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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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눈물없이 읽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앞서 읽은 독자들의 극찬을 받았다는 Me before you 는 그 껍질만으로는 도저히

그 감동의 깊이를 표현해 낼 길이 없는, 다른 독자들의 평가가 진실로 옳았음을 깨닫게 해

주는, 사람살이 속의 한 단면을 재치있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던 수작 중 수작이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여자 주인공 루이자의 가정 속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 까지도 마치

눈 앞에서 생생하게 보여 주듯이 실감이 넘치는 문장의 집합이었다.

영국의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기분이랄까.

그 속에 녹아 난 그들의 행동과 말투, 표현, 느낌이 인간적이고도 너무나 인간적 이어서

저절로 웃음 터지게 했었다가 감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족하리만치 커다란 파도처럼

덮쳐 오고 휘감아 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의 쓰나미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끝장나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삶 자체는 도대체 어디서 부터

어떻게 다루어 나가야 하는지, 그 어이없는 중간 지점에서 윌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을

마감하려다가 주변 가족들이 만류하고 막아섬 으로 해서 어쩔 수 없이 생을 연장하고

있던 터였다. 루이자, 26살의 젊은 여성은 변화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 관광지역인

고향 마을에서 절대 멀리 나가 본 경험도 없이 새로운 시도나 변화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의도도 한 번 없이 그럭저럭 살아오고 있다가 갑작스레 실직을 하게 되고, 한 가정의

생활비를 떠 맡고 있는 책임감 때문에 혹은 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응원 때문에 윌의

간병인으로 일을 시작한다.

스포츠, 여행을 사랑하고 일에서도 성공을 거둔 젊은 경영인, 윌은 어느 날 바이크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고 사지마비 환자가 되었다. 활동적인 삶 속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린 세상, 차라리 루이자처럼 비활동적인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삶을 받아

들이는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윌 스스로가 결정한 죽음을 실행하기 전 암묵적으로 유예한 6개월 동안 루이자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 죽으려는데서 마음을 바꿔 보려고 외부 활동을 함께 하고 계획을

짜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이 와중에 윌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녀를 세상 밖으로 보내려고 애쓰던 윌.  그 둘의 애정이 무뚝뚝하던 대화에서

감칠 맛이 있었고, 각자 따로 보아오던 생활에서 보다는 둘이 함께 서로의 삶을 변화시켜

주려 할 때의 노력이 빛나 보였던 만큼 윌이 떠나던 모습과 에필로그에서의 편지는

폭풍 눈물을 몰고 왔었다.

단순히 남과 여의 러스 스토리 였다면 이렇듯 감동이 밀쳐 나왔을까?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던 윌의 결정, 루이자를 위해 해 준 그의

선물, 모두 획기적인 생각거리 였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타당할 수

있는지 아니면 하지 않다 할 수 있을지 이 점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한 젊은 여성의 삶을 변화 시키기 위한 선물, 너무나 감동적이기 까지 했었고

자칫 최루성 멜로 스토리로 남을 뻔 하지 않았을까 했던 것을 소설의 마무리로써

참 좋은 선택의 아이디어 였다 생각한다.

 

멋지고도 감동적으로 여운이 남아있는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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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다케모도 고노스케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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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고 배겨 낼 수 있는가 를 시험 해 보라> 라고 일본 경제 신문이 추천한대로 난, 큰 감동의 맛을 보고야 말았다.

요즘 함께 읽고 있는 Me before you 에서는 크게 팡 터지며 웃었다가 또 울었다가 콧물 눈물 뒤범벅이 되었던 순간을

맞았었는데, 우동 한 그릇, 얇은 책 한 권을 너무 얕보았던 걸까?

글썽글썽한 눈물이 이 건조한 겨울 날씨 속에서 안구 건조를 다소나마 완화시켜 주도록 했던 효과까지 맛보았다.

