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결혼한 소녀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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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결혼한 소녀 /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이야기들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삶 자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용기와 이기심 같은 것에 대해 말해준다. 남을 속이는 것은 그리 영리한 행동이 아니며, 친구들과 약한 사람들에게는 상냥해야 한다는 것 등을 보여준다. 나는 이야기가 전해주는 것들 대부분에 동감하며, 여러분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P.9-

 

1.

 

 민담이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서사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 입니다. 이런 민담은 글로 기록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입에서 입을 통해 남겨져 후손에게 물려주는 형식으로 계승되었는데요. 대부분이 허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릴적 한번쯤 읽어봤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 <나무꾼과 선녀>등의 이야기가 국내의 민담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인데요. 선녀가 나오고, 호랑이가 말을하는 상황들은 현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이지요. 하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선조들의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때로는 금기사항이 담겨있어 주의를 주기도 하구요.

 



 

 

 

하이에나는 외진 곳으로 가서 엉엉 울었다. 맛있었던 식사는 이제 다 잊혀지고, 남은 것은 사람들에게 얻어맞아 생긴 타는 듯한 통증뿐이었다. 하이에나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수치스러워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는 친구 때문이었다.

 

-P.48-

 

2,

 

 민담은 각 민족 고유의 특성입니다. 나라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것이죠. 이러한 이야기는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웃기게 인간의 희로애락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의 기준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작품들도 있고, 국내의 민담과 비슷하다 싶은 작품도 있습니다. <사자와 결혼한 소녀>는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 보츠와나와 짐바브웨의 이야기를 담은 민담집 입니다. 민족 특유의 색채가 드러나 있지만, 우리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기에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작품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 살고있는 동물들이 주인공 입니다. 무서운 사자와, 꾀많은 토끼, 어리석은 하이에나 등 우리가 기존에 인식하는 동물의 성격이 민담속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외의 특이점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호랑이가 토끼를 이긴다던지, 염소와 표범 그리고 닭이 친구로 지내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음에도, 어느순간 그것을 즐기며 그 속에 담긴 교훈을 찾아내는 제 모습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은 자네가 방금 나에게 한것과 같은 짓을 하기 때문이라네."

그 말에 청년은 충격을 받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대답할 말을 생각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일어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화려한 새를 꺼내어 눈먼 남자에게 돌려주었다.

...

 

"네. 서로 싸운 다음에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눈먼 남자는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방금 한 것처럼 하면 된다네. 그렇게 하면 다시 친구가 되는 거야."

 

-P.84-

 

3,

 

 책은 총 두권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책의 첫권이 지금 소개하는 <사자와 결혼한 소녀>이고, 두번째 민담집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비비원숭이>라는 작품입니다. 두 책 모두 연관되지 않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어떤 책을 먼저 읽던지 상관은 없습니다. 표지에 나와 있는 귀여운 동물들을 책 안에서도 만날수 있었다는 점이, 기존에 쉽게 접하기 힘든 아프리카의 민담집을 만나볼 수 있다는게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유럽이라던지, 동남아 등의 민담을 엮은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드는데,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독특하고 귀여운 이야기집 <사자와 결혼한 소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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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까이, 너에게 : 파스텔뮤직 에세이북
파스텔뮤직 지음 / 북클라우드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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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가까이, 너에게 / 파스텔 뮤직

 

 

청춘의 순간은 짧고 그렇기에 돌이켜봤을 때 아름답다. 뿌연 안개에 싸인 듯 한순간도 정확하지 못한 청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났다가 소멸된다. 파랗거나 빨갛지 않고 푸르스름하거나 불그스름한, 딱히 명명할 수 없는 감정과 감정의 사이.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만이 젊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십 년 동안 우리는 경계에서 어슬렁거리는 청춘들과 어떠한 교감을 시도해왔을까. 시도는 성공했을까, 혹은 실패했을까. 그러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스치는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해보고자 한다.

 

-P.23-

 

1.

 

 음악이라는건 참 신기합니다. 힘들때 들으면 어쩜 그렇게 내 기분을 잘 이해해 주는지, 주변 사람들의 빈말치례 위로보다 한곡의 음악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그런 노래들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파스텔 뮤직'의 노래들입니다. 대형 기획사의 획일화된 음악이 아닌, 독립적인 개인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인디밴드'라 부르는데요. 대표적인 인디가수 요조, 타루,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등의 레이블이 '파스텔 뮤직'입니다.

 

 그들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달달한 멜로디는 우리의 청춘과 무척이나 가깝습니다. 때로는 가사가 없이 기계음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의미없는 구절의 반복이 계속되기도 하지만 그런 화려하지 않은 잔잔함이 우리내 일상과 무척이나 잘 맞아 떨어집니다. 나만의 BGM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것 같네요. 이런 보물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저 혼자서만 알고 싶지만, 이제는 인디밴드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노래는 대중에게 가까워 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청춘을 이야기하고, 그 모습과 가깝습니다.

