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줄만 알았던 책 재고 있다 하길래 신나서 주문했는데 어딘가 창고에서 오래 묵은 책이 왔네요 당연한 걸 제가 간과한 듯. 이거 몇 쇄인건가 찾아봤지만 아직 못 찾았어요 책이 있음에 감사하고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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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근대와 근대적 인간은 주지하다시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기호를 달고 탄생하였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이 인간과 지구로 옮겨졌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인간중심주의는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작위성의 이데올로기를 동반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서술할 수 없는 신을 배제하면 모든 관심이 우리가 알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집중된다. 이런 관점에서 근데의 이데올로기는 '가능한 것은 만들고, 가능하지 않은 것은 가능하게 만들어라.'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적 믿음을 가지고 근대인은 자신과 이 지구를 하나의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 전체주의의 핵심적인 체계는 전체주의적 정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것이라고 진단한다."p31-32


인간의 삶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인간조건을 파괴하는 기술의 근본악을 이해할 수 있는가? p34


인간이 실존하기 위해서는 첫째, 하나의 생명으로서 살아 있어야 하며, 둘째,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자연의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난 영속적인 자신의 세계가 있어야 하며, 셋째, 말과 행위를 통해 이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 생명, 세계성, 다원성(신판:다수성)을 인간 실존의 세 조건이라고 명명한다... 탄생성과 사멸성은 이들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선험적 성격을 띠고 있다.p35-36


전체주의는 그것이 정치적이든 기술적이든 간에 인간의 탄생성과 사멸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영구화하고자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전체주의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삼기 떄문에 궁극적으로 수단만을 영구화할 뿐이다. 목적이 없으면 시작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전체주의는 인간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세계창조라는 새로운 시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p36


정신은 본래 신에 의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을 추구하는 자기애는 이미 올바른 이웃사랑과 동시에 신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 한편으로는 인간이 세상을 초월해 있는 신을 추구할 때에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정신을 추구할 때에만 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거부하는 어떤 완전성의 추구도 결국은 탄생성의 조건을 스스로 파괴하기에, 한나 아렌트의 철학은 이 유한한 세계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행위양식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p37


노동이 인간의 유일한 활동이 아니라 다른 여러 활동양식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탄생성의 회복은 인간조건에 대한 성찰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나치의 전체주의를 겪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우리에게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줄 '공통의 공포'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유하지 않음"이라고 단언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가를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적 활동을 제외하고 신체적 활동(Vita activa)을 '노동', '작업', '행위'로 범주화하여 해명함으로써 일종의 정치철학적 인간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한나아렌트에 의하면 전체주의는 근본적으로 정신적 차원에서의 '사유하지 않음'과 실천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행위능력의 상실'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진단한다.p38-39



언제부터 할 수 없다는 느낌을 존중하지 않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내면의 나와 화해하지 못한 채로 결국 스스로 내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봄이 가능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할 수 없다는 느낌을 존중하지 않기로 하고 나를 최대한 갈아넣었다. 노력의 결과물을 얻지 못한 채로 건강만 망친 채로 살던 와중에, 돌봄을 행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에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사람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그는 마땅한 직업도 가지지 못할 나이부터 돌봄을 시작하여, 늘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빚을 지다가, 그의 돌봄을 받던 사람의 허락 하에 생명유지장치를 껐고, 그떄문에 살인죄로 재판장에 섰다. 그 기사를 보고, 그것이 내 미래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내내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설령 그게 내 미래가 되지 않더라도, 그 일을 겪어야만 했던 그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했나. 그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죽였겠는지. 그는 그 순간에 이미 몇 년을 미친 상태로 버텼는데. 그리고 사법부가 그런 판단을 내린 것도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누구도 그를 그 순간까지 도울 수 없었는지. 왜 우리에겐 돌봄을 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왜 돌봄이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만 한 것인지. 
















기후정의라는 책을 쓴 저자가 쓴 서문이 어렴풋이 기억났고, 여기 적기 위해서 찾아보았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자신은 어떠한 희망도 가지지 않는다고, 애를 써야겠지만, 자신할 수 없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강연을 하고 나서, 자신의 강연을 듣던 청소년의 눈을 보게 되었다고. 그제서야, 아, 자신이 잘못하고 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겁을 줘서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다 생각했던지, '기후우울증'을 배설하고 있었던 것인지. 무슨 권리로 그들 앞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일지 싶었고, 그 이후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합류하여 사회운동을 했다고 했다. 나는 요즘에야 이 말이 무슨 뜻이었는 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기후우울증을 배설하지만, 이것이 널리 퍼지기를 바라지는 못했다. 같이 우울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아예 기후위기가 아무 일도 아니라 여기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이 소중한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그냥 내가 너무 우울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기에 적절하지는 않았다는 걸 나도 알아서, 공감했던 것 같다. 

