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웃었다. 즐겁다기보다 슬프게 들리는 묘한 웃음이었다. 그의 삶을 잠시 상상해 보니 가여웠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 P210

어제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심장이 아니라 위야. 그녀가 생각했다. - P212

"영아 돌연사군요." 의사가 말했다."가끔 생기는 일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 의사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그녀는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용서는 망각을 뜻했는데 그녀는 쓰라린 경험을, 추억을 붙잡고 사는 편이 더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 P219

마거릿은 거절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차마 내줄 수 없었다. 그 뒤에 아이가 죽었고, 그녀는 결국 양막을 불 속에 던졌다. 아이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사소한 일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아이는 걸음마도 못 해보고, 나무에 오르지도 못했고, 비 오는 여름을 보지도 못했다. 그녀는 부엌 식탁에서 하는 숙제, 금별과 은별이 붙은 연습장, 현관에 놓인 더러운 헐링 채, 블레이저를 맞추기 위해 어깨 치수를 재는 것을 당연한 미래로 여겼다. 그랬는데 소리도 없이 시야에서 벗어나는 무언가처럼 미래가 지워졌다. 사라져 버렸다. - P220

그녀는 차를 타고 성당으로 가서 아이의 영혼을 위해 초를 켰다. 그녀가 성당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고해소 밖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거릿은 성 안토니오 발치에 초를 놓고 불을 붙인 다음 제일 앞줄에서 무릎을 꿇고 강론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배 속에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사제가 거기 서서 강론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거릿은 기도를 드릴 생각이 아니 었지만 무릎이 아파서 고개를 들어 보니 나이 많은 여자는 사라지고 아이들이 첫영성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 애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절대 보지 못할 아이의 얼굴을 찾았고, 성당 포치에 놓인 성수대에서 셰리 병을 성수로 채워 광장을 가로질렀다. - P221

다른 인간과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거릿은 크리스마스 이후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자기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그 사이에 놓인 모든 오해의 가능성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아주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23

해수면에서 파도가 계속 부글거렸다. 바람은 강하지 않았지만 멎지도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그 무엇도 멈추기를 바라지 않았다. 스택은 머리카락이 풍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농의 딸에게 그 오랜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난 사랑에 빠진 적이 없어요." 그가 말했다. "나한테는 조지핀밖에 없어요."
"내 마음이 아프려고 하네요."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당신 마음은 이미 아프잖아요." - P226

바다는 성내지 않았다. 파도는 매번 절벽 앞에서 제동을 걸고 여정이 끝나기 직전에 속도를 늦추는 것 같았지만 앞선 파도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듯이 다음 파도가 계속 밀려왔다. - P226

그녀는 미친 사람들이 세상에 있어서 기뻤다. 마거릿은 그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약간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가 모퉁이를 돌자 타조들이 번화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도에 서서 지나가는 타조들을 바라보았고 머리를 땋은 어린 소녀가 막대로 타조를 몰았다. 그래, 미친 거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마거릿이 생각했다. 때로는 모두가 옳았다. 미친 사람이든 제정신인 사람이든 대체로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자신이 원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 P233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네."
"나도 그래요."
"정말 다행 아닌가요?"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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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노크로 성지 순례를 갔다가 막대 사탕과 우산을 가지고 돌아왔다. 마거릿은 바람이 세찬 날을 기다렸다가 날 수 있을 줄 알고 보일러실 담벼락에서 우산을 펴고 뛰어내렸다가 도로에 떨어져 발목이 부러졌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근거 없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그렇게 빨리 증명된다면 좋았을 텐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체로 어둠 속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 P190

5시가 되어 사위가 어두워지자 그녀는 밖으로 나가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풀밭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집 주변의 모든 풀잎에 소변을 보고 싶었지만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풀은 길고 위쪽이 시들했다. 더나고어는 나무 한 그루도, 가을에 시든 나뭇잎 한 장도 볼 수 없는 이상한 곳이었다. 출렁이는 이탄지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구름 아래에서 비명을 지르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밖에 없었다. 풍경은 금속처럼 견고하고 영원해 보였지만 오크 나무와 마가목의 고장에서 온 마거릿에게는 덧없는 느낌이었다. 여름에 그늘도 없을 테고 8월이면 노랗게 익는 보리밭도 없을 것이다. 동쪽에서는 지금쯤 하늘이 낙엽에 가려지고 암소들이 헛간으로 들어가고 젖소들이 칸막이에 묶일 것이다. - P191