 

 

수많은 뮤지션들과 계속 함께할 순 없다. 실제로도 계약의 종료, 해체 등으로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겪었다. 우리가 주고받는 언어가 같은 한국말이라 할지라도 다른 의미들로 해석될때도 있고, 원하는 것만큼 성취되지 않을 때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나아가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이는 종종 겪는 일이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꽤나 민감하면서도 마음 아픈 이야기일 때가 더 많다. 그것을 음악 팬들이 멀리에서나마 감지할 뿐이지만 이제 꺼내보려고 한다. 그래야 그 빈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또 다른 파스텔의 10년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테니까.

 

-P.87-

 

2.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는 '파스텔 뮤직'의 10년을 담은 에세이집 입니다. 수많은 인디밴드들이 그들과 함께하고, 또 헤어졌습니다. 책에는 그들과의 뜨거운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흔히 들어봤던 음악들의 주인공들이 소탈한 모습으로 책에 등장하는게 신기했습니다. 책은 단순히 '파스텔 뮤직'의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습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파스텔 뮤직'을 만들어갔던 그리고 만들어가는 주인공들의 에세이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처럼 청춘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읽는 내내 무척이나 공감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특히 최근에(2012년 6월) 나온 앨범 '낯선도시에서의 하루'는 베트남의 도시들을 이동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였는데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은 그 음의 조화속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차세정이라는 보컬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무척이나 좋았는데 <조금씩, 가까이, 너에게>에 그의 에세이가 실려 있더군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써나간 수기를 쫓 앨범의 노래들을 따라 들어봤습니다. 그의 기억과 나의 기억에 '청춘'이라는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었던것 같이 기분이 묘했습니다.

 

 

 

말로는 해결 못할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고. 기록되고. 착상되고, 목적이 생기고, 구체적인 계획들이 그려지고. 흔들리지 않게. 그렇게 오랜 시간 만들어나갔다. 나의 여행이, 노래가, 혼잣말이. 어떻게 남을지는 잘 모르겠다. 바라는 것은, 오래 들어도, 늘 한결같은 음악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 누군가의 새벽, 그 어느 한곳에, 위안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P.187-

 

3.

 

 우리는 꽤 오랜시간 음악과 함께합니다. 지하철을 오가는 긴 시간동안 수많은 노래들이 내 머릿속에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런 노래들 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노래는 과연 몇곡이나 될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돌 그룹의 섹시하고, 멋진 안무와 노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래들 탓에 나만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묻히는 것은 싫습니다. 인디밴드들의 애정 넘치는 음악들을 계속해서 듣고 싶습니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그 노래들을 말이죠.

 

 내가 알수 없었던 뮤지션들의 감성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였습니다. 타루의 조금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세상도, 파니핑크의 감성적인 글귀도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습니다. 블로그에서 들리는 짙은의 잔잔한 목소리가 무척이나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늦은 밤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음악들과 책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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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는 죽어야 한다 블랙 로맨스 클럽
엘리자베스 챈들러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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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배우는 죽어야 한다 / 앨리자베스 챈들러

 

 

내 주위가 마치 무대 조명을 파란 젤로 덮은 것처럼 차가운 색으로 밝아졌다. 단어들이 머릿속에 갑자기 떠올랐고, 마치 전에 수없이 말해 봣던 것처럼 그 대사들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오 시간이여, 내가 아닌, 그대가 이 얽힌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이다.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매듭이니.

 

-P.18-

 

1.

 

 제 고등학교 친구중 한명은 자매가 친구처럼 무척이나 가깝게 지냅니다. 함께 쇼핑을 하고, 밥을 먹는것은 기본이요. 남자를 만나러 클럽에 갈때도 함께 간다 하더군요. 밑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지만 대화가 거의 단절수준인 저에게는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형제 사이에는 뭔가 서열이 상하 수직구조로 명확하게 구분되지만, 자매 사이에는 상하의 서열보다는 수평적인 평등한 구조가 많아 보입니다. 특히나 나이 터울이 얼마 나지 않을 경우에는 더욱 가깝게 지내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과 실상은 참 많은 차이가 있을겁니다. 비슷한 생활환경에서,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같은 옷에 욕심을 내기도 할 것이며, 심한경우 같은 남자에 마음을 뺐기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 능력을 억제할 수 있을지를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느끼는, 언니와 물리적 연결이 형성된 것들에 의해 유발되는 환상들은 내가 조절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했다. 언니가 앉았던 창가 자리, 언니가 즐겨 섰던 무대 위의 장소, 언니가 살해당한 장소의 그림, 그리고 지금, 그 망치. 입증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망치가 우리 언니를 죽였던 흉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P.175-

 

2.

