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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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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그날의 역사로부터 아직 한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았다.  매년 “5.18행사때 이 해는 518 몇 주년입니다.”라고 적힌 플랭카드가 도심에 걸렸다. 나는 해마다 달라지는 숫자를 지나쳤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걸 왜 잊었을까. 나의 세대는 그 때의 상처가 아직 아물기 전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차츰 해결되어야 한다. 나는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이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책 읽는것을 미뤘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그때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남의 일이 되어버린 일에 냉정하다 느꼈다. 그런 나를 보니 이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일을 만든 사람은, 이 일이 직접적으로 피부에 닿지 않는 일이라 손쉽게 결정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권력이 그 사람을 미치게 하였던가. 인간의 본성 안에 폭력이 잠재되어 있어서, 어디든 분출할 구멍을 기다리고 있던가…


“맨 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채 같은 것이 되었어.”

소년이 온다 (검은 숨 48p)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소년이 온다. (검은 숨 52p)


5.18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삼일이 걸렸다. 끝까지 읽는 데 몇 번을 쉬면서 읽었다. 띄엄 띄엄 읽었기 때문에 한 호흡에 읽은 것보다 집중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군데군데 울었다. 이 일을 몸으로 겪은 사람은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헀을 지도 모른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 (어린새 45p)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비극은 없다. 비극은 난데없이 일어났다.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기꺼이 맞서서 죽음을 선택헀을지, 아니면 살아남은 자에 속했을지 가늠하지 못한다.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물며 내가 학살자로 거기 있었다면, 내 기억을 지우고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었다면, 떠올려야 할 기억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함께 묻혀 있다면, 그 시간이 나를 가리키는데도 나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을까.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쉬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소년이 온다 (밤의 눈동자 167p)


내가 모든 일에 연민을 느끼며 살았더라면 삶을 하루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매일같이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비극들이 일어난다. 책에서 언급된 용산참사는 내가 아는 참사중 518과 가장 유사하다. 용산에 투입된 사람의 감정과 지키는 사람의 감정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작전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책은 518의 심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가 빚어낸 비극에 인간으로서 그들은 각자 어떻게 대처했는지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집안 사정이 나빠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 앳된 학생들의 스크럼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것이다. 가능한 한 끝까지 그 속에서 버텼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을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 소년이 온다 (일곱개의 뺨 87 p)


개개의 도덕적 의식이 투철해서 행한 것이 아니다. 폭력에 저항하는 집단 도덕의식이 그들을 행동으로 붙들었다. 인간의 고결함과 저열함이 맞섰지만 누구도 승리하지 않은 채 사상자만 내고 끝이 났다. 인간의 유리같은 빛나는 양심을 지키려고 행동한 사람도 행동하지 않은 사람도 나무랄 수 없는 기점에 소설이 서 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과 싸웁니다.”

소년이 온다(쇠와 피 135p)


삶에는 매일 새로운 과제들이 주어진다. 주저앉아 슬픔을 이어나가서는 안된다. 그 시간에 슬픔에서 빠져나와 해야 할 일을 기획해야 한다. 양심을 위해 죽은 유리같은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슬픔에 잠겨 누군가가 삶을 포기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살아라. 라고 말하면서 보내고서, 그때의 억울함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 것이다. 

비극이 오는 것은 누군가의 손에 달린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비극이 오는 걸 방치할 수는 없다. 그들은 비극적인 상황앞에서 양심이라는 강렬한 무언가에 압도되어 비극을 민주화 운동으로 이끌었다. 삶의 연장선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하며 손을 이어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들의 피로 얼룩진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생에 감사하고 또 다른 참사를 막으려 노력하는 걸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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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매번 책을 고를 때마다 고민한다. 그때마다 좀 더 새로운 기법으로 쓴 책, 흥미로운 주제를 찾아다닌다. 책 내용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실패한 적도 있다. 그래도 책을 고르는 일은 그나마 즐거운 편에 속한다. 기발한 책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도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참 고정적이다.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베리의 소설이다. 그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왕자'를 출간한 사람이다. 그의 시각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었다. 그의 다른 소설을 읽고도, 그 같은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일반적인 탐정소설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탐정의 규칙을 깰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으로 대실 헤밋 상과 크로퍼드 환상문학상을 모두 거머쥐었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응축시킨 단편을 써내려간 모파상. 그는 짧은 시기 엄청난 양의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목걸이'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쓴 다른 단편들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내용을 어떻게 썼길래..











 이번 책에서 그는 개의 시선에서 유럽의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하루를 '킹'이라는 소설에 담았다고 했다. 존 버거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연민을 담아 바라보는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소외되고 싶지 않았는데 소외되고 난 이후는, 정말 쓸쓸하고 괴롭다. 그가 그린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은 내 일상과 어떻게 맞물려 갈지 호기심이 일어난다.