다음 날 아침, 마거릿은 재를 비우러 나갔다가 바람에 날린 재가 눈에 들어가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 와서 누구도 해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치게 두지 않으면서 이 집에서 최대한 오래 살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면 그녀는 다시 이사할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경로를 이어 배를 타고 아란 제도로 건너 가서 아일랜드의 최서단으로 옮길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자. 사람들은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 P191

마거릿은 사제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산책에서 돌아와 비눗물이 든 대야에 발을 담그고 앉아서 라디오 너 게일턱터 방송을 듣거나 뜨거운 물병을 안고 그의 침대에 들어가서 램프를 기울여 불빛 각도를 맞춰 그의 책을 읽었다. 가끔 그가 밑줄 친 문단을 발견했지만 대단한 의미는 없었다. 그녀가 이 집에서 마주치는 그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가끔 마거릿은 침대밑에서 그의 그림자를 보았고, 그녀의 존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의 차가운 존재를 느꼈으며, 그의 풀어진 옷깃과 소매에 들어간 건초 부스러기가 다시 보였지만 사제의 유령일 뿐이었다. - P195

마거릿은 잠들기 전에 벽 너머의 이웃이 침대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여기긴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과거는 곧잘 배신을 했고, 천천히 움직였다. 자기만의 속도로 결국은 현재를 따라잡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뭘 할 수 있을까? 후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슬픔은 과거를 다시 불러올 뿐이었다. - P196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밤, 그녀는 절벽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어머니에게 몇 자 적어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해도 마거릿은 알 수 없었다. 바다가 미쳐 날뛰며 땅을 먹어치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흠뻑 젖어 있었다. 짭짤한 비 때문에 추우면서도 더웠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마을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기가 나간 것이다. 마거릿은 난롯불에 이탄을 던져 넣었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이탄이 난로 받침대에서 기분 나쁜 연기를 피웠고, 불꽃으로 타오르지도 못한 채 다 타서 꺼졌다. 마거릿은 나무가, 도끼로 쪼갤 수 있는 커다란 마가목 장작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서리가 내린 맑은 아침에 밖에서 장작을 팬 다음 벽에 기대어 쌓는 모습을, 거기서 어떤 냄새와 열기가 풍길지 상상했다. 그러나 더나고어에는 장작이 드물었다. - P198

그날 밤, 마거릿은 초를 켜고 비눗물에 발을 담근 채 연기를 잔뜩 피우는 이탄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사제가 지옥에 갔을까 생각했다. 사제는 사후 세계를, 하느님과 천국과 연옥을 전부 다 믿었다. 그는 지옥을 믿지 않으면 천국을 믿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마거릿은 자신도 그가 있는 지옥에 갈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차라리 푸칸이나 돌소리쟁이가 될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았다. - P199

그는 혼자 죽을 것이라고, 문짝을 다 먹어치우고 나간 조지핀을 누군가 길에서 알아본 다음에야 자기 시체가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만큼은 확신했다. 누구나 무언가를 확신해야 했다. 그래야 하루를 이해할 수 있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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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어요. ‘남편은 자기 씨앗이 없답니다.‘
이 말을 하는 여자의 태도 때문에 외판원은 초조해졌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죠. 그녀의 수국처럼 파란 수국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런 다음 밖으로 나가 꽃을 만져보았어요. 여자는 수국을 만지는 남자에게 내리쬐는 태양에 끌렸지요. 그녀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이 그의 목을 만졌고, 그런 다음 그의 엄지가 올라와서 그녀의 입술을 쓸었어요. 놀란의 손보다 부드러웠죠.
"당신의 눈은 젖은 모래 색이군요.‘ 남자가 그녀에게 말했어요." - P133

아이는 이 부엌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들이 늘 이렇게 행복하면 좋겠다.
"여자는 현관문 옆에 장미 덤불을 심었어요." 마사가 이야기를 계속한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놀란은 자기 돈을 그런 데 쓰다니 멍청하다고 말했죠. ‘도대체 어떤 여자가 꽃에다가 돈을 다 써?‘ 그뿐만 아니라 자기한테 제대로 된 저녁 식사도 차려주지 않는다고 책망했어요. ‘일하는 남자 저녁으로 감자랑 양배추는 부족해."
"배가 불렀군!"
디건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그가 들을 필요 없는 부분도 있다. 마사는 개를, 딸아이를 끌어들일 것이다. 어디까지 이야기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웃 사람들은 마사가 이 이야기 말고는 한 적 없다는 듯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듣고 있다. 디건이 일어선다. - P134