 

 <여배우는 죽어야 한다>의 주인공 제니와 그녀의 언니 리자는 연극계 집안에서 태어난 절친한 자매입니다. 천상 배우처럼 보이는 리자와는 달리 무대공포증이 있는 제니는 언니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재능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리자가 제니에게 보내는 긴박한 메세지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제니가 받았을때, 리자는 차가운 시신으로 발겹됩니다.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된 것이죠. 그녀의 죽음 이후 일년이 지났습니다. 제니는 언니의 기억을 지우고 안정을 찾기 위해 리자가 살해당한 연극 캠프에 찾아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연쇄 살인범의 소행이라는 경찰의 결론과는 다르게 리자의 죽음의 원인이 다른데 있을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언니 리자의 남자친구였던 마이클, 리자를 짝사랑했던 폴, 제니의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진 워커 선생님 등 책속의 모든 인물들이 수상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들 처럼 말이죠. 모두가 범인과 같이 느껴지는 이 캠프 속에서 제니는 점점더 불안해져 갑니다.

 


 

 

 

"언니가 여기에 있는 거 알아. 언니는 항상 내 마음속에 나와 함께 있을 거잖아. 그렇지만 이제 자야겠어, 언니. 이번엔 좋은 꿈이야. 언니랑 나만을 위한 좋은 꿈."

 

-P.272-

 

3.

 

 사실 자극적인 제목과, 등에 문신을 한 채 분장을 하는 소녀의 관능적인 모습에 살벌한 공포를 기대했는데 생각만큼 이야기가 강렬하진 않았습니다. 한가지에만 집중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너무 많은 소재들을 집어 넣어서인지 호러도 로맨스도 아닌 밍숭맹숭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김전일과 비교되어 많이 이야기 되어지고 있는것 같던데. 글쎄요 열려있는 캠프장에서 밀실의 묘미는 느끼지 못했고, 김전일과의 유사점을 찾자면 후반부에 생각지도 못한 비극적인 과거사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이렇게 책의 평을 깎아 내리는데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번역의 힘이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구글 번역기에 그대로 돌린듯한 어투는 읽는 내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경찰이 연쇄 살인마의 짓이라고 생각하길 바랐다면, 언니의 시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리로 옮겨져야 했을 거였다.', '믿을수가 없구나. 무분별하고, 어리석고, 위험하기까지 한 짓이야. 허위 경보는 사람들이 다음에 알람을 들어을 때 재빨리 반응하길 망설이게 만들어' 등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의 번역에 화가 났습니다. <스타터스>때도 비슷한 이유로 읽는데 상당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같은 번역가 분의 작품이라면 앞으로 구매하기 조금 꺼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 대해 안좋은 점만 부풀려 이야기 해버렸는데, 그런걸 감안해도 책은 재미있습니다. 일단 인물의 특징이 명확하고, 그 인간군상에 대한 착각이 깨지는 순간이 무척이나 짜릿합니다. 카피의 한 문장이 무척이나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십대들을 위한 오락소설 정도로 보면 딱 좋을것 같습니다. B급 영화같은 느낌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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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포이즌 미도리의 책장 13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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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체인 포이즌 / 혼다 다카요시

 

 

나는 고독하다. 나는 미숙하다. 그러나 그걸 원점으로 삼기에는 나는 어느덧 나이를 먹고 말았다. 올해로 서른여섯이 된다. 서른여섯의 여자는 고독과 미숙을 창피하게 여길 수도, 원점으로 삼을 수도 없다. 고독하다, 미숙하다, 그렇게 인정해버리면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그렇기에 고독에게는 가면을 씌우고 미숙은 마음 한구석에 치워둔다.

스무 살의 나는 어땠더라?

 

-P.7-

 

1.

 

 '자살'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하루에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리내 사회에서 자살은 더 이상 특별한 단어가 아닙니다. 왠만한 죽음으로는 뉴스의 조그마한 구석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자살은 잔인하지만 무디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살'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독을 느끼는것이 당연한데, 그것을 유독 자신만의 일이라 생각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사람들은 점점 가까워 지는 듯 보이는데 고독한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 이상한 사회 속에서 자살이 유일한 답인 것 처럼 목숨을 끊습니다. 목을 매고, 손목을 끊고, 지하철과 한강에 투신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럴 용기로 살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산 사람의 아쉬움일 뿐이죠. 타인의 삶의 영역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건 반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래달리기 경주 중간에 아 힘들어 그만뛸래 하고 기권하는 것과 다를바 없으니까요.