내가 읽은 수학소설은 '수학귀신'이 전부다. 한국사람이 수학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미 어디선가 한 번은 쓰인 소재일지라도, 읽어보고 싶다. 그런 소설은 좀체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제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거의 모두 다르다. 달라야 했다. 그렇기에 매번 고를 때마다 상받은 작품이나, 이미 알려진,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먼저 고르게 된다. 이야기의 새로움은 시간이 지나도 언제까지나 새로움이었으면 좋겠지만, 막상 읽으면 기대했던 새로움과 다를 때가 많은 지라.. 독자에게 남은 과제는 새로움이 꿈으로만 남아서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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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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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의 핀천


리뷰를 쓰는 동안 친구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내밀었다. 친구는 ‘엔트로피’단편이 인상적이고 좋았다고 했다. 엔트로피를 읽으면서도 나는 던져진 사유를 해석하기에 바빴는데, 그 단편을 좋다고 느낄 수 있었던 친구의 시각이 궁금했다.


“오바드가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커다란 종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글을 써나갈 때 그녀의 목은 금빛 활처럼 휘어졌다. ‘젊어서 프린스턴 대학에 다닐 때’ 칼리스토는 회색 털이 무성한 그의 가슴에 새를 꼭 껴안고 그녀에게 받아쓰게 했다. ‘칼리스토는 열역학 법칙을 기억하기 위해 연상기억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질 것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는 쉰네살에 기브스의 우주 개념에 직면하자 대학생 때 유행어처럼 했던 말이 결국 예언이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막대기처럼 생긴 미로 같은 방정식은 궁극에 가서 나타날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을 그에게 미리 알려준 것이었다. 오직 이론상의 엔진이나 씨스템만이 백 퍼센트의 효율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립된 시트메의 엔트로피는 항상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한 클라우지우스의 정리(定理)에 관해서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브스와 볼츠만이 통계역학의 방법을 이 원리에 적용하기 전까지는 그것의 무시무시한 의미가 그에게 전혀 분명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는 고립된 씨스템이 은하수든 엔진이든 인간이든 문화든 그 무엇이든 간에, 좀더 확률이 높은 상태를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는 환원주의의 오류가 안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무기력한 숙명론의 우아한 퇘폐에 빠지지 않을 만큼 강하기를 바랐다.”

<엔트로피>117-118p


그는 핀천 작품의 주인공들은 전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울증이나 불감증같은 증세를 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둘러 싼 환경에는 항상 죽음과 일회적인 쾌락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 거기서 인간 삶의 유한함을 깨닫든지 너무 늦었다는 것을 후회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엔트로피> 저 부분을 시작하는 문장 “오바드가 담배연기 자욱한 방에서 커다란 종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글을 써나갈 때 그녀의 목은 금빛 활처럼 휘어졌다.” 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복잡한 사유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도 탁월했지만, 그것을 이미지로서 드러내는 것도 잘하는 듯 했다. 


작가서문을 읽었다. 핀천이 직접 자신의 초기 작품을 비평하고 있었다. 겸손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개구리 올챙이적 무시하지 않고 펴낸 책이었다. 내 입장에서 그나마 읽을 만한 단편은 <은밀한 통합>뿐이었다. 다른 단편은 조각조각 파편처럼 흩어진 재료들이 아직 소설이 되지 못하고 지면 위에 남아있을 뿐이라 느꼈다. 그래도 그의 초기 단편은 좋은 사유의 가능성이 돋보여서, 그가 쓴 장편을 보고 싶었다.

그가 작가 서문에서 말한 그대로가 모두 단편안에 드러난다. 그는 그의 단편들에 드러난 오류가 부끄러우나, 초보적 수준의 소설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문제점과 글을 쓴지 얼마 안된 작가들이 피했으면 하는 사례들에 관한 주의를 담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 단편들이 가끔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우며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그 모든 결함이 있는 그대로 여전히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이라는 말로 그 말을 대변한다.

인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대화는 대화가 아니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데, 그 행동이 와 닿지 않았다. 그들이 그냥 행동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소설 한편이 끝난다. 게다가 갑자기 내뱉는 깊은 사유는 사유 자체를 나타내기 위해 인물을 꼭두각시로 세워놨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전혀 그렇지 않아. 내 말은 폐쇄회로 같다는 거야. 모든 사람의 주파수는 다 똑같아. 그래서 잠시 뒤 나머지 스펙트럼에 대해선느 잊게 되고 이것만이 중요하고 실재하는 유일한 주파수라고 믿기 시작해. 반면에 바깥에서는 대지의 위아래로 기가 막힌 색깔과 엑스선, 자외선들이 펼쳐지고 있어.”

“너는 로치도 폐쇄회로라고 생각하는 거야?”

“맥니스 대학이 세계가 아니듯, 로치도 스펙트럼은 아니야.”