 

우동 한 그릇 책 속에서는 인간의 마음, 따뜻한 배려가 어떤 사회적 영향으로 나타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바쁘고 삭막하기 그지 없는 이 현대의 인간 삶 속에서 또렷하게 비추이는 한 자락의 빛 같은 감동을 전해 주고 있는

이야기 두 편이 실려 있다. 우동 한 그릇과 마지막 손님이 바로 그것들 이다.

 

우동 한 그릇에는 말 그대로 보여 주듯이 북해정 이라는 우동 가게에 그 해 마지막 날 우동을 사 먹으러 오는

손님 세 명에 관한 이야기 이다. 어린 아들 둘의 손을 붙잡고 가게에 들어온 엄마는 사람 숫자로 보면 부족한,

우동 한 그릇만 주문 해도 될까요 로 시작하는데, 북해정의 주인 부부는 우동 일인분 이라며 주문을 넣고는 말도 없이

1.5 인분의 우동을 내어 놓는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마지막 손님으로, 또 그 다음 해에도...

어느 새 예약석 이라고 푯말을 놓은 좌석 배치까지 해 두기에 이르르지만 그 3명의 손님은 여러 해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훌륭하게 성장한 두 아들과 늙은 엄마가 함께 이 가게에 들른다. 

어려웠던 그 시절에 우동 한 그릇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배려 덕분에 훌륭하게 살아 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 였는데

전형적인 일본 식당의 지나치리만큼의 친절이 눈으로 보이듯이 달겨드는 느낌이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친절 외에도

우동 일인 분 속에 반 덩이의 우동을 더 삶아 내어 놓는 그 배려의 행동에서 소리 없는 감동이 스며 나온다.

 

두 번 째 이야기에서도 춘추암 이라는 과자점에서의 점원과 손님에 대한 정성어린 배려, 인간적인 행동에 관해

아름답게 전달해 준다. 가게를 열어 놓는다는 것은 손님들을 불러 들인다는 뜻이고 어쨌거나 들러주는 손님들을

정성을 다해 맞이하는 것이 도리이다 라는 자세는, 상인이라면 마음속에 지니고 있으면 일에서 생기는 온갖 힘든

일 보다는 손님을 좀 더 배려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이론대로라면 그렇게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일이 되겠지만 자로 잰 듯이 일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상대방을 위하는 배려가 인간이기에 생겨나는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p58

그 마음을 잃으면 생각과 행동이 이상해져 가게가 단순히 돈과 물건의 교환소가 되어 버리죠. 그럼 자동 판매기로도

충분하지 사람은 필요 없어지지 않겠어요? 훌륭한 많은 분들과 만나고 그분들과 마음이 통하니 우리 일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을 이익과 손해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서로 즐거워지는 일의 멋을 포기하는 거예요.

 

그렇다.

인간이기에 이해가 가능하고 배려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우동 가게와 과자점 처럼 이런 마음 자세로 꾸준하게 성실히 꾸려 왔기에 대를 잇고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오고 있는 것 아니던가 생각해 보게 했다.

사소하다, 하찮다 라고 생각이 되는 가게조차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 부터 아들로 손자로

전해져 내려오며 손맛을 이어가던 크지 않은 가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손님들의 입맛을 배려하며 새벽이고 밤이고 시간을 가리지 않고 손님을 위한 국물을 우려내며

해장국만 고집하던, 간판이라고는 오로지 '해장국' 일 뿐이었던 작고 허름한 가게, 꼭 손으로 공기 방울 넣고 온도를

일일이 맞춰서 빵을 밀어내던, 힘들어도 손으로만 제작하던 가게, 물론 자신들만의 품질을 고집하던 자세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결국은 자기네 가게를 찾아 주는 손님을 배려하는 데서 나오는 고결한 정신이 바로 그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이런 종류의 가게들은 정말 지켜 보는 것 만으로도, 그 자리에 오래 도록 지키고 있다는, 존재 하나 만으로도