나는 내내 기후우울증을 앓고 있던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매일 기후위기를 느끼기 이전에는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영화를 본 이후에는 동물을 먹는다는 사실에 우울했고, 안티 페미니즘 사태와, N번방 사태를 맞닥뜨린 이후에는 그에 관한 우울을 앓고 있었다. 내내 우울할 이유가 있었던 것은,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 우울을 끌어들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 사건들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나는 내 우울을 감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내 기후우울증을 전시했던 사람이면서, 동시에 무엇을 해야할 지 갈피를 못잡던 사람이었다. 

내가 몇년 전에 살던 곳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쓰레기를 하루만에 배출했는데, 대부분이 배달음식쓰레기였다. 아무도 그릇을 씻어서 내놓지 않고, 음식물과 분리하지 않고 배출했으며, 매일 플라스틱 컵을 새롭게 버렸다. 분리수거만으로 해결될 일인가 싶을 정도로 하루만에 몇봉투의 쓰레기가 쏟아졌다. 그곳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나는 매립장이 곧 찬다는 뉴스를 보았고, 배달음식 쓰레기를 수거하다 과로하는 청소노동자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뉴스를 보았다. 또 생분해 컵이 친환경이려면 이것을 6개월간 특정 온도를 유지하며 묻을 장소가 필요한데, 그런 처리를 위한 시설이 또 필요한데 국내에는 없으며, 그냥 매장시에는 플라스틱과 같이 썩지 않아서, 결론적으로 순환할 겨를도 없다는 뉴스도 보았다. 나는 쓰레기를 마구 양산하는 행동이 미웠다. 왜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에, 어떤 생물들은 먹이가 아닌 것을 먹고 죽어야 하는 건가 싶어졌다.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내가 느끼는 심각성을 같이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부담스럽다는 말과 함꼐 나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쓰레기를 계속 많이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고 언제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우리의 문제인데. 왜 나만 노력하는 건지. 내가 이들을 질투하여, 이렇게 편하게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것을 질투하여 이런 마음을 가지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 무렵부터 누군가와 이와 관해 대화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신뢰하는 사람이 점차 줄었다. 사람을 믿지 않았다. 편리함 앞에서는 공동의 책임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괴로웠다. 
그 무렵 하던 일을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았는데 몸이 버텨주지 않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어차피 우울할 거, 무엇이든 해보자 싶어서, 체제전환과 기후정의라는 이름을 달고 하는 강연을, 반쯤은 냉소하면서 들으러 갔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간 것이었고. 나는 거기서 강의 중반부부터 눈물을 쏟았다. 지금와서 기억나는 건 많지 않다. 광물을 캐기 위하여 파헤쳐진 땅. 거기 남은 거대한 구멍. 돈을 벌기 위해서 하나둘씩,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던 도덕성을 철회하고, 그 이후로 자연이 얼마나 많이 파괴된 채로 방치되었는지.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어떻게 수탈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수탈당하고 있는지.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홍수가 어떻게 식민지였던 국가들에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지. 그리고 이윽고, 에너지 및 식량을 통해서 사람을 종속시켜 돈을 벌려고, 우리 삶의 필수품까지 수탈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 관하여 들었다. 
이전에도 거대종자회사에서 1년만 생산할 수 있는 종자를 매년 비싸게 판매한다고 농사짓는 분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한국 어딘가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에 해외자본이 투자되었으며, 이윤이 나지 않으면 이 자본을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그렇게 되면, 여기서 나는 이윤 이상으로 빚이 나면, 한국정부가 우리 세금을 또 빚 갚는데 써야 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단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 이 사람은 진짜 체제전환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구나. 깨달았다. 우리의 문제가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강연자에게는 다가가지 않았다. 무엇이든 하려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무서워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토록 절박한 까닭에, 자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다가가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걸까? 이미 행동하는 사람은 나를 비난할까봐 믿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미워했다. 사람 자체가 미운 게 아니고, 행동이 미웠다. 그렇지만 그게 구별되어 표현되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아서,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면서,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4.14 기후정의파업을 설명한다는 사람의 강연을 들으러 간 건 또 울려고 간 건 아니었다. 그저 의무감으로. 함꼐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언제부터 그 운동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를 밀어넣어서, 어떻게든 그들로부터 다른 동력을 얻으려고 했던 것 같다. 꿀벌이 노동하는 시기와 올해 꽃이 피는 시기와 겹치지 않을 수 있어서, 꿀벌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부터였을까. 삼척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화력발전소를 없애야 한다고, 자신의 일터를 없애고, 그들 자신에게도 일자리를 마련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마음으로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간헐적으로 울고 있었지만 울컥 눈물이 터져나왔을 때가 기억난다. 2021년 선진국 국가 17개국을 대상으로 '무엇이 당신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다른 국가들은 대부분 가족인데 한국만 물질적 풍요로 답했다고 했다. 강연자가 이게 한국인이 속물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 하나도 없어서, 물질적 풍요로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어서 그런거라고. 공공재로, 기본재로 있어야 하는 게 전부 사유화되고, 경쟁체제로 내몰렸기 떄문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마스크에 눈물이 흡수되었고, 나를 굳이 보고 뭐라 할 사람이 없었어서, 그냥 울고 있었다. 그리고 강연자는 말했다.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투자자본으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것을 막는게 더 중요하다고. 개인이 발생시킬 수 있는 이산화탄소는 한계가 있지만 거대자본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는 한계가 없다고. 그래서 이 기후위기 시대에, 금융기업,포스코,두산 등 대기업들이 투자한 석탄화력발전소가 새로 지어지고 있지 않느냐고. 이들이 핵발전소, 육식산업, 생명자본주의에 투자할 때,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한 것이라 절대 감축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에게 책임을 묻게 해야 한다고. 이번에 민간에서는 에너지 비용이 상승했는데, 거대 투자기업들은 횡재세도 내지 않고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느냐고. 내내 공기업이 적자라고 말하는 내막에는, 주주배당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신은 아직 희망을 믿는다고. 행동하면 그게 당신의 말이 되고, 설득력이 생긴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화를 내기만 했지, 믿고 기다리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음을 생각했다. 누구든지 속도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여유를 가지지 않았다. 현실을 보고 절망할 때면 먼저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후붕괴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되려고 그들이 노력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중에 100년 유지되고, 메탄은 25년이니, 우리는 지난 세기의 이산화탄소와 우리가 현재 내뿜은 이산화탄소의 총체로 현재를 살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할 행동이 누적되어 미래세대의 대기환경이 결정된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넷제로. 즉 탄소 중립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하는 목표를 마주하고 있다.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멈추지 않을 테니까. 이것은 불가능해보이지만, 사회가 경쟁체제로 가지 않으면, 산업부문의 에너지를 확 줄일 수 있으니 가능할 수 있다고. 그러니,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가능해지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모두 실어서, 반자본 대정부 투쟁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려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어떻게 어그러질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배우고 싶다. 