침묵의 뚜껑이 디건 가족을 덮는다. 너무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할 말이 남지 않았다. 요즘은 이웃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디건은 미사 참례도 그만두었다. 그게 무슨 소용인지 이제 모르겠다. 그는 더 늦게까지 일하고, 먹고, 우유를 짜고, 목요일마다 테이블에 돈을 두고 나간다. - P136

"당신이 딸한테 화풀이한 게 유감스러울 뿐이야." 그녀가 말한다. "그뿐이야."
"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어." 그가 처음으로 인정한다. 이제 이 길로 들어서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디건은 더없이 확신에 찬 순간에도 무언가에 끝이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그들은 열기가 너무 뜨거워져서 뒤로 물러나야 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 P140

마사가 딸의 손을 잡는다. 그녀는 모아둔 돈을, 외판원과 못 쓰게 된 붉은 장미들을 생각한다. 여자애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저지가 돌아왔다. 아이가 지금 당장 신경 쓰는 것은 그 사실밖에 없다. 자기가 오빠에게 불붙이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생각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그 죄책감은 나중에나 생길 것이다. 디건은 무감각하지만 전보다 가벼워진 느낌이다. 과거의 고역은 사라졌고 새로운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길 웅덩이에 불길이 비쳐 은처럼 밝게 빛난다. 디건이 생각을 붙잡는다. 그에게는 일이 있고, 이건 그저 집일 뿐이고, 그들은 살아 있다. - P140

"누가 신경이나 쓴대?" 아이가 따라가면서 계속 속삭인다.
"누가 신경이나 쓴대?" - P141

부모님이 이혼 절차를 밟는 동안 그를 데리고 살았던 할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부재를 느끼지 않은 적이 하루도 없다. 할머니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느니 거기 남아서 거리의 여자가 되겠다고.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식을 아홉 명 낳아주었다. 청년이 차에 다시 탄 이유를 묻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했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줄 알았어." - P156

모래톱에 다다르니 슬슬 지친다. 밤이라서 물이 더 차갑고 파도는 더 화가 났지만 그는 늘 그러듯 해안으로 헤엄쳐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쉴 수 있다. 바닥의 모래를 느끼려고 발을 내려본다. 머리 위로 두꺼운 파도가 덮쳐 그를 깊은 물속으로 빠뜨린다. 그가 물을 먹고 얕은 곳을 찾아서 더 멀리 가보지만 바닥이 느껴지지 않는다. 샴페인을 그렇게 마실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영하러 올 생각도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단지 행복한 생일날이었다. 그는 한참 발버둥을 치다가 더 깊이 잠수한다. 오직 숨을 쉬러 위로 올라가면 더 쉬울 것 같다. 공황이 덮치지만 시간이 지나자 평화로운 무언가로 바뀐다. 왜 정반대는 항상 이렇게 가까이 있을까?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고음, 듣기 싫게 찢어지는 소리가 되기 직전의 그 음 같다. 그는 단념하고 수면으로 떠오른다. 헤엄쳐 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둥둥 떠 있다가 서서히 해변을 향해 애쓰며 나아간다. 거리가 무척 멀지만 밤하늘을 등진 리조트 불빛이 선명하고 점점 가까워진다. - P157

얕은 물가에 이르자 해변으로 기어 올라가 모래 위에 쓰러진다. 그가 힘들게 숨을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조류가 그의 옷을 가져가 버렸다. 그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종을, 그들에게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를 상상한다. - P158

그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그렇게 먼 길을 가서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는데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강에서는 수영을 그렇게 잘했는데 말이다. 그가 왜 그랬냐고 묻자 할머니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그랬다고 말했다. - P160

누군가를 모욕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는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서 아내가 자는 줄 알고 어둠 속에서 이 말을 소리 내서 했는데, 아내는 때로 누군가를 모욕하지 않기가 더 힘들다고, 그리스도인이라면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할 약점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아내의 숨소리가 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잠 못 이루고 누워서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뜻이었을까? 여자의 마음은 유리로 만들어졌다. 너무 투명하지만 또 너무 쉽게 깨졌다. 더 단단한 다른 유리 같은 생각에 졌다. 남자를 매료하는 동시에 겁을 주기에 충분했다. - P166

