱 그들의 고생을 아파하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임시정부가 있던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느낌일 것이다.

 

백범 김구와 이승만, 사람들에 의해서 여전히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고 그들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일제 하에서 나라를 찾으려던 그들의 목표만은 동일 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임정의 활동 덕분에 일본군의 격파와 요인들의 암살, 주요 시설 폭파 등과 같은 무장 투쟁 활동도 이루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광복 이라는 대업을 위해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업적을 알 수 있게 소개한 책들과 자료는 앞서서 몇 권을 읽었었다. 이 책은 그들의 활동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찾아 내고 성품이나 인간미를 알려 주려 한다는 점에서 여태까지 읽어오던 책들과는 차별성이 있다 하겠다. 그만큼 이전에는 읽어 보지 못한 부분이 새로이 많았다.

 

안중근 의사가 달변에 말이 빠르고 거칠었다는 면은 여태까지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그의 모습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었다. 중국에서 임정 요인들과 광복군을 물심 양면으로 도왔던 조지 쇼의 일대기와 가족사 같은 경우에는 우리 광복군에게 이런 이방인이 도움을 주었던가 비로소 알게 해 주었다.  광복군이 일제에 선전포고를 했던 그 이후의 대치 장면 이것은 미군 전략처와 합동 작전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이것 역시 미군의 힘을 빌려야 했었던가를 생각할 때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그들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랄까, 때로는 재미있기도 하고 때로는 이랬었나 하는 부분들을 알아가면서 더 많은 상황들을 새로 판단해 보는 계기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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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 - 그들과 함께 살아본 일 년
헬렌 러셀 지음, 백종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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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그 정의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바가 각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다, 하고 싶다, 의 문제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행복의 정의 또한, 소유와 바라는 바에 따라서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다 척도를 정하는 자세라면 행복의 모호함은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추상적인 행복감, 밑도 끝도 없는 진실인 행복을 놓고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한다면 덴마크를 꼽는다. 우선 덴마크는,행복하다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에 근거를 두고 안전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예측이 가능한 생활 이라는 개념으로 행복을 바라본다. 행복지수로써 본다면 10을 가장 행복한 상태라고 할 때 8,9 까지 도달한다는 대답이다. 이에 대해 우리의 행복지수는 어디쯤에 걸려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뜨고 지하철로 출 퇴근을 하며 커피에 의존해서 힘을 내고 야근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사와 많이 닮았다. 너무 피곤한 생활에 늘 지쳐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며 살아가는 생활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도 잠시 일 뿐, 손에서 일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며 혹시라도 잠시 쉬고 있게 되면 죄책감과 불안감도 느낀다. 대부분의 우리 직장인의 모습인 것 같다.

남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직장인이다 보니 항상 바쁘고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이 덴마크 레고사로 이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부부는 낯선 세상,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 덴마크로 이사한다.

 

 

이 책을 읽기 이전에 덴마크인이 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은 적이 있다. 덴마크의 사회 분위기, 경제, 교육, 각종 제도에 대해서 두루 살펴볼 기회를 가졌었다. 서로 믿고 사는 신뢰 사회, 세금은 많이 내지만 복지와 사회 보장 제도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 그 겉모습만으로도 이미 부러워할 만한 체제와 제도 때문에 당연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 책은 덴마크인 스스로가 자국을 바라 본 시선으로 서술한 것이었고 또 소개였던 것이니만큼 아무래도 장 단점의 구분선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좀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기술한 바 대로 덴마크에서의 살림살이라면 일상 속에서 닿아오고 느낄 수 있는 삶의 과정을 들여다 보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다른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 아래에 살고 있다 해도 부작용은 없을까, 단점으로 비칠 수 있는 그 무언가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무엇일까, 하는.

 

 

덴마크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기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자유와 평등, 이것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존재에 의미를 두고 남녀간에, 사람들간에,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은 자격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생활을 한다, 각 개인이 남의 눈치 보는 일 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생활을 한다, 라는 것은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불필요한, 강제적인 자신의 의지가 아닌 것에는 피하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였다. 이혼률이 높은 것이 그 결과다. 부부는 평등하고 만족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굳이 참으면서 서로 묶여있지 않는다. 양육, 교육도 국가가 지원해 주는 안정감, 홀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사회적으로도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자면 약간 문란하다 생각이 될 정도로.

동물 해부나 잔인한 모습에는 그다지 민감한 감각을 보이지 않으나 환경 보호 만큼은 철저한, 쓰레기 분리 수거 부분에서도 그랬다.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 방법 같은 저자의 사소한 경험마저도 독자로서는 간접 경험의 기회 인 양 읽기가 즐거웠다.

덴마크에서의 1년, 이들 부부는 드디어 빨강 머리의 사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외출하게 되며 둘째도 고려해 보는 행복감에 젖는다. 이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의 뜻을 느낄 수 있었다.

