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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2003 년 노벨 문학상 수장작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책 들 속에서 보여지던 <추락> 이라고 하는 글자는 크게 눈길을 끌 만한 부분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손이 가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거기는 인종 이라는 특별한 조건이 있는, 평범하지 않은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있을 법한 이야기로 전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인 데이비드 루리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혼남이다.
굳이 이혼남 이라고 밝힌 이유도 사건이 발생할 만한 원인이기에 시작할 수 있었던 단어였다.
적당히 즐기며 잘 살아가던 도중에 그의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 중 하나인 멜라니 라는 여학생과
은밀한 만남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의 사회적 지위는 눈깜짝할 사이에 곤두박질쳐진다.
그렇게 도망치다시피 그의 생활권에서 벗어나 딸 루시가 살고 있는 시골로 향한다.
도시 생활만 해 왔던 그와 그의 전 부인 둘 사이에서 흙에 애착을 갖고 동물을 사랑하는
시골여자 스러운 딸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믿기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부녀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예사로운 편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이 주는 이야기의 무대는 그저 흑백 인종 구분이 있다는 선입견이 살짝
있기는 하지만 전반부에 흐르는 전개상 흑인을 따로 등장시켰다던가 하지 않아, 최소한 색깔에 대한
언급 정도 쯤, 그런 정도도 하지 않아 그 희미한 부분이 뚜렷해 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딸 루시의 농장 근처에 살고있는 페트루스와 베브 쇼가 등장하기까지는 말이다.
작가의 문체는 복잡하지도, 구구절절 길지도 않은, 간단, 명료 하다.
문장 하나의 길이가 매우 짧게 진행해서 오히려 단순하기까지 한데, 그 단순성에서 그들이 흑인이라는
힌트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작품 중간 부분에 이르러서 정말 뜻하지 않은 강도사건이 발생하면서
루시의 삶이 파괴되고, 루리 교수도 몸에 상처를 남긴다.
딸이 위험한 곳으로부터 떠나기를 권유하지만 자신이 직접 일구어 온 땅을 떠나려 하지 않고
부녀사이는 이로 인해 사이가 서먹해 진다.
삶의 위협을 받고서도, 누구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루시의 마음은
대체 뭐였을까? 떠나지 않고 그 땅에 눌러 앉는 것 만이 그들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그들의 화를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였을까? 강도들은 그녀에게 분풀이 하듯 폭행을 했고
그 충격이 있음으로도 루시는 떠나지 않고 남았다.
사건이 터지던 날 이웃인 페트루스는 그 어디에도 없었고 그녀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그제서야 흑백 인종간의 갈등임을 눈치 챌 수 있었고, 루시는 끝까지 그 땅을 지킨다.
페트루스가 제안했던 세번 째 부인이 되든, 첩이든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다면서.
루리는 틈만 나면 바이런과 그의 연인 테레사를 주제로 오페라를 쓴다.
거창한 악기들을 동원해서가 아니라 딸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악기로 음을 만들어 보며.
음악없는 오페라, 독자로서는 이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 내기가 어려웠다.
이루어지지 않는 바이런과 테레사, 그들 사이처럼 루시가 지켜내고자 했던 땅의 의미는
테레사의 기다림과 같은 것인지도......
저자 큿시 (Coetzee) 는 1998 년 남아공의 상황에 대해,
" 우리는 현재, 옛 것과 새 것이라고 희망했던 것 사이의 불안하고 점점 더 편치 못한 틈에 있는 것 같다" 라고
했었다. 남아공의 백인 정권에서 흑인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겪었을 사람들의 불편함도 어느 정도 포함된
소설이리라.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큿시의 작품을 읽어 보면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