<이슬비>61p


인종차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쓴 문구가 인종차별적이었다. (그러나 더건한테는 근사한 점들이 많았다. 가령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는 백인과 흑인간의 백 퍼센트 결혼을 위해 매진하는 공산주의자 조직이라는 것. 이슬비 43p) <이슬비>에서 여자가 옷을 벗더니 뜬금없이 삽입된 개구리들은 섹스장면을 나타내는 것인가?


“사방의 개구리들은 갈수록 야만적인 합창을 주문 외우듯 읊조렸다. 간헐적이기는 했지만, 그 합창은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작은 손가락들의 뒤얽힘, 큰 맥주잔들의 부딪침, (…) 그녀는 완전히 유린당하지 않은 파시파이처럼 보호감정 같은 것을 유발했다. 마침내 마음이 진정된 두 사람은 바보같은 개구리 울음소리에 계속 시달린 끝에 서로 떨어져 누웠다.” <이슬비>72-73p


 그 이후 분위기로 봐서는, 섹스장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가 역시 그 글들을 보고서는 상황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유가 너무 진지하고 중요해서, 단편들의 단점들에도 읽어볼만한 글이 되었다. 중요한 사유들이 작품 곧곧에 등장한다. 그가 발견한 사유들이 단점을 보완해 발전되었기 때문에 이후 그의 장편들이 대작이 된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그 자신과 진정한 거짓말의 진실은 근처의 기이한 곳으로 이미 오래전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진실의 범위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관찰하는 사람이 관찰행위 자체로 인해 작업, 데이터, 확률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처럼, 관습을 완전히 위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사물에 대한 관점을 엉망으로 만들 수는 있다.”

<로우랜드> 95p


반면 <은밀한 통합>에서는 이미지들이 연결되고 인물들이 살아있었다. 다른작품들에 비해 문장이 연결되어 캐릭터가 하나로 그려졌다. 인종차별이 심한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흑인 친구 ‘칼’과 놀러다니는 아이들의 대비가 이루어졌다. 그 모임의 대장급으로 나오는 그로버 스노드는 실재하는 인물처럼 생생했다. 


“그는 결함이 있는 천재소년이었는데, 가령 그가 만든 발명품들이 늘 성공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숙제 하나당 십 쎈트를 받고서 모든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해주는 부정한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매우 자주 드러냈다. 성적이 갑자기 90점, 100점으로 오른 모든 아이들 뒤에 그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똑똑함을 보여줄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는 여지없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은밀한 통합> 192-193p


그로버는 이제 막 성장하는 아이로 등장한다. 그는 이제 세상에 눈을 뜨고 어른들을 비웃는 단계에 있다. 그로버를 중심으로 모인 아이들은 ‘천재소년’과 함께 그들을 기만하는 어른들의 나쁜 행동들(인종차별등 그들이 나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을 비웃고 상상의 놀이친구 흑인 ‘칼’과 돌아다니며 논다. 그들의 놀이는  공장이 가동되고 끝난다. 놀이가 끝나고 그들도 어른들과 같은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런 다음 밤의 빗속으로, 마침내 각자의 집으로, 뜨거운 샤워, 마른 수건, 잠자기 전의 텔레비전, 잘자라는 키스, 그리고 결코 다시는 전적으로 안전할 수 없을 꿈속으로 까불거리며 걸어갔다.”

<은밀한 통합> 260p



나쁜 말에는 늘 허점이 드러난다. 이런 수준밖에 안되는 리뷰를 쓰는 것이 부끄럽다. 그의 장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리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신간평가단 분들의 리뷰를 읽어봐도 내용안에서 무언가를 건지신 분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 견식적 한계때문에 이 작가의 장점을 잘 발견하여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장편을 읽고 핀천의 팬이된 이후라면 내게도 읽을 만한 작품이 될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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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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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를 산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충성심은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충성하게 돼 있다면 계략이다

(…)

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네 나라이고

네 집을 짓는 곳이 네 조국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454p ‘난 우’의 시 고국 중 일부


이야기를 하나로 모은 시란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난 우’가 작품 내에서 중국에게 느끼는 분노를 드러내고,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난 우’는 결국 이민에 성공했다. 나는 이 시가 ‘조국’의 의미를 다시금 정의한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태어난 나라보다, 내가 머물 수 있는 곳, 도움을 받는 곳이 국가이다. 국가는 국민의 공공 안녕을 책임져야 한다. 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중요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에 의하면 공공 안녕을 책임지지 못하는, 집을 짓지 못하고, 내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곳은 내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이런 소설을 쓴 ‘하 진’이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국은 예로부터 중화사상이 나라 전체를 지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난 우’는 중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현재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무엇이 더 옳다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철저히 개인의 선택으로 남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이민자로서의 자신과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소설 전체에 ‘난 우’를 제외한 사람들이 쉽게 국수주의, 애국주의에 빠지는데, 그는 그것을 뒤집는 시를 쓴다. 소설에서 묘사된 중국은, ‘난 우’의 아버지에게는 좋은 국가이나, 국수주의, 관료의 부패, 자본주의의 무분별 수용으로 부패해 가고 있는 흔적이 드러나 있다. 