 지금 당장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건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운 전체주의적 태도였다. 내내 할 수 없다 여긴 걸 스스로에게 강요해왔고, 그걸 마찬가지로 타인을 대할 떄도 그렇게 행동한 거다. 그러니 타인을 대할 떄도 사유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 나도 변하는 존재고, 타인도 변하는 존재니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변할 지는 알 수 없고, 알 수 없기에 나는 긍정적으로 아직은 변화가능하다고 믿고. 그 방향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행동해보고 싶었다. 우리의 작은 행동이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되기를. 우리 자신을 살리기를. 이 믿음에는 근거가 없다. 나는 나를 초월한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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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5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6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0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3-04-13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점심 먹다가 또 눈물 닦네요;;;
우끼 님 페이퍼는 점심 먹다가 저 눈물 닦는 용....?

- 2023-04-13 13:22   좋아요 1 | URL
내 글도 읽다가 울어줄래요?

잠자냥 2023-04-13 14:10   좋아요 1 | URL
미안해 그런 적이 없었어.......
도리어 최근에 쟝 페이퍼에 단 내 댓글 보고 울컥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끼 님이 위로받았다는 그 댓글) ㅋㅋㅋㅋㅋㅋㅋ

- 2023-04-13 14:28   좋아요 2 | URL
자신에게 울컥하는 냥 ㅋㅋㅋㅋ

우끼 2023-04-13 22:2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과 다락방님, 공쟝쟝님 대디님 등등 서재에 계신 분들 덕분에 쓸 수 있던 리뷰입니다 ㅜㅜ ㅋㅋ 사실 저번에 시집 리뷰에 달아주신 댓글 보고 울컥했거든요 .. 감사하기도 하구요. 열려있으려는 노력을 해야하는구나 생각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그래야할 이유들을 찾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어제자 뉴스를 오늘 읽었고 읽기를 미루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층적응도 다 읽지 못했는데…


아래는 기사의 첫 문단이다.

