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어 글쓰기 - 시선을 사로잡는 한 문장 만들기
김건호 지음, 전진우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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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폭발, 웃음 만발, 의미 기발....  센스가 돋보인다.

그래, 이런 책을 원해 왔었던 것 같다. 유머감각과 창의력은 언어 사용에서도 한껏 나타나니까 말이다.

 

광고 세계에서 불특정 다수의 눈을 끌고 관심을 갖게 하는 단어의 마술사들, 정말 부러운 두뇌의 소유자들 이었다.

저자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니 특이한 이력을 가지며 삶을 살아 온 사람이네.  민간 광고회사에서 활동하다가 공무원 자리로 이동해서 일을 한다니 의아스럽기도 했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경직되고 딱딱한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광고하는 융통성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저자가 적응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인 까닭이다.  톡톡 튀는 생각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저자가 그 사회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전혀 짝이 맞지 않은 듯 줄긋기가 잘 안되었지만 그가 있어서 유연하게 머리를 회전 시킬 수 있는 자극은 많이 되어 줄 것 같아서 오히려 좋은 결정, 나라 사랑하는 결단의 결과물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그 세계에서 '돌아이' 로 불리운다 하니 두 세계의 충돌쯤은 이미 짐작했던 바이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인 것 같다. 이런 저자의 활동은 본문 내용의 제목에서부터 이미 탁탁 튀어 오른다.

" 잠 자면 천사 깨면 전사"  웃음이 팡 터진다. 단어 그 자체를 원래 의미에서 조금씩, 점 하나 찍는 것과 같은 작고 사소한 변화로 천지 차이의 의미가 되어 버린다. 한 때 개그 콘서트의 개그맨들이 하던 것 처럼 언어의 유희를 즐기고 싶었던 내가 이런 유연성을 부러워 했었다. 내 머리도 쓰고 내 일상도 즐거워 지니 금상 첨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눈에 익고 낯익은 문구도 보인다. 이 작가의 작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들추다 보니 매력적인 단어와 문장들이 속속 드러난다. 같이 있는 삶, 가치 있는 삶,  발음 하나로 다른 의미의 단어를 붙잡는다. 그림, 글 힘, 기발하다. 느그 앱이, 애플리케이션을 앱 이라 칭하는데 이것이 가족을 지칭하는 단어로 새롭게 태어났다.

 

틀 속에 있던 나를 드러내어 언어의 자유 속에서 헤엄치고 싶다, 라던 그런 욕구를 저자의 비틀어 글쓰기에서 한 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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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40호 2016.봄 - 다람살라 2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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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telling ASIA,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을 먼저 했었다. 계간으로 발행하는 잡지를 언제적에 읽어 봤더라?, 와 아시아가 제목이니까 아시아 관련 소설이 줄줄이 나오겠구나, 였다. 예전 언제던가 계간 발행 소설 전문지를 받아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느꼈던 것은, 매 주 혹은 매월 연속하는 이야기도 연결지어가며 읽어가기가 기억이 아롱아롱 거려 지는데 몇 달이 지나고 나서 그 다음편 이야기가 나오는 계간에서는 연속되는 상황이 잘 기억 날까, 하던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시아 책에서 나오는 이란 알아보기와 심훈 문학상 작품이 실려 있다는 것에 호기심과 기대가 올라왔다.

 

아시아라 하면 아시아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들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의 사상과 삶이 녹아있는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들을 더 잘 알게 되는 계기도 될 것이고,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글을 읽어가면서 나라 별로 특색이 드러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달라이 라마 이야기와 티벳, 네팔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 이야기에서도 그들의 사상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평소에 자주 접하지 않던 문학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으로, 뚜껑을 열어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굴비처럼 엮어져 나왔다.

