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상처받는 나를 위한 심리학 - 마음속 상처를 자신감과 행복으로 바꾸는 20가지 방법
커커 지음, 채경훈 옮김 / 예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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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왠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약하고, 그래서 받게 되는 상처도 적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무의식적이다 생각하려 하기도 하지만 감추거나 생각하고 있지 않으려 하거나 다른 곳에로 관심을 돌리면서 아닌 듯, 없는 듯 그렇게 버텨내며 살아 온 것 같다. 살아가면서 내 잘못이든 주변의 잘못이든 받아 들게 된 상처를 끌어안고, 그것이 문득문득 솟아 올라 또 다시 상처를 낸다. 가라앉아 있으면서 언제 또 떠 올라올 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우리의 행복해야 할 삶에 방해물로 남게 된다.

 

불안감, 공포, 두려움 등으로 드러나는 상처와 막무가내로 함께 하는 것을 피하지 않는 방법으로써 해결하게 하는 책, 상처의 존재감을 알게 하고 그 정체를 이해하게 하는 책이다.  살아오면서 받아 온 상처의 정체를 파헤쳐 보게 하는 것 만으로도 고개 끄덕이게 하며 이해하는 쪽으로 몰입하게 한다. 원인을 알게 하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가 솔루션을 생각해 보게 한다. 상처에 침몰하지 않으려 애쓰는 순간 우리는 방어 기제를 발동하는 것이다. 아닐 거야, 아니야, 부정하는 방법, 왜곡하고 칸을 질러 막아 버리고, 피하고 억누르고 참는다. 숨겨서 합리화 하고 저것은 신포도일거야 단정해 버린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해 버리고 나를 다른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이런 방법들이 일시적으로 스스로를 상처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알게 한다.

 

가장 좋은 방어 기제로 유머와 자조를 둔다. 삶이 힘들고 일상 속에서 찡그릴 일이 난무할 때 웃어 버릴 수 있는 그 자세까지 가능한 그 날이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마음 속으로 자주 바래왔던 일이기도 하다. 욱하는 상황에서도 바로 내 뱉는 분노가 아니라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는 성숙함도 생겨나길 바란다.

 

한참 전쟁 중에 적군에게 내민 빵 한 덩어리를 무심코 받아들던 상대편 병사, 차마 포로로 잡아갈 수 없게 한 상황이 되게 한 것도 무의식적으로 생겨나게 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심리적으로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기본적인 해설과 실례가 무척 닿아왔던 유익함까지,  좋았다.

 

 

 

 

" 나는 당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야."

남을 의식하지 말고 오로지 <나의 삶>에 집중하세요.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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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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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옛날 우리식대로의 이야기라면 이어도라는 섬에 있었다던 여인국 같은 것도 생각이 났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듣는 사람들의 자유이지만 남자 없는 여인들의 세상은 어떻게 꾸려갈까, 그럼에도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니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있다.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 이 소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어떤 헤프닝이 벌어질까의 궁금함이 생기기 보다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까 하는 점이 앞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가 급증하고 혼자서도 잘 살아가면서 혼밥이니 혼술이니, 1인용 가전 제품의 범람이나 간단 조리 식품등이 혼자서도 잘해요, 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의 3-4 인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그 자녀들이 구성해 온 핵가족 조차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런만큼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지도 못했던 현상들은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점과 연관지어 이 프랑스 소설이 보여주는 현상, 남자 없이도 살아가는 여자들만의 집은 어떤 변화의 실마리를 보여줄까, 혹시라도 앞으로 다가오게 될 지도 모르는 현상은 아닐까 지레 짐작해 보며 읽었다.

 

책 내용은 책읽기를 한다는 느낌보다 드라마를 보는 듯 하게 꾸며져 있다. 대화체로 빠르게 진행되는 구조가 이런 생각을 하도록 부추긴다.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75세의 전직 발레리나가 이 집의 주인이고 그녀의 집에 세들어 사는 4명의 여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여자들의 나이와 살아온 배경은 각각 다르지만 남자에 대한 생각과 사랑을 찾는 것, 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한 생각은 공공연히 서로가 말하고 있지 않아도 비슷한 면을 보인다. 세입자 여자 중 카를라가 인도 여행길에 오르면서 비게 된 방에 줄리엣이 들어오게 되고 원래 살고 있던 여자들, 로잘리, 시몬, 주세피나는 새로 들어온 줄리엣에게 집 안에는 어떤 남성, 수컷의 출입을 금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배관공, 전기공, 배달부 조차도 금남의 집이라니, 줄리엣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늙은 여왕은 아직도 스폿라이트 아래에서 박수 갈채를 받아오던  예전의 영광 속에서 그녀를 스쳐갔던 옛 남자들을 추억하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제는 남자를 쓸모없는 부분으로 치부하며 산다. 여왕이야 한때 영광의 순간을 살았었지만 지금 한참 젊은 줄리엣을 비롯해서 그녀들에게, 남자에게 의존하지도 못하게 하는 그런 삶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녀들끼리만의 생활, 서로서로 위안하고 다독여 가며 언제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남자들을 찾지 않을만큼 호되게 배신 당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한 때 여왕의 규칙에 맞춰 살아갈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결국에는 마음 속에서 다른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으로, 남자없이 살아가는 여인들에게 한 마디 던지는 남자가 있었다. 자신이 선택했던 여자와 함께 살아가며 자신에게 예!, 라고 대답해 준 여인의 곁에서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역시 진정한 삶의 평가는 인생의 과정과 마무리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그녀들의 심중에 이입을 시켜 보았지만 남자없이 살아가는 삶이라 해서 크게 잘못된 것도, 나쁠 것은 없겠지만 인생을 걸어가는 그 과정과 끝맺음의 순간을 위해서는 미리 계획을 세워 두든지 치밀하게 준비를 해 둬야 막다른 길에서 좌절하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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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미술관 - 그리고 받아들이는 힘에 관하여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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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때가 있다.