“2040년 이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으려는 인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육지와 해양에서 생물이 감소해 식량 자원은 부족하고 곳곳에서 가뭄과 홍수, 이상 고온과 저온 현상으로 인한 기후 재난이 빈번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과학자와 195개국 정부 관계자가 참여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에 담긴 미래다.”

https://v.daum.net/v/20230320220053656

”1.5도 온난화 상황에서는 10만5000개의 육지 생물 종 가운데 곤충의 6%, 식물의 8%, 척추동물의 4%가 서식 공간의 절반 이상을 잃는다. 해양 생물 종이 본래의 서식지보다 고위도로 16도 가량 이동하며 일대 혼란이 생기고, 해양 생물이 서식지로 삼는 산호초의 70~90%가 백화현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1.5도를 사수하려는 이유는 인류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와 손실을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만약 지구 온도가 평균 2도 오르면, 산호초의 99%가 죽는 멸종 상태에 이를 수 있다. IPCC 6차 보고서는 향후 10년 간 인류의 대응이 젊은 세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지적한다. 1.5도 상승으로 인한 재난에 대비하는 동시에 그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



원전밀집도 1위인 한국은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중이다. 현재 지어진 핵발전소는 활성지진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사용후 핵연료문제는 전 세계 어디도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문제이다. 일본의 기술자는 파이로프로세싱 기술이 현실불가능한데 시도를 지속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아포리아 kbs)
땅에 묻는 것을 실현한 곳도 핀란드 한 곳 뿐이다. 10만년이라는 세월을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고 버틸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지만, 그나마 나은 점은 모든 정보가 공개된다는 점이다.

소형 원전 역시 같은 방사능 물질이 나오므로 대안이 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12년,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리라고 결정했고 올해 시행될 예정이다. 그 방도가 가장 싸기 때문이다. 4월이라는 말이 있고 6월이라는 말도 있는데 … 언제든 간에 방사능 오염수는 약 20년-30년 배출될 분량이라고 한다. 이게 전부인지 앞으로 폐로과정을 거치면서 더 생겨나는지 알 수 없다 … 이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능 물질의 구성요소는 일본정부가 밝힌 바 없다.

https://amp.seoul.co.kr/seoul/20220723500023
후쿠시마 사고 후처리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로봇이 들어가면 반도체 회로가 타버려서 사람이 작업해야만 하는 곳이라 작업자들이 피폭을 감수하고 그곳에 들어간다.

방사능은 노출되는 정도에 비례해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핵발전소(원전)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몸에서는 방사능 물질의 한 종류인 삼중수소가 배출된다. 그렇게 안전하다 광고했고 아직 사고도 나지 않은 곳에서도 방사능 물질은 배출된다. 벌써 약 10년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현재 인근 주민들은 국가를 대상으로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하거나, 갑상선암 발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중이거나, 탈핵을 주장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자는 대를 이어 방사능피해로 고통받고 있고, 체르노빌은 아직 인간에게는 죽음의 땅이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 핵발전소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날이 뜨거워지면, 열을 식히려 바닷물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바닷물도 지구 온도가 오르면서 같이 오를 것이기에, 열을 식힐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위험하다. 또 예기치 않은 홍수로 물에 잠기면 방사능물질이 “관리”될 수 있는가? 후쿠시마 사고도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때문에 전력차단이 되고 원전 몇기가 한꺼번에 폭발한 사고이지 않았나.

이와중에 뉴스에는 한수원이 과징금을 받은 사건이 눈에 보인다. 부실 용접 때문이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핵발전소가 안전하다 광고되며 신규로 건설되는 이유는 돈이 원인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안전이 담보되지 않고도 정부가 자금을 주는게 어떻게 이렇게 쉬울 수 있는건지…??

https://m.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80984.html

이 상황에서 걱정하는 것은,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문제라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안전보다, 인권보다, 돈을 당장 벌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원칙이 더 위에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도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었던지.
결정권자 따로 피해입는 자 따로 있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사안을 숨기지 않고 전부 오픈해야만, 사용후 핵연료 문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도 있다.(아직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사용후핵연료갈등 책을 쓴 저자가 kbs다큐 : 사용후 핵연료 문제: 아포리아에서 이렇게 발언한 것을 들었다..)