 

페르시아인으로서의 강건했던 기개가 이란인으로 되면서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를 이 책에서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 이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종교였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매일 떠오르는 사건과 이슈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보니 저쪽 서남 아시아 쪽의 무서운 종교가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자리 잡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본래 페르시아인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연결도 되지 않는 채로. 그들에게도 문학이 있었고, 그 문학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언어도 할 줄 안다고 말 할 수 없다는 그 말, 예전에는 이런 말들에 강력히 부인해 왔었던 나만의 생각, 언어는 연습에 좌우되고 습관적이라는, 그 생각을 다시 돌아 보게 해 주었다. 이란어를 전공하고 이란 문화를 읽고 배웠어도 이란인 처럼 말 할 수 없다, 이것은 강한 인상을 주는 말이었다.

 

네팔의 지진이야기도 뭔가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네팔 고향 땅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 10여 년을 타향에서 노력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짓자 얼마 안 있어서 지진으로 그 집이 부서졌다. 너무 가혹한 일이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가장 기대가 갔었던 심훈 문학상과 고은 작가와의 인터뷰 기사는 아직 입도 떼지 못했다. <작가의 눈>에서 바라 본 <고은의 깊은 곳>이 이 책 봄 호의 백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속에 숨어있는 고뇌는 작품 하나를 탄생시키기까지의 실상의 고통이 그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확인을 시켜 주는 기사였다. 고은 작가의 일생 자체는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혹했던 우리의 역사 속에 끌려왔다. 요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 빠져 있는 터라 더욱 이 시대의 고통이 다가오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것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절대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더 상기 시켰음이기도 하다. 오히려 태백산맥 이라는 소설 속 상황들은 조금이라도 미화 했을 것도 같다. 그만큼 고은 작가의 구비구비 일생에는 고통스러웠던 삶의 역사가 있었다.

 

109쪽 - 나는 허무와 죽음의 세계만을 나의 세계로 삼았네. 이런 상황에서 집을 뛰쳐 나가게 되었고 입산했고 몇 번째 자살미수를 거듭했지. 이 과정에서 나는 뭔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니 그것이 시와의 해후이겠네. 예감은 없었어. 예감 따위를 생략하고 맨몸으로 맨손 맨발로 시인이 되어버린 것이지.

 

 

아시아의 다른 나라 작가들, 특히 내게는 생소한 그런 사람들의 소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들 나라에서는 이미 유명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은 그런 작가들의 삶이 흙 속에 묻혀있다 흙을 살살 헤치고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다양한 읽을거리가 눈을 즐겁게 하고 아시아의 이모저모가 문장들 속에서 술술 풀려 나오니 모르고 있던 문화, 문학, 사상이 한 가득이다.

 

지금은, 왜 진작 이 책을 펴 보지 않았을까, 의아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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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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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며 하루 해가 다르게 계절은 봄의 영역으로 넘어서는 이맘 때, 늦겨울의 차갑고도 매운 공기가 봄을 재촉해 대는 꽃을 시샘하던 그 반갑잖은 시절도 견뎌 내온 우리의 몸은 시름시름 봄을 앓기 시작한다. 마음이 싱숭생숭거리고 봄에는 과연 멋진 일탈과도 같은 유별난 일상을 기대하는 스프링 피버가 바로 그것이다. 무언가 멀리 있을 그것 혹은 그 분을 그리워 하며 어서 빨리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올 것을 고대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미 실상 아닌 허상 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러 수십 차례 맞이하는 봄임에도 눈에 보이되 無 임을 알고 있지만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처럼 손 끝을 뻗어 내 밀어 본다.

 

이런 마음으로 피 천득 작가의 인연을 다시 잡았다. 학교 때의 교과서적 우연의 만남,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옳았다, 처럼 나이 이미 지긋해 그를 만나고 보니 이렇게 시시콜콜 일상적이었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수필이라는 문학의 한 쟝르를 알게 했던 것도, 주제없이 붓 가는대로 써 가는 것이 바로 그것임을 알게 한 작품, 인연.  이것은 그렇게 새로운 경험으로 어렸던 내게 첫걸음 했었다.

 

지금은?   우선 작가의 생년월일이 크게 들어왔다는 것, 1910 년 생, 한일 합방의 그 시간 그는 태어났고 요전 앞시간 까지 거의 100년 가까운 삶을, 우리의 현대 시절까지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갔다는 그것이 눈에 띄었다. 그 오랜 세월 우리나라에 벌어졌던 버라이어티 쇼의 한 가운데에서 저자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을 것인가?