자전거에서 내린 중사는 도로 한편의 주목 아래 가만히 서 있었다. 주목은 심은 시기가 제각각이었고 그 밑에 서서 비를 피하면 기분이 좋았다. 똑같은 검은 연기가 아직도 막사 지붕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서서 지켜보았지만 연기는 변하지 않았다. 도허티가 헛간으로 가는 낌새도 없었다. 강아지는 키운 방식 그대로 개가 된다. - P167

중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익숙한, 차분한 우월감이 찾아왔다. 그보다 못한 이들은 그 느낌에 굳어졌겠지만 중사는 그때야말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가시금작화 밑에서 사정거리 안에 기관총 사격수가 보였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음모를 꾸미는 익숙한 전율, 곤두선 신경. - P169

중사가 꾸러미를 가지고 뒤로 나가서 자전거 짐받이에 조심스럽게 묶었다. 이제 막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지만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서 잠긴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중사가 왔다는 소리에 멈추었던 대화가 일상적인 담소로 바뀌었지만 그가 가게에 들어가자 그것마저 뚝 끊겼다. 그는 침묵을 헤치고 걸어가면서 항상 느꼈던 그 익숙한 거리감과 우월감을 느꼈다. 그는 이 근처에서 자랐고 사람들은 그의 가족을 알았지만 그는 절대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카운터에 서서 짙은 색 나무의 얼룩을 보았다. - P173

"날씨가 참 사납지 않아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늘 있다. 다른 상황이라면 타인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불이 필요한 날씨예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중사는 누구 한 사람이 나서기를, 대놓고 뭐라 하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의 앞에서는 가볍고 엉큼하게 한가로운 농담이나 할 테고, 중요한 이야기는 그가 떠난 직후에야 나올 것이다. - P173

생각했던 대로였다. 그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꼈지만 내심 틀리기를 바랐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희망은 언제나 제일 마지막에 죽는다. 그는 이 사실을 어렸을 때 배웠고 군인으로서 직접 목격했다. - P178

방이 따뜻해졌고 이제 체인도 말랐을 테다. 불빛이 자전거 바퀴 테, 핸들, 바퀴살을 비추었다. 그는 자전거를 뒤집어서 한 손으로 페달을 천천히 돌리면서 기름 깡통의 노즐을 체인에 가져다 댔다. 기름을 칠하면서 돌아가는 체인을 보고 있으니 체인이 사슬 톱니에 완벽하게 맞는 것이, 톱니의 이가 체인에 딱 맞게 만들어진 것이 놀라웠다. 어딘가에서 어떤 남자가 자기 무게를 이용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남자는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계속 노력했고 결국 이루어냈다. 자전거에 기름을 바르자 예전에 총을 손질할 때 느꼈던 즐거움이 피어올랐다. 총신을 따라 천을 밀어 넣는 느낌, 금속의 둔탁한 번쩍임, 탄실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총알. 모든 것이 다른 무언가를 위해 만들어졌고, 그 존재 덕분에 매끄럽게 굴러갔다. - P179

그는 반지와 열쇠를 확인한 다음 페달에 발을 올리고 출발했다. 곧 그는 힘들게 페달을 밟아 언덕을 올라가면서 이제 빈둥거리며 여자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던 시절이 끝나고 있음을 인식했다. 싸늘한 느낌이 치솟았 다. 그에게는 새로운 느낌이었고, 새로운 것은 뭐든 그러하듯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 P182

마거릿 플러스크는 모자도, 고무장화도, 남자도 없었다. 긴 갈색 머리가 등 뒤로 해초처럼 느슨하게 내려왔다. 그녀는 딱 맞는 커다란 양가죽 외투를 입었고, 인간 세상을 내다볼 때는 많은 것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여자처럼 엄격한 시선이었다. 마거릿은 더나고어로 이사 왔을 때 마흔 살도 채 안 되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났다. 아이를 낳을 능력은 벌써 몇 년 전에 사라졌는데, 그녀는 항상 퀴큰 나무 숲의 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188