아래는 관련 기사들이다. 

"이윤만 쫓는 에너지 체제에 맞서 투쟁하자 _4.14 기후정의파업

흔히 간과되곤 하지만, 에너지 수요 감축과 에너지 소비 효율화는 에너지 전환의 중요한 축이다. 수요 감축과 소비 효율화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공공교통 중심의 교통 시스템 변화, 단열을 강화한 건물·건축 규제 및 리모델링, 산업계의 에너지·자원 소비 축소가 중요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은 에너지 효율성 향상 및 소비 감축으로 2050년까지 요구되는 에너지 관련 배출량 감소의 최대 4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이런 영역의 변화도 지금까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에너지 소비 감축도 요원한 일이라고 전망한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기업은 에너지를 더 많이 판매할수록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교통으로의 시스템 변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건축 규제와 건물의 대규모 개축은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지만 거기서 이윤이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영역에도 인위적인 시장을 조성해서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으로 뒤바꿀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전문가들은 그런 궁리를 하지만, 실제로 작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과 같이 기업과 투자자의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가 지속되는 한 에너지 소비 감축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은 소비 감축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애먼 시민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며 스스로에겐 면죄부를 주고 있다.

우리가 에너지 전환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더 이상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변화의 핵심에는 에너지 생산·소비와 효율화·감축 등 모든 에너지 시스템의 '탈시장화'와 '탈상품화'가 있다. 시급한 전환을 위해서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를 공공성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10929

윤석열 정부,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부담 줄인 ‘탄소중립 기본계획’ 발표

https://v.daum.net/v/20230321092031467


“젊은층 권리 침해”…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낮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행정소송

https://m.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84406.html#cb

“향후 10년 동안 시행된 선택과 행동은 수천년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

1천명이 넘는 과학자가 내놓은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195개국의 650여명 대표단이 만장일치로 이 메시지를 승인한 것은, 무엇보다도 ‘탄소예산’(지구 기온을 특정 온도 이내로 붙잡아두기 위해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844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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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2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문제는 모두 차치하더라도 발전단가가 싸다는 이유로 폐기물의 대안이 없이 계속 발전하는 것은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나머지 비용과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나마 전정부에서 원자력 발전비율을 20% 초반까지 낮추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3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많이 걱정됩니다. ㅠㅠ

우끼 2023-03-21 15:17   좋아요 1 | URL
발전단가에 폐기물 처리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싸다고 생각합니다 ㅠㅠ 그나마 현재 지어진 안전시설도 다른 국가 원전시설에 비해 단가가 싸게 지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핵발전소 인근에 대도시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 말고는 또 없다고 들었는데.. 안그래도 근래 발표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행정소송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stella.K 2023-03-21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우려스럽긴 해요.
특히 김정은이 동해상으로 하도 미사일을 쏴서
동해안이 남아날까 싶어요.
이런 건 국제범죄로 규정하고 엄히 문책을 해야할텐데
강건나 불구경이네요.ㅠ

