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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 - 어느 시골교사가 세상에 물음을 제기하는 방법
황주환 지음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교육 개혁, 사회 변혁, 이런 과제들에 생각만 하고 있고 답이 진정 없는걸까?
대안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는지 방법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원하는 대중이 없다면?
변하기를 바라면서 그것을 원하는 대중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왜 학교는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가>의 저자는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은 어떤지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을 짚어 본다. 학교는 곧 사회로 나아가는 기점인데 학력, 학벌이 권력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티켓인 셈이다. 그 의미는 교육이 계급을 결정짓게 되는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되며 누구라도 차지하고 싶은 성공을 위해서 교육은 경쟁 구도로 갈 수 밖에 없다. 부모가 가진 부와 권력이 오롯이 자식에게로 세습되다시피 하는 현상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순서로 가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 것의 이유를 가장 우선적으로, 학교 다닐 적에 공부하지 않았던 탓으로 먼저 돌린다. 임금 구조가 잘못 되었고 전반적으로 오류가 있음을 생각해 보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고통 받기만 하는 대중들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질문하지도 않는다. 대중이 이러할 진대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 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나 잘못된 교육 정책을 고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런 잘못된 정책 하에서의 최대 수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큰 목소리로 용기 내어 저자는 말하고 있다.
교육 과정에서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은 배워야 할, 그리고 알고 있어야 할 역사적인 순간들은 배제시키고 일제 강점기 하의 고난과 고통만 부각하는 교과서나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배려나 존중을 마치 수험서를 참고해서 인성을 주입시키는 것과 같은 교육방법은 나중에 어떤 사회인으로 길러져서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 될 지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바로 그 결과임을 말한다. 노동자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노동 조합을 끔찍히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게 만들었고 단체 행동은 엄연한 불법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가? 대단한 학교 교육이 가져온 성공적인 모습일 뿐이다.
나도 학교란 그런 곳인줄 알고 살았다. 지켜야 할 규칙들, 왜 지켜야 하는지 지키라고 하니까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따랐을 뿐이다. 그 많은 학생들도 모두 나 처럼 지시와 규율을 따라야 한다고 하니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따랐을 뿐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았던, 선량하다 못해 너무나 교육에 익숙했고 길들여진 생활을 했다. 그렇게 자라 온 사람들이 이 사회를 차지하고 있다. 남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것이 당연한 삶인 것 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사회를 통제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말 잘 듣는 양순한 시민 교육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경쟁에 내 몰린 아이들이 노예처럼 살기 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너도 나도 대학을 향한다. 직장이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 곳 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고통받으며 노예의 삶이니 헬조선이니 하는 암울함을 느끼면서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저자는 묻고 있다.
:::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왜 대안없는 비판이냐고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먼저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이 고통은 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 내 고통의 뿌리에 닿지 못한 질문은 쉽게 방향을 잃어 버린다. 정확한 질문은 내 고통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나온다. 그렇게 질문이 정확하면 답은 이미 도처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대중이 질문하기 시작할 때 세상은 변할 것이다. (48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