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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미술관 - 그리고 받아들이는 힘에 관하여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그런 때가 있다.
우울하기 그지 없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느낌으로 삶의 한 순간을 버텨 나가고 있는 것 같은 때가.
외부에서 보아주는 눈으로는 부족한 것 없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더라도 내부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삶.
장밋빛 하늘이어야 마땅한 시간이 전혀 그렇지 못한 그런 때가.
작가도 한 때 어두운 터널을 건너는 듯한 시간을 가졌었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제 자리에 서 있지 못한, 허공을 떠 도는 것 같은 삶을 독일 유학으로 피신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디 있나요?", 라고 묻는 듯한 눈동자를 보면서 퍼뜩 정신이 들던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앞에 놓여있는 시간도, 나아가야 할 시간도 흐릿하던 그 때에 단호하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강렬한 눈빛을 쏘아 보내던 그 그림들에게서 작가는 구원 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구원, 삶에 있어서 구원은 어떤 의미가 될 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디에서든, 무엇에서든 찾아 헤메는 시간 만큼, 갈구하는 양 만큼 구원은 다가 오는가?
그림에서 찾아 낸 그 구원, 작가가 말하는 우리의 현 시점, 두 다리로 우뚝 서 있는 바로 이곳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마치 여행같다. 발로 달리는 여행이 아니라 눈으로 돌아 다니는 여행. 나를 찾아서 헤매이던 눈이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나를 발견하게끔 인도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저자의 마음 속에 떠 오른 죽음의 참상과 불안은 그것 자체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고 희망을 찾고 결국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목적이 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출발 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추상화도 등장하고, 난해한 그림을 보면서 자아가 녹아 내리는 느낌도 가졌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화가들과 그림은 나로서는 평소에 그다지 접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작품들이다. 암울하고 어두운 장면들로 이루어져 산뜻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림들의 감상에 역점을 두기 보다는 특정 그림과 인간의 마음을 연결지어 그 속에서 구원을 얻어내는 역할을 하기 바라는 것 같다. 길고 긴 죽음의 행렬 속에서 이지만 스스로가 어디에 있는지를 질문하며 결국에는 받아 들이는 힘을 갈구하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일까, 마지막 장, 받아 들이는 힘 에서는 유대인의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두 작가와 임진왜란 때에 끌려 간 한 일가의 도예 작품을 소개하면서, 불운했고 가혹했던 운명을 도예 작품으로 승화시킨 세 사람의 공통점을 살펴가며 서서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그 힘이 무엇인지도 찾아간다.
망각이든, 자연으로의 회귀이든, 그 무엇이든, 작품을 통해서 스스로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되짚어 생각하고 또 힘든 시련이지만 견뎌내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