우끼 2023-03-21 19:17   좋아요 2 | URL
제가 국제정치학적인 배경지식이 부족하여 이 사안에 관하여 뭐라고 제 의견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저는 김정은이 그의 방식대로 정권유지에 실패해도, 이대로 계속 유지해도 딜레마상황에 처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중국이나 미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그게 우리나라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우려스럽고요... 강대국이건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건 핵을 보유하지 않는 게 어떻게 가능할지, 아마 더 오래전부터 고민해오신 분들이 계실 테니 아마 그부분 공부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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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책이 금융자본주의를 마냥 예찬하기만 했으면 이 책에 몰입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돈의 속성에 관하여, 도박에 빠지는 사람의 심리에 관하여, 그걸 허용하는 합법적인 시스템과 정부,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나열된 불법적인 일과 그 경계에 있는 일에 관하여, 어떻게 이렇게 잘 드러낼 수 있는지, 그마저도 옳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휘말려들어가는 사건을 쓰는 힘에 놀랐다. 장편인데 지루한 곳 하나 없이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고 읽었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컴플렉스나, 소망 등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적응하지 못한 본래의 삶에서 느낀 좌절감도, 스스로 한 말을 번복해야 하고 사람들을 실망시켜야 하는 그런 과정들도... 상황을 통제하려 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좌절감도. 그럼에도 계속 그가 바라는 삶을 놓치 못하는 것도, 바라는 삶을 놓아버릴 정도로 수단에 집착하여 주객전도가 되는 모습도, 내가 봐왔고 겪었던 일들과 비슷했다. 나는 금융자본주의가 지닌 속성을 경멸하기만 해왔던 사람이라, 이 욕망이 이토록 좋고 나쁜 의미에서 인간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할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전통적 의미에서 인간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성을 몰살하고서라도 쫓는 욕망과, 그 욕망의 파괴적인 속성, 그 파괴적인 욕망을 좇은 이유가 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앞으로도, 그가 걸었던 길과 비슷한 길을 전혀 갈 생각이 없으므로, 이 책은 내게 완전한 판타지 소설 속의 이야기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판타지 소설은 현실의 은유이므로. 이토록 선명하게 현실을 비틀어 만들어낸 판타지를 판타지소설이니 뭐니 하는 표현으로 말하는 것조차도 이상한 것 같기는 하다. 여러 의미에서 이 소설에서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이 사태에 이 시대에 사는 다수가 한 번쯤은 얉게나마 발을 담궈보았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다수의 사람들이 주식을 한다고 말을 했었기도 하고... 나는 노동수익으로 삶을 꾸려갈 수 없어서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회사의 발전과 안정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기 떄문에, 이는 위험부담을 개인이 어느정도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돈으로 돈을 버는 일이고, 불로소득과 어떻게 다른지 잘 알지 못한다. 모든 불로소득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예 노동을 할 수 없더라도, 그를 위한 수입은 필요하다. 투자자, 또는 피투자자가 되어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건 이상하다. 투자자나 피투자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은 버려진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느정도 노동을 할 수 있을 때, 이들의 노동력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동등하게 놓고, 해낸 만큼만 수입을 준다고 하면, 임금 노동자의 수입이 능력에 따라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기준에서 조금씩 더 주어진다는 사실이 잊혀진다....  누군가는 크게 차등을 두는 게 옳다고 여길지는 모르겠으나, 노동한 가치만큼 주는 것도 측정이 어렵다는 측면에서 불가능하다. '능력주의'를 표방한 곳마저도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사업가'로 일해야만 하는가? 이것 역시도 이상하다. 모두가 사업가가 되면, 모두가 사업가로 살아남을 수는 있는가? 대다수는 대기업에 병합되거나 하청업체가 되지 않던가?
편향적으로 주어지는 불로소득,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역할을 하는 개인과는 무관하게, 그 시스템이 괜찮지 않아도 시스템에 따라 행위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불로소득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어떤 종류의 불공정이 유리한 인간에게 비인간성을 유발한다는 사실에도 부정적이다. ….이 분배 시스템은 노동강도에 따라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빈익빈부익부에 따라서 제도 활용에 따른 유불리가 나누어질 뿐.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킨 이산화탄소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투자자본'인 만큼이나, 정부의 눈먼 돈을 활용하는 건 더 많이 감시받고 검증해야 하는 빈자가 아니라 부자라는 점에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금융자본주의를 한 인간이 도박처럼 활용하는 모습을 묘사한 이 소설이,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진 우리 시대 사회상을 잘 그리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모두가 비슷하게 바라는, 인간다운 삶을 살리라는 소원을 이루려고 금융자본주의를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결국 나쁘지 않은 결말을 얻었기 때문에도, 시스템이 인간을 착취하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권장하기는 어렵다. 신랄하게 비판하는 서술어 사이에 선명하게 살아있는 욕망이 나와 닮아서 어쩔 수 없이 몰입해서 읽고 말았다, 종종 매력적이고 분석적인 문장들과 묘사와, 이야기 구성 측면에서도. 잘 만든 이야기라서,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부러워졌다. 그렇지만... 역시 이 길에 눈꼽만큼도 발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럴 능력도 없고. 욕망을 이룬 사람이 지고 있는 반대편의 그늘이  무섭고 섬뜩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건, 아마 내가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그렇기도 한 것 같다. 내가 과연 내가 바라는 대로 계속 조심하면서 살 수 있는 인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나 살자고 다른 것들에 눈감으며 살면 어떡하지 항상 무섭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를 쓰고 나서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소설은 인물의 욕망이 계속 끌고나가는 세계이지 않나 싶어서,  하여튼 이 소설은... 잘 썼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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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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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읽는 처음 순간부터 미쳤다는 말부터 했다. 피비린내 나는 금융자본주의를 이용하여 인생역전하려는 한 사람과,돈을 벌려는 욕망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 돈으로 돈을 벌어서라도 존엄과 영혼을 사려는 게 시대의 욕망이라지만, 욕망의 궤적에 홀리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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