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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야기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세상의 모든 비의와 지식을 깨달은 파우스트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남은 것은 영적인 존재에 다다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영적인 존재와의 접촉은 무위로 돌아가게 되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다가오는 죽음에 비참해하며 슬픔에 빠져있는데, 그런 파우스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다가온다. 그들은 바로 계약을 맺게 되는데, 계약의 조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음과 같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모든 조력을 아끼지 않는 대신, 파우스트가 세상에 대한 갈구를 멈추게 되면, 단 한 번이라도 현실에 만족하게 된다면 ‘시간아 멈추어라.’ 라고 외치게 되며, 동시에 그의 영혼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으로 다시 나이를 되돌리게 된 파우스트는 그레트헨과의 사랑을 거쳐서 헬레네와 결혼을 하는 등 향락에 젖어 살지만, 결국에는 어느 황제의 궁전에서 자신이 할 일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지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토지를 개척하여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고, 결국 그 계획을 성취시키게 된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하고 만다.

 

멈추어라 순간아, 너는 진실로 아름답구나.

 

악마는 계약대로 파우스트가 현실의 삶에 만족했다고 생각하고는 그의 영혼을 뽑아가려고 하지만, 신은 그가 ‘현실의 삶’ 에 만족한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자신의 행동에 함축하며 그의 영혼을 승천시킨다.

 

 

 

***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어야 할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니면 독서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것부터 정의를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내어야 할 지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항상 내가 독서를 시작할 때 느끼는 감정은 ‘광기’와 ‘죽음’ 에 대한 감정이다. 밤에 어떤 책이든, 그것이 문학이든 인문학 서적이든 그 어떤 서적이든, 펴놓고 읽고 있을 때 나는 과장 같지만 진실로 ‘광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책을 다 읽은 순간 나는 ‘죽음’을 느끼게 된다. 이는 하이데거처럼 필멸자로서의 나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고, 책 깊숙한 곳에서 인식의 한계와 무의식을 살펴보기 때문이다. 한계 너머는 오직 깜깜할 뿐이고, 인간 존재에 있어서 깜깜함은 오직 죽음뿐이다. 우리가 눈을 영원히 감고 있을 때 그 어떤 색채의 빛도 우리의 뇌에 도달하지 못한다. 죽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광기를 느낄 뿐이다. 어떠한 빛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뇌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망막에 투사한다. 당장 어떠한 언어도 입에 품지 말고 자신의 머릿속을 살펴보라.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이미지들, 혹은 이미지조차도 되지 못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 그 ‘무엇’ 들이 과연 제대로 된 형상을 안고 있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형상들은 수많은 감정과, 그 감정을 근원으로 하는 욕망으로 투사되어 광기에 일그러져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리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크든 작든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 아무 감정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애초에 아무런 욕심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직 ‘죽음’ 뿐이다. 독서를 통해서 이런 양 극단, 욕망의 극단인 광기와 그 대척점으로서의 죽음을 항상 느끼는 나로서는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다시금 책 읽기에 빠져들게 된다. 아무래도 죽음보다는 삶이 낫지 않겠는가. 적어도 책을 읽을 때에는 욕망의 극의로서의 광기를 느낄지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여기서 이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은 상당히 특이한 책이다. 사상가가 쓴 책 치고는 상당히 쉬운 언어로 구성되어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한 점이지만, 그 쉬운 언어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상당히 깊은 생각을 요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은 닷새 동안의 밤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세라자드의 천일야화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다. 물론 차이점이 더 많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 동일한데, 그것은 천일야화든 이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든 하나의 주제를 몇 번이고 변주한다는 점이다. 천일야화가 알라는 위대하시다, 라는 내용을 기본적으로 모든 이야기에서 그 바탕에 연원으로 두고 있다면, 이 책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혁명을 한다는 것이다.’ 가 그 기원이다. 여기에서부터 수많은 논리들이 파생되어 나온다. 혁명은 쉽게 이루어지는가? 그렇지 않다. 혁명은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가 밝혔다시피, 그리고 내가 느끼다시피 책을,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의 무의식에 접속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무의식의 광기 때문에 ‘자칫하면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의 일’ 이기 때문이다. 혁명을 이루기 전에 자신의 정신이 이상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곤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책들은 본질적으로는 ‘그대로 읽을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그 읽을 수 없는 것을 ‘읽어나감으로써’ 혁명을 진행시킨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그 예로 루터와 무함마드를 들어서 설명을 진행하고 있다. 루터는 성서라는 텍스트를 그대로 읽어나감으로써 가톨릭에서 벗어나 하나의 종파를 설립하였고 (그 이면에 사회학적인 다른 이해관계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무함마드는 문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문맹이었기에 신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고 이슬람교를 창시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루터와 무함마드는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았다’ 라는 점이리라. 앞서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신이 이상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해놓고 이들은 정신 이상의 증후를 보이지 않는다니. 여기서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자면 이들이 읽은 책, 그러니깐 성서나 (초기의 신의 언어로서의) 코란은 그 텍스트를 그대로 접해도 광기에 집어삼켜지지 않는다, 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거나, 이들은 광기에 집어삼켜지기 전에 무엇인가 조치를 취하거나 취해졌었다, 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 혹은 대담한 이야기이지만 둘 다 사실 광기에 이미 휩싸여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를 세운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이고, 이는 니체가 말했다시피 ‘이미 광기에 젖어있는’ 행위이기에 말이다. 꿈에 취해있지 않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현실이 아닌 꿈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광기에 잡혀있지 않다면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꿈속에서 살아간다고 여긴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행동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 어떻게 종교를 만들어 세상을 변혁하려고 하겠는가. 셋 중 어떤 가설이 옳을지는 당장 알 수 없다. 어쩌면 셋 다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수도 있고, 어느 것도 해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에서는 루터의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루터가 이야기한 부분을 인용한다. 당시 루터가 살았던 현실은 교회서 배척당하면 수도사로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었는데, 루터는 당당하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로서는 이단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결국 현실에서 배척당하고 만 것이다. 현실에서 배척당한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바로 꿈으로 향할 뿐이다. 세상이 미친 것일까, 내가 미친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꿈 속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루터는 이야기한다. ‘나, 여기에 선다. 나에게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책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책은 광기의 유산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생의 광기의 유산이며, 이 독서의 끝남은 광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의 붕괴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금 깜깜함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며 삶에서 죽음으로의 전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도중에, 이 책이, 하나의 광기가 얼마나 남았는가, 를 몇 장 남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헤아리며 몇 번이고 앞서 말한 파우스트처럼 되뇌는 것이다. ‘멈추어라 순간아, 너는 진실로 아름답구나.’ 라고. 파우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몇 번이고 중첩되어 생을 붙잡고 있기에 외친 것이지만, 나로서는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조력자도 없을뿐더러, 파우스트처럼 모든 학문의 극의에 달하지도 못했고, 그처럼 모든 향락도 누리지 못했기에 결국에는 나 자신의 생이라도 붙잡기 위해서 외치는 것이다. 서로 다를 것 같지만 둘 다 생을 붙잡는 의미에서는 나와 파우스트 모두 동일하다. 무엇보다도 '현실의 삶' 에 만족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하리라. 그가 높은 이상을 추구하였다면, 나 또한 책읽기를 통해 추구하는 이상은 그에 뒤지지않는다. 하지만 그 붙잡는 행위는 나에게는 이윽고 덧없이 끝나게 되고 (나에게는 파우스트의 ‘신’ 이 없다.) 결국 깜깜함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은 나에게 하나의 의문점을 던져준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살아가는 여기,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 책 안에서 무의식과 욕망을, 그리고 더 나아가 생의 광기를 느낀다면, 책 밖의 현실은 나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