감동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다운 행동과 배려도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울컥 하는 감동을 맛 보고 싶은 분 들, 가슴 속에 돌멩이 하나 던져 넣듯 동그라미 파문 하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 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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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29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에 책장에 있던 우동 한그릇을 꺼내 들고는 쭈그리고 앉아..콧물이 훌쩍..눈물이 덜컹거리도록..마음이 들썩거리는..시간..
아..린제이 님..고마워요.
가끔씩 책장의 먼지를 털어내며 지나 갈뿐
너무 오래 이 감동을 잊었어요.
우리는 지금 피케티와 유수의 경제 자본론도
좋지만...위정자들에게 권해야 할 책으로..
바로 이 책을 ...권해요.
안철수 씨는 이걸 박대통령께 선물하는것이 좋았을 텐데..하는 마음이..
안타까움과 함께 들고..그도 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모두 너무 순수의 시대를
잊는것은 아닌지...아팠어요.
궁극은 결국 사람의 마음임에도..
어려운 철학도 ..인문학도 이윽고 닿고자 하는것은 사람의 마음..아니었나요...그 생각을 담은...그릇..마음..
사람들 속에...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 한
그릇.. 놓아주고픈 밤입니다.
깊은 감사를 전하며..

린제이 2015-02-01 21: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토록 큰 감동을 표현해 주시며 댓글 남겨주신 것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감동을 느낍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해주고
있는 바 처럼 요즘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정서가 바로 이런 것 아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

[그장소] 2015-02-0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리에서 유래되었다는 기사를 같이 첨부한 페북이웃의 한 스토리..는 저를 펑펑 울게 했어요.
기사 제목은 ˝세 잔 마시고 일곱 잔 값 치르는 사연...˝이었는데..추운 날 노인한 분이 들어와 커피 세 잔을 시키곤 일행과 함께 마시다 가며 일곱잔 값을 치르더랍니다.카페의 카운터역시 두 말없이 그냥 챙길뿐이었고요.날이 어두워지자..한 허름하고 낡은옷의 노숙인이 들어와 ..혹시 누가 맡겨놓은 커피가 있지않냐..하니..카운터에서 기다렸다는듯..
얼른 커피를 준비해줍니다...사연은..노인들이 나가며 낸 일곱잔의 커피값 중 세 잔을 제외하고..나머지..잔은 바로..이런 분들을 위한 한잔 나누기..위해.맡겨놓는 커피값!
이었던 셈...서로들 신뢰가 있지않으면 어쩐지 쉽게 행동으로 하지못할것같은..미담.
너무..예쁘고..따듯해서..눈물이..뚝뚝 떨어졌어요.
이웃의 펫북엔...그 기사를 보고..서로..좋은 아이디어..라고..동참하겠다..부터..같이하자는 내용까지..보일러 놓은 방처럼..훈훈했어요.
저도..거기서 우동 한 그릇..을 읽은 듯..위로 받았죠..
아..언제든 나도 카페에 가면.무조건..맡겨놓는 커피.해야지...하고.
카페자체가..나서는것도 의미있겠지만..사람 한 명 한명이..해야 의미를 띠게될..이..맡겨놓는 커피˝
그랬다는..겁니다.
누구든...온기를 나눔에는 따질 게 없으니까..
 
똑똑한 여자는 가슴뛰는 삶을 포기 하지 않는다
정현혜 지음 / 다담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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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의 가지 않은 길을 통해서 생각해 본다 치면,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고, 한 곳을 선택하면

다른 한 길은  가 보지 못한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아내, 며느리, 아이들의 엄마 역할의 여성이 선택한 길은 다른 한 길, 여자로서의 본인 스스로의 길을

포기하는 길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책을 펴니 첫 머리에, 멋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라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보인다.

힘과 기운이 솟아나도록 향기로운 문장이 시작됨을 알리는 그 서막 이었다.

 

저자는 부드럽고 일상적인 문체로 서술해 나간다. 결혼 생활, 남편과 아이, 시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최선을 다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수퍼 우먼 증후군이, 직장과 가정을 양립해 가고 둘 다 잘 이끌어

가려는 최대의 노력에서 빚어지는 무거운 부담감 을 표현해 보인다.