 

 

국가가 지켜주는 안정감의 크기가 어떤지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추상적으로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지켜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불확실성은 없는 사회란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도달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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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7년 2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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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이시여, 산 자와 죽은 자의 정신과 영혼까지도 협력하게 하시어 적의 세력을 꺾어 없애도록 해주시옵소서." (136쪽)

 

바다로 출전하는 장군이 되뇌이는 출전 제문의 한 구절이다. 그동안 왜적이 침입할 때를 대비해서 닦고 준비해 왔던 배와 수군들을 이끌고 나가며 장군은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염원한다. 이 때 심정이 얼마나 비장할 지, 첫 전투를 맞기 전이라 더욱 오락가락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 보게 한다. 전투를 앞두고 출전 제문을 읽으며 임금과 천지신명께 보고하고 힘을 얻으려는 제사를 지냈을 법 한데 여태까지는 이러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해 보지 못했었다. 역시 작가의 상상력의 넓이일까, 아니면 자료 수집 중에 알게 된 절차였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경상도 바다를 자력으로 지키지 못하고 전라 이순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원 균과 그의 부하들이 이순신 함대와 연합해서 전투를 벌일 때의 일에서도 이순신의 대처 능력이 배울 만 하다. 원균의 부하도 공로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미 전과를 올리려 하는 이순신의 부하들에게 화살을 쏘아 부상을 입혔던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녹도 만호 정운이 이 점을 따지려 들자 이순신은, 원균 편도, 그의 부하의 편도,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사태 해결의 중간 지점에 놓이게 되는 이 때에도, 연합 함대의 단점으로써만 받아 들일 뿐 그 누구의 역성도 들지 않았던 모습을 보인다.

 

 

천민이든 어떻든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고 그들의 재주를, 글을 읽을 수 있다든지, 배를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든지,를 알아내어 활용해 내는 이 모습 또한 지휘관으로서의 또 다른 능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뛰어난 부하들로 구성되기를 원할 것이고, 부하들은 능력있는 지휘관을 바랄 것인데 이순신의 부하 사랑과 돌보는 능력은, 부하들에게 없었던 능력이었다 할 지라도 밖으로 끌어내어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포구마다 생김새가 다른데 그 생김새에 따라서 작전을 짜고, 앞 뒤에 척후선을 두고 그 척후선의 보고에 따라 움직이는 이순신의 함대는 전투 중의 후방까지도 지키는 장졸을 두어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앞, 뒤, 옆을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지키며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에 빈 틈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첫 전투인 옥포해전 부터 연전 연승할 수 있는 기초가 탄탄한 모습과 적재적소에 부하를 기용하는 장군의 눈썰미와 판단이 소설 속 이었다 해도 곳곳에서 드러나도록 작가의 표현에 감탄이 왔다. 게다가 인품면에서도 사람을 대하는 사소한 행동거지와 마음씀까지도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일상적인 행동까지도 엿보이도록 서술하고 있어서 이순신 장군의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인간미까지 더해졌다.

 

 

이순신 장군이 지켜낸 바다와 조선 백성들은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맞았을지 아찔해질 정도이다. 그렇게 치열했고 장렬했던 전쟁을 치뤄냈던 것이었던만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뿐만 아니라 숱한 후문들, 소설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이어졌다. 여기에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작가가 있다. <천강에 비친 달>로 이 작가의 소설을 만났었고 역사 속에서 있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가가 탄생시킨 이순신 장군은 충청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아산에서 자라고 결혼했던 장군이라서 동료나 부하 장수들과 대화할 때 사투리로 표현하는 구절은 여태까지 보아오던 정석 그대로의 장군보다는 약간 다른 모습을 엿보는 기분도 들게 했다. 천편 일률적으로 모두 표준어를 구사하던 모습만 보아오다가 그 지역 방언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것 처럼 사투리 쓰는 이순신 장군과 휘하의 장수들의 모습은 좀 더 사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이었다고 할까?

 

 

 

<훗날 이순신의 일기는 사적인 감상과 고백을 넘어서는 진중 상황 보고서이자 장수로서 전투를 준비하고 치르는 진술서가 되었다. 이순신과 그의 부하들을 변호하는 유일한 글로 남았다.> 104쪽

 

난중일기의 해석, 문장에 따라 순서가 바뀌고 해석이 달라지는 것으로 암호형 글 이라는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소설 속 작가의 상상력을 구현한 것일까, 살짝 생각을 여러 각도로 해 보게 했다. 그 자신의 진술서를 미리 작성해 갔던 일지, 변호의 글이라는 것도 전쟁이 끝나기 일보직전에 일어났던 그의 죽음과도 더욱 연결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로써 그의 일기에 대한 개인적인 발견으로 새로운 시선, 놀람과 감탄이 다시금 우러난다.

 

직급, 계급, 천민 상관없이 상가에 조문하러 가던 이순신. 가진 것 없이 사는 떠돌이 어부들일지라도 모여서 정착하게 도와 주고 양식을 챙기는 모습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들을 지켜 내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이순신의 작은 행위조차도 거룩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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