 

 

 

  그리고 이야기는 카우보이 비밥으로 마무리된다. 카우보이 비밥, 이라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들어본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만큼이나 숱한 화제를 낳은 애니메이션인데, 우리 나라에서 유명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박완규, 그렇다 나가수의 그 박완규, 가 자신의 대표곡이라면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천년의 사랑을 부를 때, 그 뮤직비디오로 이 애니메이션을 편집해 사용한 것 때문이다. 정말 오래 전에 나왔지만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중이다. 간단히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상금 사냥꾼인 스파이크 슈피겔은 비밥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제트나 페이와 같은 동료와 함께 현상범을 사냥한다. 하지만 그의 과거는 어두웠는데, 원래 어느 조직에 속해 있던 그는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같은 조직원인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원래 도망치기로 했었다. 하지만 조직은 배신하려는 그를 순순히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고, 도리어 조직원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를 죽일 것을 청부한다. 결국 그들은 엇갈리게 되고 후에 다시금 만나게 되지만, 결국 그들은 달아나지 못하고 여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고 현상금 사냥꾼으로 사는 동안 스파이크는 자신의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 꿈이라면 죽어도 좋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본인의 목숨을 내던지려고 든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죽는 것을 보고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게 된다. 이윽고 꿈에서 깨는 것이다. 그때 주인공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깨지 않는 꿈이라도 꾸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샌가 깨버렸다.’