 

1장, 2장 에서는 이렇게, 선택한  한 가지에 대해서 얼마나 잘 다루어 나가고 타협해 나갈 수 있는가에 따라

여성 본연의 위치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를, 소소한 일상이지만 다루는 방법과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큰 언니 같은 마음으로 다독여 주고 있다.

 

아직 나 만의 가정을 꾸리지 못해서 그들의 생활을 확실히 겪어 보진 않았지만, 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어린 아이들을 양육하며 집에서 보내는 여성들, 전업 주부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 쉬고 싶을 때 집에서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해 보지 않은 채, 그들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내부 사정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겉보기 만으로 그들의 삶을 마냥 부러워 하며

참 좋겠다 집에서 쉬고 싶을 때에 푹 쉴 수 있고.. 하면서도, 그러면서 생겨나는 생각이,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그것도 가족들이, 남편이 모두 다 책임 져 주고 확신시켜 주는 건가 라는 의문도 한 켠에

있곤 했었다. 나의 우려나 의문 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가족 울타리 속에서 전업 주부로써의 역할을 다 할 때에는

자신만의 시간이 그리 많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과 혹시라도 이혼 이라는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서는 꼼짝없이

자신의 진로가 바뀌게 되는 급 변화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인 압박감, 외부적으로는 경제적인 곤란이

눈 앞에 닥치게 된다는 위험을 안고 산다는 점이 있었다.

개개인 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제대로 역할을 다 하며 자신들의 장점을 잘 활용하고 시기적절하게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남자든 여자든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 인 것 아닌가?

소위, 아줌마 라는 이도 저도 아닌 삶, 가족들에 둘러 싸여 자신은 희미해져 버리고 존재감도 없어져 버리는

삶을 기대하지도, 유지하지도 말며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나 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고 앞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줄 때 비로소 가족들, 주변 사람들도 함께 웃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본인을 위한 삶이 곧 남편과 아이들, 주변 사람들도 모두 위하는 일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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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로 가는 길 - 이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영적 가르침
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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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 성전.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 테러 사건 뉴스를 접하면, 신의 이름아래 벌이는 폭탄 테러 사건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어떤 종교이기에, 무슨 권력과 힘이 그리도 세어서,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리는 차 앞에

우뚝 설 수 있듯이, 몸에 폭탄을 두르고서 자신의 신과 이념을 위해서 영혼없는 로보트(Robot)들 처럼 사건, 사고들을

그렇게 쉽사리 자행하며, 세상을 경악하게 할 수 있을까,  무서웠다.

뇌가 없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슨 힘이 그들을 그토록 목숨까지 내 버릴 정도로 크고 셀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지배적 이었다.

 

이슬람은 이렇게 오해와 무지로 인해,  잘 알지 못하는 종교앞에서 무조건적으로, 발생된 사건의 결과물만으로써 판단되어지는,

무지막지한, 인간답지 못한 종교로써, 최소한 무서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는 오해와 의문으로 장막을 둘러치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만은,  그랬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구의 끊이지 않는 영토 분쟁을 일으킬 때에도 도대체 저기에는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

-했었다. 그들 만의 뿌리 깊이 박혀있는 원한의 가시가 대체 무엇인지를.

 

p114

어떻게 유대 민족처럼 창의적이고 지적인 민족이 시온주의와 아랍의 갈등을 그토록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을까?

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국 아랍과의 우호적이 협력이 수반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음을 모르는가?

 

종교도 역사도 한 두 개의 실마리로 실타래가 풀려지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어떤 종류의 책이 도움이 될 지 선뜻 손 내밀기에도 여의치 않았고, 가볍게 풀이한 책은 시간의 효율성에는 플러스(plus) 가

되어질 지 모르겠으나 결국 그 지루하고 장황한 역사와 종교의 뿌리를 쉽게 이해할 수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의 골짜기가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나의 깊은 골짜기에 적어도, 작은 출발점이 되어 줄 책을 만났다.