 

자라나면서 일제 치하, 교육과 사회 문제에서 얼마나 많은 느낌이 오고 갔을 것인가? 청년, 중년, 장년을 거치면서 역사적인 순간도 거쳤다. 해방과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근현대화가 되는 첫 시점에서 부터 가장 왕성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문학 작가로서 큰 행운아였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도 시대에 따라 나이를 먹어 가는 건지도 모른다. 글에서 얼핏 비춰지는 시대, 낡았지만 예전 오래된 생각들도 다락방에 묵혀 뒀다 방금 꺼낸 것 처럼 케케하지만 정겹고, 먼지 켜켜이 쌓였던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그가 즐겨했던 일상, 그가 만났었고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딸 서영이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와서도 거리끼는 것 없이 현재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게 한다.

 

그가 관심두었었기에, 사랑했었기에 남겨두고팠던 사연들은 붕대 친친 둘러감은 볼썽 사나운 모습의 미라로 남겨지지 않고 영롱하다 말하고 싶을만치 예쁘게 한 페이지씩 짤막하게 마음으로 파고든다. 스펙타클한 느낌은 어림없지만 잘근잘근 씹어서 그 맛을 은근하게 즐겨보게 하는 그 맛이 일품이다.

 

이 봄, 그의 <인연>을 다시 만나 더 새로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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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쓰기 - 파워 블로그의 첫걸음
이재범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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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글쓰기, 글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할까?, 역시 우문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뭔가 특별한 방법은 그저, <하는 것>, 실행에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수가 있지요?, 누구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결을 묻는, 모두 같은 유형의 질문은 수두룩하다.  이것들에 대한 답은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뭔가 특별나고 재빨리 얻어낼 수 있는 비결을 은연 중에 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내에 그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까, 하는 터벅터벅 걸어서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름길이 어디 없나 하는 나태함과 안일함이 숨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잘 하는 사람에게, 이런 사람을 주로 <고수>라고 부르기도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잘 하지요?, 하는 감탄과 동시에 나도 어떻게 따라 할 수 없는가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혹시나 그 대답에서 묘약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블로그에서 글쓰기를 한 지도 수 많은 해가 지나갔고 강산이 변할만큼 훌쩍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화없는 정체감 같은 것에 홀로 독야청청 하는 마음, 차라리 변화를 던져 놓고 싶었다. 저자의 책이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 사뭇 기대도 되었고, 저자 따라하기만 해도 뭔가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고기도 먹어봐야 맛을 알고 글도 써 봐야 실력이 향상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들이 전개 되고 있음을 볼 때, 나의 블로그를 훑어 본다면, 신변잡기식 글쓰기에서 생활의 발자취를 기록도 해 봤었고, 영화나 스포츠를 본 것으로 마음이 동해 글을 썼던 리뷰 등은 저자의 말 대로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써 내려 갔었던 것이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식을 순서대로 다 거칠대로 거치게 된 것은 이미 수 많은 세월을 함께 했었던 오래 된 블로그이기도 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 블로그에 첫 발을 내딛거나 글을 잘 쓰고 싶은 의욕이 강한 독자들은 저자가 추천하는 바를 따라서 일기쓰기, 신변잡기, 기록등 모든 방식의 글쓰기를 따라서 써 볼 만 하다.

 