 

나에게 있어서 당장의 독서는 이와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을 때 삶을 느끼는 나는, 그 세계에 침잠하면 침잠할수록 현실에서는 한편으로는 유리되는 기분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두가 달리고 있는데 나는, 그렇다, 상투적인 이야기이지만, 혼자서 멈춰서 주저앉아있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도리어 책읽기를 중단한 현실은 나에게 깜깜한 이미지만을 비추고, 이는 항상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간은 죽음과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그 죽음을 도리어 외면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항상 직면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상황을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고,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될 것이며 이윽고 자신의 목숨을 건 행동도, 혹은 위험한 행동도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꿈으로 여겨지니까. 이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에서는 독서를 일종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혁명은 왜 일어나는가? 꿈을 꾸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꿈을 꾸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꿈은 언제 나타나는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꿈을 꾸는 것이다. 하지만 꿈만 꿀 수는 없는 것이다. 꿈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별 수 없이 꿈에서 깨어야만 하고, 꿈의 단초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진행시키고 싶을 때 책을 읽는다. 잠에서 깨어 책을 읽고 혁명의 단초를 붙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금 책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문학이든 사상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금 잠에 들 것이다. 그렇기에

 

 

진실로 깨지 않는 꿈이라도 꾸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꿈처럼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신의 생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회피하고 회피하다가 결국에는 현실을 꿈처럼 바꾸기 위해서 들고 일어나는 ‘혁명’ 을 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다. 앞서 루터나 무함마드 정도가 그런 사람에 해당할 것이다.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아니, 380만년이나 남았는데 혁명은 그 긴 시간 동안 언제든지 일어나지 않겠느냐’ 라고. 그렇다, 분명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루터나 무함마드, 니체 등 그들과 비등한, 그리고 그들보다 더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태어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의 저 말은 동시에 380만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함의한다. 독서는 광기와 함께 이런 것을 깨달을 만큼의 지혜를 동시에 나에게 부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샌가 깨버렸다, 라고 혼잣말을 할 것이다, 380만년의 영원의 그 언젠가.

 

 

 

 

 

 

 

 

 

p. s. 아주 아방가르드한 글이 되어버렸네요,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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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7-15 04:0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어요. 첫째날, 읽고 잠시 덮어두었는데, 아주 생각할 것들이 많아요. 가연님의 리뷰는 책 다 보고 보려고 일단 서두만 읽고 스킵해뒀는데, 이 리뷰를 읽기 위해서라도 얼른 책을 마저 읽어야겠네요.

가연 2012-07-16 15:00   좋아요 0 | URL
ㅎㅎ 이 책은 자신의 독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그 결과물이 이런 요상한 글이 되어버렸지만 읽을때부터 하고 싶었던, 할말은 다 했으니 마음은 편하네요. 사실 엄밀하지 않다고 스스로 여겨지던 부분이 눈에 좀 걸리긴 했지만..ㅎㅎ 특히 넷째날, 풋. 다음에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네요.

꽃도둑 2012-07-21 11:00   좋아요 0 | URL
가연 대장님! 며칠 동안 심하게 아팠습니다.(쿨럭쿨럭~)
아직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요..리뷰를 늦어도 월요일까지는 올릴게요,,,,^^

가연 2012-07-23 17:04   좋아요 0 | URL
지금은 좀 나으세요? 네, 혹시 힘드실 것 같으면 연장 메일이나 댓글 남겨주세요.

꽃도둑 2012-07-25 23:43   좋아요 0 | URL
낮자마자 여름휴가 여행다녀왔어요. 서재도 오늘에서야 들어왔네요.
리뷰가 늦었네요,,,,암튼 짧게라도 써서 올려놨습니다...고맙습니다^^

가연 2012-07-28 06:18   좋아요 0 | URL
네,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13-08-10 01:41   좋아요 0 | URL
이 책 제목 조금 무섭기도 하네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고 나면 뭔가 덧없음을 느낍니다 그게 무엇인가 했더니 '죽음'이었나 보네요 가끔은 그 말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 그렇게 되겠구나 한 거죠(어쩌면 꼭 그런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광기는...

혁명은 꿈을 꾸기에 하는 것이다 그렇군요 이 낱말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거의 저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무엇을 바꿔야 한다고 여긴 적이 없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간다고 할까

뭔가 더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군요^^


희선

가연 2013-08-11 20:40   좋아요 0 | URL
제목이 참 특이합니다. 저도 덧없다, 라는 감정을 정말 많이 느끼는데, 사실 죽음, 이라는 것이 항상 근처에 있다, 라고 책이 알려주는 것 같다, 라는 생각도 가끔씩 해봅니다만.. 그야말로 우스개소리같네요, 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