그녀는 불을 꺼뜨릴 만큼 오랫동안 집을 비우지도, 잠을 자지도 않았다. 사실 그녀는 별이 아직 떠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떨어지는 별을 보면 만족스러웠다. 마거릿은 자연의 힘을 믿었을지 몰라도 불운을 불러온다는 행동은 열심히 피했다. 그녀는 불운을 이미 겪었으므로 이제 월요일에 절대 재를 버리지 않았고, 일꾼을 지나칠 때는 반드시 그의 일을 축복했다. 난로에 소금을 뿌리고, 침실 벽에 성녀 브리지다의 십자가를 걸고, 달의 변화를 주시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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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아,
이 도시에서 작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하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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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울에 도착하자 디건은 평소처럼 천국으로 연기를 뿜는 자기 집을 보며 반가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천국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디건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 세상너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안다. 신은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땅을 다른 남자로부터 안전하게 떼어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디건은 항상 미사에 참석한다. 그는 이웃의 평판이 어떤 힘을 갖는지 알기 때문에 일요일 미사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을이다. 마당에서 갈색 오크 나무 잎이 경련하듯 바스락거린다. 녹초가 된 디건은 처음 눈에 띈 아이에게 개를 준다. 우연히도 그 아이가 바로 막내이고, 우연히도 그날이 딸의 생일이다. - P94

그렇게 해서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는 딸은 리트리버를 끌어안으며 디건이 어쨌든 딸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같이 받아들인다. 순진하면서도 직감이 뛰어난 꾀 많은 딸이 노란 원피스를 입고 서서 디건에게 생일 선물을 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 디건은 왠지 가슴이 아프려고 한다. 어쨌거나 딸아이도 사람이다. - P95

저지는 새로운 침대에서 몸을 굴려 등을 대고 누워서 식탁 밑 서랍장을 바라본다. 이 집은 좀 다르지만 디건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개를 팔 것이다. 여자 쪽은 이해가 된다.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암컷일 뿐이다. 제일 큰 애는 혼자 조용히 지낸다. 가운데 아이한테서는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냄새가 난다. 돼지 풀에 가까운, 동물보다 식물에 가까운 냄새다. 뭔가를 묻으려고 땅을 파면 나오는 뿌리처럼 말이다. 낯선 곳에서 저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힘을 다해 잠과 싸우지만 부엌의 어둠과 난로의 열기는 지금까지 알던 그 어떤 안락함과도 다르고, 깨어 있으려는 의지가 곧 흔들린다. 저지는 자면서 두 번째 젖꼭지에서 젖을 찾는 꿈을 다시 꾼다. 저지의 어미는 티나헬리 쇼에서 우승한 리트리버였다. 어미는 저지를 깨끗이 핥아주고, 개울을 건네주고, 저지가 자기 새끼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 P99

다음 날 아침, 자는 시간이 불규칙한 모자란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난다. 저지는 잠에서 깨 기지개를 켜고 아이를 따라 헛간으로 간다. 둘은 마른 장작을 같이 나르고, 아이는 저지가 기대하는 것을 알고 불을 피우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가 어제 타고 남은 재에 장작을 넣고 후후 분다. 재 때문에 둘의 얼굴이 잿빛이 될 때까지 분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여자애는 오빠를 보고 비웃지 않는다. 그저 무릎을 꿇고 선생님 같은 목소리로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가르쳐줄 뿐이다. 여자애는 남은 일요일 신문을 구기고 마른 장작을 쌓은 다음 성냥을 켠다. 남자애가 그 모습을 보며 흥미를 느낀다. 기묘한 파란색 불꽃이 점점 커지면서 변하더니 어느 순간 불이 된다. 남자애는 그 과정의 무언가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감탄한다. 아이는 감탄하는 재주가 있다. 다른 사람은 일상적인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흔한 것들에서 크나큰 중요성을 본다. - P99

그녀는 배신자가 된 기분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녀는 아침이면 종종 배신자가 된 기분이 든다. 남편과 애들이 빨리 나가면 좋겠다. 그녀는 항상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고독을 갈망한다. - P101

마사는 뜨거운 팬 속에서 달걀이 하얗게 단단해지는 것을 본다. 그녀는 절대 달걀을 먹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사는 양의 간이나 콩팥이 먹고 싶다. 그녀는 항상 그런 음식을 좋아했지만 디건은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디건 가족은 항상 제일 좋은 것만 먹었고, 그는 아내가 정육점에서 간을 주문하는 모습을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마사는 어느 화요일에 앞치마를 두른 채로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정육점에 가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 오는 남자, 이웃의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마도 더블린 출신의 남자와 말이다.
팬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자 마사가 밖으로 나가서 최대한 큰 소리로 외친다.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절망이 저 아래 아하울의 계곡까지 전해지고, 계곡이 그녀의 말을 돌려보낸다. - P102

