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령 유랑단
임현정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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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령들 사이에 있는 남장한 여자, 의문과 궁금증이 일어나는 소재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궁금증은 금방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왜 남장을 하고 있는지 쉽게 밝히지도 않는다. 거기에다 구불구불하고 말랑말랑한 작가의 표현 방식에 사로 잡혀서 빠져 있으면 그 대답이 보일 듯 말 듯, 혹시 벌써 지나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의문까지도 들게 된다.

 

그 의문은, 은별이라는, 남자스럽게 생기지도 못하고 시력도 좋아 보이지 않고, 나약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소년 이야기에서부터  훈훈하게 생긴 꽃미남 단체의 등장까지 길게 이어지면서 풀리지 않은 채 읽어 나가야 했다. 처음 도입부에서 이미 안개 속에 있는 듯 미스터리 투성이 였다.

 

은별이 정녕 여자는 맞긴 하나 싶은 의문까지 들 정도로 작가는 능란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논리적이고 분석해 가야 하는 미스터리가 아니라서 그저 꽃도령들의 자유분방하고 재미진 행동들과 개개인 마다의 특성 속에서 저절로 묻어가게 하는 흐름에 맡기고 묻어가 보기로 했다. 저자의 문장 표현이 그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등장하고 있는 꽃도령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여섯이나 되어 각자의 특색 또한 나름대로의 매력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멀대같은 이지도, 우락부락한 호랑이도, 여자라면 질색을 하는 홍삼이도, 만년서생 문지도, 껄떡쇠 방정이도...... (53쪽)

 

부분적으로나마 그들의 외모나 특색을 그려보게 하는 문장들이 유랑극을 이끌며 생활해 가는 꽃도령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랑단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문지의, " ~하나니, ~하느니" 체의 말투 또한 인상적이다. 약초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홍삼이와 영혼과 같이 붙어다니며 점을 치는 말똥이, 여자 후리기에 일류 솜씨를 가진 방정이가 다 같이 유랑극의 시작을 알리는 광고를 맡고, 무예에 능한 예호랑이 극 중에서 칼 춤을 선 보이며 마을 과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금쟁이 이지도 음악 담당으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도대체 이들과 은별의 관계는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면 은별을 지키는 보디가드, 라는 생각도 들게 하지만 그러기엔 은별의 신분은 보잘 것 없다. 공부에 관심없는 주인 도령의 공부를 도와주는 책비 정도로서 노예 시장에서 100 냥에 팔리는 몸이 어떻게 보디가드를 둘 수 있는 생각을 꿈조차 꿀 수 있을까. 그런데도 노예 시장을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힘 없는 아이들, 젖먹이 딸린 여인네들을 사 들이고, 책 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는 은별의 이해 못 할 행동이 점점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목숨을 걸고 은별을 지키려는 꽃도령들의 헌신과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 인물들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샛 바람에 저고리 풀어지듯,  무명 치마에 감물 배듯, 우물가에 벚꽃 나리듯,  목화가 툭 떨어지듯 " 과 같은, 목차에서도 보여 주듯이 작가의 감미롭고 아름다운 단어 선택에서도, 또 사이사이에서 읽혀지는 문장 구사력에서도 마음 훈훈해 질 수 있는 매력이 군데군데 숨어있다. 작게 이어가는 인연들이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 큰 사건으로 넘어가게 되는 사건 전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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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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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단코 죽는다. 죽음에서 오는 공포감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 책에서는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으로써 죽음이 주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각이 달라진다 한다.

 

죽어가고 있음을 상기할 때, 현재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동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 되겠지만, 옳은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지를 사회 속에서 배워오고 습관화 시켜 온 지식과 이미지 만으로도 소멸하고야 만다는 것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린다. 자신이 살아온 사회가 일컫는 윤리, 도덕, 상식같은 올바른 세계관 아래에서 형성된 개인의 자존감 역시 마찬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만약 우리의 문화적 세계관을 이루고 있는 상식, 윤리가 틀렸다고,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거나, 어떤 이유로든지 자존감이 크게 떨어졌을 경우, 가령, 현재 보여지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정치권의 부패같은 온갖 종류의 실망스런 지표들은 우리를 이루고 있던 문화적 세계관을 크게 뒤흔들만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흐려지게 할 만한 상황이다. 여태까지 믿어왔던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상태를 초래하고 급기야 개인의 자존감까지 상실하게 만들만한 조건이 된다. 이런 경우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욱 가까워지고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뜻이 되겠다.