또한, 신변잡기식 글쓰기라 하더라도 목적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하라는 저자의 말은 고려해 볼 만 하다. 나의 경우, 애초에는 내 마음을 치료할 목적으로 시작했던 바가 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비판 의식 함양에 두고자 했었던 것도 있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는 식으로 글이 흩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바로 목적의식을 분명히 짓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저자가 예로 든, 조지 오웰이 글 쓰는 이유가 순전한 이기심, 심미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63쪽) 과 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순전한 이기심은 자신을 남에게 알리고자 함이라 말하던데 내게 있어서는 마치 넋두리같은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치유의 구실을 해 주었던 것으로 안다. 사진활동을 즐기면서 그 결과물로써 아름다운 자연에 열정을 퍼부었던 때에는 심미적 열정에 목적을 둔 셈이었다. 나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역사적인 충동에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 아무리 나를 위한 힐링 목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남겨두고자 하는 의욕 같은 것들이 언제까지나 항상 지속될 수 없음을 또, 그런 식으로만 글을 지속적으로 써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목적이 발생하게 된 이유가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책읽기를 통해 나 부터 그리고 나아가 타인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부분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겠다. 목적이 변화하게 되면서 컨텐츠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저자의 책을 늦게나마 읽게 되었지만 그동안 해 온 시간들을 확인하면서 제대로 잘 하고 있었던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정성스럽게 나아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다음 과정은 저자가 한 일 처럼 매일 하나의 서평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면 된다> 는 마음으로 서평을 써 나갈 것이다. 이제 겨우 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욱 정성을 들일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연약하고 부러지기 쉬운 노오란 병아리 상태 그대로의 나 임을 생각할 때 저자가 써 나간대로, 그냥 오늘도 <쓰기>를 멈추지 않을 자세로 나아가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은 한 가닥 희망사항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글을 잘 쓰려면 우선, 블로그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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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고수리 지음 / 첫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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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인간극장 출연자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데 어떻게 방송에 나가냐는 출연자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 딱 20일만 일상을 지켜보세요. 우리가 주인공이고, 우리 삶이 다 드라마예요." (13쪽)

 

일상이 드라마 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 고수리는 흔하지 않은 그 이름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말하는 모든 평범한 일상을 드라마로 만들어 내고, 보이게 하는 드라마 작가였다. 인간극장을 만들면서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과 보냈던 그녀의 일상 자체도 드라마 같았다. 이혼 가정, 엄마와 남동생과의 셋 만의 가족 생활은 불행했던 가족이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결정을 내렸던 엄마의 선택이었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면서도 또, 이혼한 엄마의 힘겨운 삶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보면서도, 여자로서의 엄마의 역할, 할머니의 딸로서의 엄마를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요 앞 전에 역사학자이자 비평가인 외국저자가 쓴 에세이 책에서 신화, 공간의 거대함, 시간의 광활성을 다루며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 있다가 그것을 손에서 내려 놓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리수리 마수리 라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고수리 작가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하자 드는 생각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아기자기하다, 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늘 마주 대하고 사는 사람들, 가족을 그려낸 잔잔하고도 높낮이 없이 지속되는 글 속에서, 이런 일상들이 무슨 화두나 화젯거리로 오를 수 있기나 한가?, 하는 의아함이 들기도 했었다가도,  한편으로 인간극장이 방영되던 그 상황을 떠올려 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늘 보아오던 그 주변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이니까.

 

흔히,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이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사건을 주도해 가는 것은 바로 나 이므로, 말하지만 그 말이 언뜻 실제감이 있게 닿아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분명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커다란 사회 속에, 혹은 집단, 단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부속품같은 인간으로만 다가오고, 단체 속에서는  알맹이들 속의 표 하나 나지 않는, 그 하나인 것만 같은 기분. 그 알맹이들 중의 하나로만 살아오다가 어느 날, 플래쉬 라이트가 자신에게로 고정되었다. 진정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이다.

인간극장이 단지, 인터뷰 하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수리 작가가 온 몸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끊임없이 전화하고 이야기 해 보고, 그렇게 상대방의 인생에 뛰어 들어 그 인생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캐내고 알아 내면서 그것의 아주 작은 단면이라도 이해할 때 한 사람의 인생이 비로소 주인공으로 부각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러다가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며 그녀를 주인공으로 발탁했다. 인간극장 같은 모습으로 그녀의 삶을, 어린 시절을, 추억을, 그리고 그녀 추억 속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내어 다시 세워 본다. 그 단면 하나 하나가 그녀 자체이다. 온전히 그녀가 주인공인 글이 독자와 만나는 것이다.

 

참 평범한 것 같다. 그러나 엄마, 할머니와의 추억은 언제나 그냥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따뜻함이 있다.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그녀가 쓴 그녀만의 인간극장 속에 그녀의 삶은 이렇게 독자에게 각자의 느낌으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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