우울하기 그지 없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느낌으로 삶의 한 순간을 버텨 나가고 있는 것 같은 때가.

외부에서 보아주는 눈으로는 부족한 것 없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더라도 내부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삶.

장밋빛 하늘이어야 마땅한 시간이 전혀 그렇지 못한 그런 때가.

 

작가도 한 때 어두운 터널을 건너는 듯한 시간을 가졌었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제 자리에 서 있지 못한, 허공을 떠 도는 것 같은 삶을 독일 유학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라고 묻는 듯한 눈동자를 보면서 퍼뜩 정신이 들던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앞에 놓여있는 시간도, 나아가야 할 시간도 흐릿하던 그 때에 단호하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내던 그 그림들에게서 작가는 구원 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구원, 삶에 있어서 구원은 어떤 의미가 될 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디에서든, 무엇에서든 찾아 헤메는 시간 만큼, 갈구하는 양 만큼 구원은 다가 오는가?

 

그림에서 찾아 낸 그 구원, 작가가 말하는 우리의 현 시점, 두 다리로 우뚝 서 있는 바로 이곳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마치 여행같다. 발로 달리는 여행이 아니라 눈으로 돌아 다니는 여행.  나를 찾아서 헤매이던 눈이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나를 발견하게끔 인도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저자의 마음 속에 떠 오른 죽음의 참상과 불안은 그것 자체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고 희망을 찾고 결국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목적이 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출발 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추상화도 등장하고, 난해한 그림을 보면서 자아가 녹아 내리는 느낌도 가졌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화가들과 그림은 나로서는 평소에 그다지 접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작품들이다. 암울하고 어두운 장면들로 이루어져 산뜻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림들의 감상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특정 그림과 인간의 마음을 연결지어 그 속에서 구원을 얻어내는 역할을 하기 바라는 것 같다. 길고 긴 죽음의 행렬 속에서 이지만 스스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하며 결국에는 받아 들이는 힘을 갈구하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일까, 마지막 장, 받아 들이는 힘 에서는 유대인의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두 작가와 임진왜란 때에 끌려 간 한 일가의 도예 작품을 소개하면서, 불운했고 가혹했던 운명을 도예 작품으로 승화시킨 세 사람의 공통점을 살펴가며 서서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그 힘이 무엇인지도 찾아간다.

 

망각이든, 자연으로의 회귀이든, 그 무엇이든, 작품을 통해서 스스로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되짚어 생각하고 또 힘든 시련이지만 견뎌내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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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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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한 느낌이 날 지도 모르겠다.

백 세 시대에 백 년을 살아오면서 겪고 경험했던 그 만큼을

살아갈 날이 많은 후세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이 오죽 많을까마는,

조금이라도 나이든 사람들을 "아재"라 일컬으며 "아재 스타일" 이라고

선을 긋는 세대들에게 아무려면 신선한 느낌은 주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 성공,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정답이 있을 순 없지 않는가?

각자의 길이 다르듯 생각도 다른 사람들일지라도 성공과 행복을 향해

달려가기는 매 한가지이다.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있는 것이고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철학적인 사고도 필요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나도 느끼는 바이다.

20대 초반 한참 팔팔하게 왕성하던 그 시절에 읽었던 안병욱의 철학에세이가

그 때에는 가슴 가득히 닿아 왔을 리가 만무하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내 친구 안 병욱" 과 더불어 그들이 내게

무엇을 주었던가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기초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그런 문제들을 알게 모르게 제시해 주었던 것 같다.

젊었지만 황금과 같은 시간이었음을 느끼지 못하고 암울해 하기만 했었던

그 시절에 우연히 읽었던 그 책들이 나도 모르게 나의 어딘가로 흠수되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자세와 매사 생각해 보게 하는 태도는

인생을 진지하게 마주 보도록 했던 것 같다.