저지는 자기가 말을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저지가 그녀를 핥는다. 손가락에 기름과 버터가 묻어 있다. 그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냄새는 남편의 냄새와 다르지 않다. 저지가 손을 깨끗하게 핥자 마사는 개를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 마음은 어제의 것이다. 이제 그것 역시 그녀가 절대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P103

잠에서 깬 그가 창가로 가서 오크 나무를 내다보니 늘 그렇듯 어둠 속에 서 있다. 디건은 수염을 긁으며 꿈을 되새긴다. 이제 꿈을 꾸는 것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이 되었다.
아내를 보니 파리한 가슴이 얇은 면 잠옷에 짓눌린 채 깊이 잠들었다. 그는 마사를 깨워서 당장 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가끔 그는 그녀를 멀리 데리고 가서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 P107

"아깝게." 디건이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젓는다.
"샐리랑 펀을 먹어야 할 정도로 쪼들리는 건 아니잖아. 당신이 파내서 먹든가. 소스는 내가 만들게."
"결혼하고 지금까지 소스 같은 거 만든 적 없잖아."
"그거 알아, 빅터 디건? 당신도 만든 적 없어." - P111

잠이 덜 깬 마사는 "내가 당신을 왜 떠나겠어?"라고 말하고 돌아눕는다.
디건이 몸을 쭉 편다. 정말 이상한 말이다. 그는 아내가 자기를 떠나리라 생각한 적도 없고, 아내가 그런 마음을 품었으리라 생각한 적도 없다. 오늘 밤은 집 자체가 이상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사가 심은 장미가 벽을 타고 올라 바람이 불면 창문을 두드린다. 계단에서 물 같은 녹색 그림자가 떨린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술을 한 잔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언젠가는 다 끝난다. 토지 문서를 돌려받으면 철제 상자를 사서 오크 나무 밑에 묻을 생각이다. 아하울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면 그의 미래는 풍족할 것이다. 그의 아이들을 낳아준 마사는 때로 B&B에서 밤을 보내고 새 옷을 사면서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두 사람은 아일랜드 서부를 여행할 것이고, 그녀는 아침으로 간과 양파를 먹으리라. 그들은 다시 따뜻한 해변을 걸을테고 디건은 발밑의 모래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P112

인생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둘째 아들은 실망스러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연다. 하늘은 맑고 달은 계속 모습을 바꾼다.
올해의 호랑가시나무는 베리 때문에 빨갛다. 그는 힘든 한 해를 점치며 커튼을 다시 닫는다. 그릇장에 놓인 딸의 새 연습장 표지에 이름이 깔끔하게 적혀 있다. 빅토리아 디건. 딸아이의 이름을 보면 뿌듯하다. 자기 이름과도 아주 비슷하다.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난 당신을 떠나지 않아 라던 마사의 말을 생각한다. - P114

1월이 되자 더블린의 가게들이 할인 판매를 한다며 광고한다. 마사는 버스를 타고 오코넬 스트리트로 가지만 가게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그녀는 클러리스 백화점을 지나 리피강을 건너서 결국 돌리어 스트리트의 영화관에 가서 사탕을 먹고 스크린에 미국으로 떠난 아일랜드 소녀의 비극이 흘러나오는 동안 엉엉 운다. 마사는 막대 사탕을 사서 첫째를 데리고 돌아 오고, 떠나겠다는 환상에서 깨어난다. 어디로 갈까? 돈은 어떻게 벌까? 그녀는 "아는 악마가 낫다"라는 표현을 기억해 내고 변덕을 부린다. 디건은 그녀가 갱년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가 상당히 두려워졌고, 다정함을 느끼고 싶어서 종종 무릎에 딸을 앉힌다. - P115

디건은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후미등을 바라보면서 노란 원피스를 입은 딸이 고맙다고 말하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자기 무릎에 앉은 딸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는 상관없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혼잣 말을 한다. 디건이 집으로 들어가려고 돌아서는데 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잠옷 차림의 마사가 침실 창가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손을 들자 디건이 깜짝 놀라 같이 손을 든다. 어쩌면 그녀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개가 없어져서 좋은지도 모른다. 그가 거기 서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내의 손이 주먹으로 바뀌고 주먹이 흔들린다. 그렇다. 모든 것이 밝혀진다. - P118