‘난 우’는 살던 땅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새로운 토대에서 그 나라의 방식에 맞추어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돈 앞에서 평등한 미국에 온 그는 돈이 없었다. 몇년간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와 열심히 일한다.  이민자인 ‘난 우’가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미국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있도록 설명한 장면이 있다. 스모그때문에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관료에게 뇌물을 바치지 못하면 무엇을 시도할 수 없다. 국가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 쫓겨나거나 잡혀 들어간다. 이민간 사람들은 중국에 환상을 덧씌웠는데, 중국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부러워한다. 어느 곳도 이상적인 공간은 아닌 셈이다. 이상을 쫓지 않고 현실의 삶을 살아야 했다.


책은 이민을 간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여 이민을 가지만 이민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었다. 이상적인 자유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떠나온 곳의 부조리함 보다는 다행히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돈이 최고인 미국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약간 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자유가 완성된 까닭은 이민을 와서도 아니고, 미국이 중국보다 더 좋은 나라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가 시를 쓰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10년 동안이나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러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추구할 수만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에머슨의 “별에 수레를 매라”는 격언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임에 틀림없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길을 가야 했다.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야 했다. 성공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이민자이면서 남의 나라 알파벳을 배우는 자신의 왜소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삶을 허비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각오를 하고 시를 쓰는 데 전념할 정도로 용감해져야 했다.” 435-436p 

 

시를 쓴다는 것은 그의 존재 이유중 하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쓰려고 하는 ‘난 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난 우’가 시를 쓰지 못할 여러가지 이유가 나오지만, 결국 ‘난 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떤 핑계도 없이 그냥 쓰는 일이었다. 그는 앞으로 걸음을 걷고, 후퇴하고, 다시 앞으로 걷는 것을 매번 시도한다.  ‘난 우’는 단번에 성장하는 걸 꿈꾸는 것도 공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토대 자체를 스스로 없애는 사람이다. ‘난 우’의 시는 중국으로부터 이방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상상 안에 있을 때는 유일한 고정된 실체로서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지만, 그는 모든 것의 실체를 확인하는 여행을 거치고 비로소 현재를 살게 된다. 지금을 살기 때문에 고정된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부유하는 이방인이 된다. 


“역사가 스스로 해결할거야.”

455p ‘안쓰러움’ 시 일부


그가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안쓰러움' 이라는 시는 그가 자기위안 하는 타인을 보며 쓴 시다. 그는 역사는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하루하루를 삶을 버텨나가는 것. 흐름을 맹목적으로 쫓지 않고 꿈을 꾸며 산다는 것. 그것이 역사를 만들고, 시는 거기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특별한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그가 삶을 열심히 살았기에 정치적인 인물이 되었다. '난 우'가 살아낸 삶이, 존경스럽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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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참 다양한 무력감을 준다. 아무 일도 할 수 없기에 오히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일도 있다. 의도적으로 슬퍼하는 것은 진짜 슬픔일 수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슬픔에만 과도하게 슬퍼할 수 있는 것이 인간성 결핍때문인가. 그런 고민들과 무관하게 5월, 읽고 싶은 책은 가장 많이 출간되었다. 


필립로스가 유명해진 책이다. 기대가 된다. 

그는 애브리맨의 작가이다. 노인의 죽음을 다룬 책인데,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추천사는 많이 들었다.













로맹가리의 작품은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 

나는 그가 쓴 가면의 생을 읽고 환각에 빠진 기억이 난다. 

좀 더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대가의 숨을 느꼈었다.

그 이후 작가의 대표작 격인 책들을 사들였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그의 속이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지막 자서전격이라는 이 책을 

집필하였을까.










5월 광주. 그 내면의 서사를 그리려고 다시 도전한 사람.

그는 그날의 속살을 어디까지 내보일 수 있을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역사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

5월 광주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고통의 시작인데,

긴 집필기간을 마치고 책이 나왔다. 












로베르토 볼라뇨 소설 읽고 싶다.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법을 보고 싶다. 

그가 대가가 된 이유를 들어보고 싶다. 

2666을 쓴 작가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교되는 이유를 발견하고 싶다.










레이먼드카버의 유명 소설이다. 

김연수작가의 번역본이라니 읽고 싶었다. 

평생 삶에 쫓겨서 산 사람. 

왜 작가들은 그의 단편소설을 좋아하였을까.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가는데, 

이 책은 내 읽어야 할 책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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