 

이 책의 주제이고 우선적인 나열 부분인, '언젠가 죽는다' 는 암시 아래에서 우리의 생각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이며 사회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에 초점을 두고 읽어가면서 동시에, 우리가 불멸의 존재라면 어떤 상황이 도래할 것이며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도 의문이 앞섰다. 죽지않는 존재에게는 또 다른 종류의 공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죽어가는 존재에게는 반드시 있을 죽음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을 개체는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의 역할은 인간 삶의 전 분야에 걸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광범위한 원동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시 시대 때 부터 인간은 크고 작은 의례, 의식을 통해서 문화적 세계관에 익숙한 습관을 마련해 왔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발견된 일련의 동굴 벽화 같은 것에서도 인간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온갖 활동들을 해 왔음도 보여진다. 그 모든 상황들이 열거되어진 것을 살펴보면 불멸을 향한 몸짓이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고대 신화, 종교, 의식부터 신체 장기의 냉동 보존까지, 과학 기술이 발전한 후 부활할 수 있을 조건을 기대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을만큼.

죽음이 존재하기에 죽음을 잊기 위해서라도 몰두하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 것이다. 문학이 그랬고 예술 장르가 발달하게 된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인간처럼 군집 생활, 사회 참여 방식으로 존재하는 개미 집단에서 보는 것 처럼 각자의 의무가 있고 할 일이 있음으로써 마침내 소멸한다는 불안과 공포를 무너뜨리게 하는 역할이 되어 주는 것 같다. 개미는 한낱 기계적으로 모든 활동을 끊임없이 하는 듯 보여지지만 인지 능력이 있는 인간은 존재감을 느낄 때 부터 소멸로 향하는 자신을 떨칠 수가 없는 구조이다. 창작 활동을 하고 종교 생활을 하는 이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일상의 크고 작은 일까지도 부지런히 죽음을 잊어가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는 사실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까지도 작용하고 적용되어 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또 어떤 것들이 있나 살펴보면서 실생활 속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특정 행동과 선택이 더욱 이해하기 쉬워졌다. 또 이런 것들을 시의 적절하게 잘 이용하고 있는 권력자, 정치인, 사회의 온갖 암적인 존재들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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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다
홍승표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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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늘 듣고 보고 말하는 단어이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하등 상관없는 단어처럼 다가올런지도 모른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회귀는 분명코 일어날 일인데도 현재 시간 속에 호흡하는 자체에만 온전한 나 인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참된 나' 와 '거짓 나' 로 구분지어 표현하는 저자의 늙음에 대한 생각은, 참 되었든 거짓되었든, 눈으로 보여온 나 만을 바라보며 살아 온 우리들에게는 둘로 나누어 생각할 도리가 없다. 마치 영혼과 육체로 나누어 생각하듯이 겉의 나, 내 안의 나로 바라 보면서, 흘러가는 시간에 비례해서 변화하는 모습으로써  늙음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겉에 있는 나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지만 내 안의 나는 비례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흩어지고 분해되어 가는 모습으로 인해 좌절하게 되더라도 그만큼 껍질 속의 알맹이는 익어가게 되는 것을, 순리 라는 이름대신 자연스럽게 무르익어 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늙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허무하고 쓸쓸해 지는 마음을 좀 더 다독이게 되는 역할이 되어줄 지도 모르겠다.

시선 하나 달리 두는 것으로 서글픈 마음이 영글어 질 수 있다면 이 효과는 살아가는데에 큰 힘이 되어 줄 것 같기도 하다.

비단, 외모에만 그치지 않는다. 마음 공부라는 이름 아래 마음이 받게 되는 상처를 돌볼 수 있는 참된 나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 없다.

 

여기에서 더 확장하여 마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일어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며 괴롭히는 감정이 더 이상 진정한 나를 넘어서지 않도록 분리하는 연습도 언급한다. 마음 속의 고통, 초조,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즉각, 그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 가짜 나를 참된 나와 분리시켜 돌본다. 이런 과정이 자동적으로 이뤄지게 될 때 인간이므로, 인간에게서 떨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니 가히 도를 닦는 수준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배워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리라.

 

" 아, 늙으니까 참 좋다."   " 아, 초조함이 다가왔구나, 반갑다, 초조" 

 

이런 마음 상태가 자연스러우면 저자가 일상 속에서 겪어오는 온갖 혼돈같은, 어머니의 잔소리와 간섭, 학생들의 비난,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의 부조화, 같은 일들이 언제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으로써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고통이라 불리우던 감정이 어느 덧, 푸른 하늘 위에 잠시 생겨났다 흩어지는 구름, 혹은 바다 위에 일어나는 파도와 같이 간주되어 진다면 죽음조차도 장엄하게 맞이하게 될 것이고, 살아가면서 더 이상 신경쓰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다니 이렇게 되어질 날,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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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평전 -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최광진 지음 / 미술문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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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경자 화백, 그녀의 작품을 전시회를 통하여 그리고 책으로 여러 번 접했었다.

한 눈에 들어오는 범상치 않은 그림들은 내게, 천 경자의 그림 이란 꿈을 꾸듯 몽롱한 환상감과 그로테스크함 이라고 함축 할 수 있다. 십 대 때 감상 했었던 피카소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기괴감과 특이성을 굳이 끌어대지 않더라도 그녀의 작품은 난해하고, 그러면서도 비범한 향기를 그득 품고 있었다.