여자애가 밖으로 달려 나가 개의 이름을 부른다. 숨을 만한 장소를 전부 뒤진다. 저지가 뼈다귀를 묻는 자리, 건초 헛간의 굴, 꿩의 잠자리가 있는 개암나무 뒤 덤불. 아이는 계속 찾아다니지만 결국 저지가 가버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지고, 그에 따라 마음도 바뀐다. 어차피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이는 떠나겠다고 마음먹지만 학교도 가지 못한다. 아이는 겨우 참새 모이만큼만 먹고, 일주일 뒤부터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개의 이름을 외치고 다닌다. - P119

"저지! 저지!"라는 소리가 교구 전체에서 들린다."저지!" 디건은 아이가 살짝 정신이 나갔음을 알지만 극복할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하울의 다른 모든 것은 거의 변함이 없다. - P119

마사는 그날 아침 숲에서 저지에게 돌을 던지는 자기 모습을 본다. 저지는 꼬리를 다리 사이로 숨기고 도망친다. 저지가 뒤를 돌아보자 마사는 미안해지지만, 그녀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토스트에 치즈를 올려 굽지만 딸은 먹으려 하지 않는다. 마사가 딸의 침대에 앉아서 다른 개를 데려오자고, 딸의 것이 될 작은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는 개를 데려오자고 말하며 달랜다.
"신문을 봐봐. 실레일리 외곽에서 한 배에서 난 강아지들을 판대. 짐 멀린스의 강아지야. 네가 사랑에 빠질 만한–"
"엄마가 사랑에 대해서 뭘 알아요?"
이 말이 그녀의 가슴을 때린다. "나도 사랑을 알아." 마사가 우긴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엄마가 신경 쓰는 건 돈밖에 없잖아요." - P120

마사는 디건이 가진 제일 좋은 접시에 타르트와 케이크를 잔뜩 담아서 나눠 준다. 디건은 그녀가 연기 중임을 깨닫는다.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 매일 이렇게 먹진 않는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까? 소들이 울타리 대문으로 몰려와서 들여보내 달라며 큰 소리로 울지만 디건은 움직일 수가 없다. 몸속의 모든 것이 그에게 일어나라고 말하지만 호기심이 상식을 이긴다. 그가 다리를 꼬다가 저지의 낡은 침대에 앉아서 주의를 기울이던 둘째를 실수로 걷어찬다.
"미안." 디건이 말한다.
그 목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기억해 내고 고개를 돌린다. - P123

"세상에, 저렇게 이야기를 잘 푸는 사람은 없다니까요."
"조금만 조르면 돼요."
"아, 아니에요." 마사가 잔에 남은 술을 삼킨다. 오늘 밤 그녀는 술이 필요하다. 마사의 어머니는 자기 아버지 쪽에 집시의 피가 섞여 있다고, 집시의 피 때문에 길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늘 말했다. 그녀도 몇 번인가 집시로 오해받은 적이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녀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 P125

마사가 그들이 앉아 있는 부엌에 신경을 집중시킨다. 그녀는 가끔 이런 무서운 면이 있었다. 그녀가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집중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냄새를 찾아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그녀는 장미로 정한다.
"음,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네요."
디건의 아내가 머리카락을 넘기고 입술을 축인다.
"이제 시작이군!" 데이비스가 손을 문지른다.
마사는 좌중이 조용해질 때까지 다시 기다린다. 말이 어떻게 나올지 그녀도 전혀 모르지만 이야기는 거기에 있다. 그녀가 할 일은 그것을 그러모아 적당한 말을 찾는 것뿐이다. - P125

음, 이 여자, 모나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어요. 그녀는 이 남자와 결혼해서 그의 농장에 살러 갔죠. 남자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대저택일 줄 알았는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낡은 집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축축하지 않다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놀란은 소도 있고 착유장도 있었지만 가구는 나무좀투성이였고 굴뚝에는 까마귀가 둥지를 틀고 있었어요. 모나는 집을 치우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틀니 두 쌍과 숟가락이 같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포기했어요. 결혼식 날 밤에는 매트리스에서 대죄처럼 튀어나온 스프링이 느껴졌어요. 어떤 날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울음을 참는 것밖에 없었죠.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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