 

나이 들어 다시, <백 년을 살아보니> 책을 들고서 이제는 인생을 좀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인가, 감히 오만스러워 지려 하다가도 여전히

저자의 글 속에서 진지해 질 수 밖에 없다.

우정과 종교, 돈, 성공, 명예 그리고 노년의 삶이 가지런히 다가오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맞물린다.

 

정답이 없기에 돌아 돌아서 가는 것 아닐까도 싶지만 종착역은 동일하다.

세상이 변했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지만 인간의 삶이란 범위 내,

규칙 내에서, 그 네모난 틀 안에서 진행 되어 가는 것이기에

오늘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여전히 유익하게 다가온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교정하게 해 주고 나이 들어서까지도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를, 또 부단히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듬뿍 담겨있다.

 

마지막 영면에 들기 전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할 지,

독자가 젊었든, 나이 들었든 살아가는 태도에는 구분이 없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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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일본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강태웅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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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게 다가오는 나라다. 좋은 내용이 앞서 다가오기 보다는 항상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불쑥불쑥 고개 들이밀어 불쾌하게 하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애증할 수 밖에 없는 나라인 까닭이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의 희생과 투쟁 때문에 감정이 맺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처럼 이웃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외면할 수 만도 없다. 이렇기에 이들의 특성과 속내를 읽어 보자는 자세는 세계 속에서 우리를 더 잘 알아내기 위해서, 우리 것을 더 잘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일본을 지칭하는 단어는 몇 가지나 될 만큼 유별난 특색이 있긴 하다만 이 점에 대해서 얼마만큼 깊이, 넓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눈에 보이던 만큼만 그러려니,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을 뿐 어떤 특색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본에 애니메이션이 번창하고 그 관련 산업도 활발한 것 정도는 알면서도 해 마다 열려왔던 코스프레에 대해선 연관짓지 못했던 무관심 같은 것이라든지,  얼마 전 "능력자" 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 "덕후" 라는 단어도 오타쿠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제 2차 대전에서 누가, 어떻게 전쟁을 일으켰는지는 돌아보고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데에 정말 의아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전쟁의 막바지에 도쿄가 공습을 받았고, 도시가 파괴되고 많이 죽었다는 결과 하나만을 놓고서 가해자가 피해자로 변환되는 사고를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갈 수 있는가, 의아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 피해자 의식이 남의 나라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돌려 받아야 한다는 사고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쿠릴 열도, 사할린 섬을 놓고 러시아와의 분쟁, 댜오위다오 섬은 몇 년전에 뉴스에서도 시끄러웠다. 우리의 독도도 왜 자꾸 거론하는지 이제야 그 꼬투리를 삼은 배경을 알게 되었다. 자기네들이 빼앗아 가졌던 영토를 지금까지도 자기네 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파렴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 광개토대왕도 정복했던 땅에 대한 소유권에 의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이론 아닌가. 세계 각 나라마다 영토의 경계선이 자주 바뀌었던 시대가 있었건만 이런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잘못 된 주장을 거침없이 해 대는 뻔뻔함은 민족성인가?   예전부터 교류를 터 오던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고 방식이 이토록 차이가 심하다는 느낌은 같은 아시아 지역에 살지만 참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간다.  늘상 잘 알고 있다는 기분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런 차이는 그들만의 문화적 차이로 이어지고 우리가 제대로, 올바르게 바라보며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아시아 민족이 단결해서 서양에 대항한다는 의미로써 대동아 전쟁이라는 단어도 틀린 말임을 알았다. 동남 아시아까지 점령해가는 일본의 기세는 다시 봐도 대단하리만치 컸다. 어느 나라와 단결해서 서양을 무찌른다는 것인가?  그만큼 자국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상황이었으면서도 " 옥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행위" 라고 집단 자살을 미화하기까지 한 것을 보면 국가 전체가 최면술에 걸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또한 전쟁 이후에 연합군 총 사령부가 우리나라에서도 뒷처리가 미숙하여 친일파 청산도 못하고 기를 살려 주는 꼴이었더니 일본에서도 개혁이랍시고 전쟁 책임 의식을 갖지 않는 국민들을 양산해 냈던 것이다. 시대적으로도 일처리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일본하면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재해 이다.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재해 앞에서 일본인은 재해를 복구의 의미보다는 적극적으로 대하며 경기 부양과 같은데에 무게를 두는 전통성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땅 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판이 여러 개 겹쳐서 이룬 곳에 떠 있는 일본으로서는 재해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재난 부흥" 이라는 말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라니 참 의연하다 해야 할까.  이외에도 사소하면서도 작은 부분이지만 음식과 역사 부분까지도 독자들에게 일본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그야말로 일본이 가까워지도록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도 일본 이라는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면서 생겨날 수 있는 이로움을 두고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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