 

화가의 일대기를 일부러 찾아 읽지 않는 한은 쉽게 주변에서 찾아지진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이상스러웠던 그림들은 작가의 삶을 전기적으로 표현해 놓은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생각해 왔던, 왜 뱀을?, 왜 꽃과 함께?, 왜 사람의 모습을 저렇게? , 라던 의문.

작가 스스로의 내면과 감성이 우러나온 작품이기에 그에 맞춰 해석해 보려 했었으나 스스로 실패했던 감상의 그 날은 이제, 그 왜?, 에 대한 대답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어린 시절 여동생을 잃고 나서 뱀을 그리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고독에 몸부림 칠 때, 죽음과도 가까운 우울증에 시달릴 때에 그녀는 뱀을 그렸다. 자연 속에서 뛰며 자라난 그녀였기에 꽃으로 표현했던 인생의 강렬함도 이제는, 그녀의 그림이므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그렸던 코끼리 등 위의 여인은 처음 봤을 때 환상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녀의 스케치 여행 이후에 생겨난 작품 세계를 읽고 나니 그 작품에 다른 시선을 둘 수 있었다.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에 대한 애정이 이토록 크고 강했던 그녀의 삶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화려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점이 그녀를 더욱 그림으로 치닫게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들, 가정 속에서의 행복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그림으로의 열정은 놓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다.

 

창작의 동기를 되찾고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 떠난 여행은 무려 세계를 한 바퀴 돈 만큼이나 길었다. 남 태평양 사모아와 타히티, 파리, 이탈리아 그리고 아프리카. 부러우리만치 행복 했을 것 같은 스케치 여행이었다. 게다가 종군 화가로서 베트남에 갔었고 폭풍의 언덕, 헤밍웨이의 집 까지, 뛰어난 작가들의 흔적을 따라 떠났던 여행까지, 어려웠던 살림 속에서도 그렇게 예술가적인 혼을 쫓아 생활할 수 있었는지, 이 점은 내 인생에서도 생각해 볼 만한 숙제가 되었다. 현실에서 매몰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실천 정신, 그 실행력을 꼭 배워봐야 겠다. 그녀가 고독과의 사투를 벌이면서도 해 내고야 만 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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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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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따뜻하고 훈훈한 일상을 눈으로 읽어가며 즐긴 기분이다.

일본 작가가 쓴 요즘 보기 힘든 대가족의 일상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던 것은 예전에 우리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고, 또 보아오면서 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겠다.

 

히다씨 부부에게는 아흔 살이 넘은 고령의 장모가 있고 이 세 사람이 살던 단촐했던 삶에, 다 자라서 집을 떠나거나 성인이 된 자녀 셋이 다시 둥지로 모여 들면서 갑자기 3대가 모이게 된 배경은 그다지 유쾌한 이유는 아니었다. 대부분 핵가족 형태로 살거나, 요즘은 1인 가구도 부쩍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주 눈에 띄지 않는 가족 형태임에는 분명하다. 부부와  그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경제 위기 때문에 제가 자랐던 둥지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경우는 미국의 경우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기도 했던 현상이고,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합가를 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일상 속에서 신경쓰이고 배려해야 할 일이 늘어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단촐했던 만큼 평화로웠던 일상에 늘어난 가족 숫자는 더 이상 평화롭지 않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은 상당히 공감도 되었고 방마다 사람들로 채워진 북적이는 집 안이 모두가 외출을 한 후에는 그제서야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안도감 이런 것들이 현실감 났다.

 

읽어가는 초반부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별 흥미가 일지 않았다가 개개인의 마음 속을 헤집어서 그 숨은 뜻을 헤아려 보고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살펴보는 시선에서는 각각의 등장 인물에 내 감정도 이입이 되기도 했다. 큰 딸의 남편인 사위가 사업 자금에 쫓길 때 돈을 빌려 줘야 했었던 부모의 마음, 자신의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장남 가쓰로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가졌었는지, 십 대인 조카가 큰 소리를 내지르며 창고방으로 내 달릴 때에 가족 중에서 자신보다 못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삼촌으로서의 마음, 존재감 없고 속만 끓이게 하는 장남일지라도 인터넷 주식에 쓰일 자금을 슬며시 아들에게 쥐어주는 어머니, 이 모든 것이 말로 표현 하지 않아도 잔잔한 가족애로 다가왔다. 남들 하는 말로, 너 정도라면 평화로운 것이라, 하는 이 집의 어머니 상황은 위로는 치매인 노모를 모시고 아래로 자식들이 우글거리고, 그 자식들 하나하나 문제거리가 존재하는 현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족 문제를 한탄하려 들면 입막음 해 버리는 동창들, 넌 나은 편이다,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에게나 힘든 고통이 있음을, 사소한 고통일지라도 본인에게 다가 온 그것은 훨씬 크고 부담되게 하는 것임을, 그것이 곧 일반적인 가족의 한 모습임을 작가는 아주 잘 그려냈다. 책장을 덮으며 살짝 미소짓게 했던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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