<메카로 가는 길>, 유럽에서 나고 자란 오스트리아인, 무함마드 아사드가 바로 그 반가운 책이었다.

이 책을 난, 우여곡절 끝에 음미하게 된 경우이다. 첫 번 째 기회에서는 아쉽게도 닿지가 않았고, 우연히 도서관 책꽂이

맨 아래칸 자리에서 누군가가 몰래 책 들 위헤 살짝 얹어 놓은 것을 발견하고야 만다. 밑줄도 긋고 마음대로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었으나 기한이 정해진, 돌려줘야 할 책이었다. 그러다가 세 번 째 기회가 닿았다.

시간을 두고서 곱씹어 보아도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가 처음으로 모험을 강행해 볼 수 있는, 광활하고 뜨거운

햇살 아래의 사막을 횡단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혹시, 이슬람 종교에 국한해서 종교를 설명한다거나 심히 종교적일 뿐 이다 거나 경전인 코란을 읽고 해석하는 책이

아닐까 라고 기대하거나 원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한 형제들처럼 소중히 아끼며 여행자에게 아낌없이 친절을 베풀던 이슬람 속 부족 사람들, 삭막한 모래 폭풍 속의

건조함 만이 사방천지인, 한 우물 안의 물을 함께 나눠 마시던, 낙타 등에 매 달 물 푸대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나며.

부족들간의 각자들만의 특색은 있지만 메카를 향해, 그 곳 만을 생각하고 오직 한 곳으로만 향해 있던 사람들......

사막을 가로질러 여행하며 동행하던 자이드 와 길 안내인들, 타는 듯한 사막 속에서 죽을 고비도 넘기기도 했고, 메카에

함께 닿았었던 여행에서는 아내마저도 잃었던 저자, 진솔했고 탁월했던, 프랑크푸르터 자이퉁 소속의 특파원.

부족들 간의 세력 다툼과 영국, 이탈리아 등의 외세의 압력, 샤우드 왕가와의 친밀한 교류, 서서히 동화 되어 가던 이슬람......

 

저자가 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두 문화를 바라 보면서 어디서 잘 못 되었는지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어느 한 쪽이 우세하고 다른 한 쪽은 열등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 물질 문명의 발달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또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p121 - p122

서서히, 끈질기게 거리를 좁혀오는 저 서구의 손길 앞에서 자이드나 자이드의 동족이 얼마동안이나 영혼을 지켜낼 수 있을까?

사막도 밀려드는 서구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다. 과연 이슬람 세계는 서구의 영향력에 밀려 전통의 틀 뿐만 아니라

영적 근원마저 잃게 될까?

 

이렇듯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저자의 시선은 이슬람 문화에서 영적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p261

갑자기 환청이 들리는 듯 했다. 기차가 철도 위를 요란하게 달리는 소리.  아직은 상상하는 단계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

있는 소리다. 영국은 인도로 가는 육로 확보를 위해 철도를 건설한다는 구상을 세워 놓고 있었다. 지중해 연안부터 페르시아

만까지 철도가 건설되면 제국 통치에 필수적인 교통망이 형성된다.

 

저자가 이슬람 세계를 보고 들으며 여행할 그 시기는 1920년 - 1930 년대... 마치 우리네 구한말 열강 속에서, 러시아, 청나라,

일본, 미국등에 둘러싸여  몸부림 치던 바로 그것과 유사하게 오버 랩 되는 순간이었다.

 

이 외에도 저자의 모험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슬람 세계에 분열을 가져온 수니파 와 시아파 의 갈림길, 이 책을 통해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 말 프랑스가 점령하면서 깨진 평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지하드,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을 했다는 말도......

 

그리고, p 367

이슬람을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이던 바로 그 순간,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데 조금씩 그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적어도 내게 있어 종교를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같은 신념을 품은 사람들과 이슬람이라는 여로를 함께

걸으면서 내가 선택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협력한다는 뜻이었다.

