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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평점 :
흑룡이 어머니의 방에 자리를 잡고 앉다, 는 예사롭지 않은 태몽을 꾸게하고 태어난 여자아이, 귀한 아이가 될 것이라며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라 난 여자아이는 초간택, 재간택을 거쳐 삼간택까지 오르더니 사도세자의 빈이 되었다. 혜경궁 홍씨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고 역사 속의 그 뒤주 사건의 주인공이자 시아버지인 영조의 며느리로서 겪었던 내용을 기록하였다.
총 6권으로 나누어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혜경궁 홍씨가 태어나고 자라난 가족, 세자빈으로 간택이 되어 궐에 들어가면서 모시게 된 세자 경모궁, 윗전인 인원 왕후, 정성 왕후, 선희궁, 그리고 시아버지 영조의 자애로움과 사랑 등을 자세히 기술하면서 뒤늦게 태어난 형제들과의 우애와 어머니와의 정을 1권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여늬 가정에서 곱게 자라난 효성스런 따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세자의 모습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아주 어린 아기씨를 돌보는 환경의 중요성을 아쉬운 심정으로 대변하고 있다. 어린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좋지 않은 조건, 주변의 나인들, 부모와 친지들이 자주 돌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닌 전각으로 세자를 살게 했다는 점에서 계속하여 아쉬워 하는 모습이다. 부모가 자주 돌볼 수 있는 처소도 아니고 나인들을 새로 뽑아 세자만을 정성스럽게 돌 볼 수 있는 자질을 가진 것도 아니고, 화평 옹주가 살아 있을 때에는 작게든 크게든 편들어 주고 노여움도 가라앉혀 주었던 역할들이 화평 옹주마저 일찍 떠나 버린 것 까지도, 세자가 참혹한 일을 당할 이유를 제공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되돌아 보면서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글공부와는 자연히 멀어지고 신변잡귀에 빠져 유흥과 놀이에 열중하는 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의 오해와 불신, 세자만 미워하는 듯한 태도와 상황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비뚤어져 나갈 수 밖에 없었음을, 어쩌면 이런 이유들이 모여서 임오화변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고, 아드님을 좋은 길로 이끌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 같은 느낌도 전해 진다. 왜 그렇게 잘 대해 주지 못했는가요, 라고 되묻는 듯한.
그런데, 제 3권에서, <사도세자 뒤주에서 천둥소리 들으며 죽다>편을 읽다 보면 여태까지 역사 속에서 알아오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약간 다른 뒷면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그 역사 속 그 날의 현장에 있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겠고, 혜경궁 홍씨도 그 날 현장의 내용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지 않아서 좀 단순화했거나 간략화, 혹은 그 날 일을, 지아비의 죽음의 순간까지 어떻게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마는 그럼에도 혹시라도 더 자세한 상황 묘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건만 담 너머 벌어진 일, 뿐이었다는 느낌을 받게끔 기술하고 있다.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가 뒤주를 들여다 준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 나로선, 이런 일까지도 뒷편, 4,5 권에서 <나와 내 친정에 대해 기록하다.>와 <역적의 집안이 된 친정을 변명하다.>에서 후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게 될까 두려워 글을 남겨 둔다는 방식으로 자신의 아버지, 형제, 친지들의 행동을 기술하고 있다.
왕세자였던 지아비를 시아버지에게 잃고, 전대미문의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 모르는 왕세자비로서, 남아있는 세손을 지켜야 하고 보존해야 하는 어미로서의 심정, 죄인의 가족으로서 친정까지 뒤이어 불미스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등 그 후폭풍 같은 여파는 매우 컸었다. 한편으로는 변명 처럼 읽혀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억울하고, 그렇다고 요즘 시대적으로 항의나 소명을 위해 감히 나설 수도 없는 임금의 시대를 살아 온 혜경궁 홍씨는 그야말로 가슴 치는 억울함과 분한 삶을 살았었다.
여기에서 새로이 알게 된 내용은 사도세자의 의대병, 옷을 갈아 입는데에 어려움이 많아서 시중드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입지 않는 것들은 바로 태우게 하니 그 옷감들이 남아나지 않았다는 것과 화평, 화완 옹주들의 행보, 특히 화완 옹주의 아들 후겸이, 정조 시대에도 악랄한 짓을 저질렀던, 그래서 혜경궁 홍씨가 어지간히 원통해 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도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이 아들의 증세를 알고서는 나라를 위해, 영조의 처분을 바란다, 이 말을 했다는 점, 그리고 이로 인해 영조가 '어쩔 수 없이' 그 처분을 했다는 이야기는, 참 읽어가면서도 어이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만큼 우매했고 정신이 없었던가,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대목이었다. 거기에다가 영조의 처분 이라는 것이, 소주방의 쌀 넣는 궤를 가져오너라, 이것은 또 무슨 결정인가 싶기도 했다. 이해되지 않는 옛 사람들의 가정 폭력 쯤으로 여겨졌다.
정조가 통치하던 시절에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누명을 벗겨 주겠다 약속했었다가 급작스레 정조가 죽게 된 점, 정순 왕후 조차 혜경궁의 힘이 되어 주지 못한 외로웠던 처지, 어린 순조가 이러저러했던 억울함을 제대로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며 다시 가슴을 쥐어짜는 괴로움을 겪었던 혜경궁 홍씨, 제 6권에서, <정조와 순조 그리고 나의 한 많은 일생>에서도 원통함이 나타난다.
더불어서, 정조 곁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던 홍국영과 끝까지 권력을 잡기 위해 자신의 어린 누이동생까지도 후궁으로 보내는 이야기,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친정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들이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없었고, 원통하다, 서럽다는 말이 구절구절 스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