이슬람은 살아가는 방식이지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마르의 게릴라 전사들은 1300 년 전 예언자의 동료들이 그랬듯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자유롭게 추구하고자 땅에 피를 흩뿌리며 항쟁하고 있었다. 악전고투하는 그들을 돕는 것은

내게 기도를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이슬람에 대한 표현이 감동적이었다.

 

이 책으로 이슬람 세계의 배경과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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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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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03 년 노벨 문학상 수장작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책 들 속에서 보여지던 <추락> 이라고 하는 글자는 크게 눈길을 끌 만한 부분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손이 가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거기는 인종 이라는 특별한 조건이 있는, 평범하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있을 법한 이야기로 전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루리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혼남이다.

굳이 이혼남 이라고 밝힌 이유도 사건이 발생할 만한 원인이기에 시작할 수 있었던 단어였다.

적당히 즐기며 잘 살아가던 도중에 그의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 중 하나인 멜라니 라는 여학생과

은밀한 만남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의 사회적 지위는 눈깜짝할 사이에 곤두박질쳐진다.

그렇게 도망치다시피 그의 생활권에서 벗어나 딸 루시가 살고 있는 시골로 향한다.

도시 생활만 해 왔던 그와 그의 전 부인 둘 사이에서 흙에 애착을 갖고 동물을 사랑하는

시골여자 스러운 딸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믿기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부녀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예사로운 편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이 주는 이야기의 무대는 그저 흑백 인종 구분이 있다는 선입견이 살짝

있기는 하지만 전반부에 흐르는 전개상 흑인을 따로 등장시켰다던가 하지 않아, 최소한 색깔에 대한

언급 정도 쯤, 그런 정도도 하지 않아 그 희미한 부분이 뚜렷해 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딸 루시의 농장 근처에 살고있는 페트루스와 베브 쇼가 등장하기까지는 말이다.

 

작가의 문체는 복잡하지도, 구구절절 길지도 않은, 간단, 명료 하다.

문장 하나의 길이가 매우 짧게 진행해서 오히려 단순하기까지 한데, 그 단순성에서 그들이 흑인이라는

힌트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작품 중간 부분에 이르러서 정말 뜻하지 않은 강도사건이 발생하면서

루시의 삶이 파괴되고, 루리 교수도 몸에 상처를 남긴다.

딸이 위험한 곳으로부터 떠나기를 권유하지만 자신이 직접 일구어 온 땅을 떠나려 하지 않고

부녀사이는 이로 인해 사이가 서먹해 진다.

 

삶의 위협을 받고서도, 누구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루시의 마음은

대체 뭐였을까?  떠나지 않고 그 땅에 눌러 앉는 것 만이 그들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그들의 화를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였을까?   강도들은 그녀에게 분풀이 하듯 폭행을 했고

그 충격이 있음으로도 루시는 떠나지 않고 남았다.

사건이 터지던 날 이웃인 페트루스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그녀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그제서야 흑백 인종간의 갈등임을 눈치 챌 수 있었고, 루시는 끝까지 그 땅을 지킨다.

페트루스가 제안했던 세번 째 부인이 되든, 첩이든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다면서.

 

루리는 틈만 나면 바이런과 그의 연인 테레사를 주제로 오페라를 쓴다.

거창한 악기들을 동원해서가 아니라 딸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악기로 음을 만들어 보며.

음악없는 오페라, 독자로서는 이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 내기가 어려웠다.

이루어지지 않는 바이런과 테레사, 그들 사이처럼 루시가 지켜내고자 했던 땅의 의미는

테레사의 기다림과 같은 것인지도......

 

저자 큿시 (Coetzee) 는 1998 년 남아공의 상황에 대해,

" 우리는 현재, 옛 것과 새 것이라고 희망했던 것 사이의 불안하고 점점 더 편치 못한 틈에 있는 것 같다" 라고

했었다.  남아공의 백인 정권에서 흑인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겪었을 사람들의 불편함도 어느 정도 포함된

소설이리라.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큿시의 작품을 읽어 보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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