 



 

 

 

이른바 체인메일이라 불리는 스팸문자의 일종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5일 이내 위험한 일이 생긴다는 그 말이 내 가슴에 불쾌한 가시를 박아놓았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는 없지만 그런 말을 타인에게 무차별적으로 발신하고 실제로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작은 가시가 됐다. 그 인간은 아마도 수많은 대중에 뒤섞여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평범한 생활을 꾸려나가겠지. 그리고 아마도 그 인간의 마음속에 죄책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 정도 죄 갖고는 아무도 꾸짖지 않는다. 지금쯤 그 인간은 자신의 소소한 장난에 히죽거리고 있을까. 아니,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어쩌면 그 인간은 세상을 향해 행운을 발송했다고 진정으로 자부하는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무섭다.

 

-P.144-

 

2.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던 여인 '타카노 에쓰코'. 서른 여섯이 된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다, 죽음을 결심합니다.  짧고도 긴 인생을 살아왔지만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예쁘지도 않고, 남들이 시키는 일만 군말없이 하는 자신의 모습은 조용하고 단조롭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이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은 참을수가 없습니다.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해 자신의 일상과 사진을 올려보지만 사람들은 반응이 없습니다. 자극적인 사진에만 반응하는 컴퓨터 속 사람들은 그녀에게 상처만을 남기고 맙니다.

 

 그렇게 죽음을 결심하는 그녀의 앞에 수수께끼의 인물이 나타납니다. “1년만 기다려주신다면, 잠자듯 편안하고 감미로운 죽음을 당신에게 선물하겠습니다.” 라는 달콤한 제안에 그녀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일년의 유예기간 후에 죽기로 결심합니다. 에쓰코는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다달이 나누어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위해 '백합의 집'을 찾게 됩니다.

 

 한편 주간지 기사 하라다는 '연쇄 독극물 자살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청각을 잃은 유명 음악가 '기사라기 슌', 잔혹하게 가족을 잃은 뒤 범인이 사형선고를 받으며 삶의 의미를 잃은 '모치다 가즈오', 평범한 직장여성 '타카노 에쓰코' 세사람은 모두 알려지지 않은 약물을 이용해 자살합니다. 얼핏 특별하지 않아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자살이 예측되는 시기로부터 약 일년 뒤 목숨을 끊었다는 건데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라다는 그들의 삶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아무 뜻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피곤해 죽겠는데 자신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했다면 다카노 쇼코는 살지 않았을까. 출퇴근길에 이따금 마주치는 이름도 모르는 이웃이 단순한 인사로 그치지 않고 날씨가 좋네요, 라고 한마디 더 말을 건넸더라면 다카노 쇼코는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타인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현대 사회의 병폐, 이런 건가요?"

 

-P.224-

 

3.

 

 읽고난 뒤 작가가 좋아져 다른 작품들을 찾아봤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습니다. 표지만큼이나 서정적인 문체도 좋았고,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저는 이런 종류의 트릭이 처음이였습니다) 충격적이였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고독한 사람에게, 혹은 그런 고독으로 삶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희미하게나마 빛이 될 책 같다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자극적인 소재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일본 소설스럽게 자살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추리라는 요소와 버무려 맛있게 만들어 냈습니다.

 

 일본의 유명 출판사 고단샤가 100주년을 맞이하며 기념작으로 선정한 첫번째 이야기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마 비슷한 내용과 트릭의 이야기가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참신하고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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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달의 사막의 사박사박 / 기타무라 가오루

 

 

하지만, 이 세상에는 별의별 일들이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걸 알기에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장담해줄 수도 없었던 거죠. 단, 이것만은 사키가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엄마는 이 말을 해주었습니다.

"화내지 않을 거야."

 

-P.61-

 

1.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서정적으로 다가옵니다. 동시에나 나올법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달의사막' 이라는 일본 동요에 나오는 노래 가사라고 하네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된 책은, 옛날에 읽었던 <노란 코끼리>라는 책을 떠오르게 합니다. 두 책은 모두 편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의 순수하고도 아픈 모습,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성장해 가는 가족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수 있는데요. <노란 코끼리>가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인 반면, <달의 사막을 사박>은 감정은 최소화 하면서 담담하면서 밝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배운 곡을 엄마가 불러준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사키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정말이지 난감했답니다. 사키가 <예수는 인간 소망의 기쁨>이라는 곡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좋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자신만만하게 "따라, 리라리, 리라리, 리라리~" 하고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엄마의 콧노래는 정말 같은 곡을 부르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멜로디가 전혀 틀리지 뭐예요.

'예수님도 얼마나 황당하실까.'

 

-P.80-

2.

 

 책은 10살의 사키와 작가인 엄마가 마음으로 주고받는 12개의 따뜻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형식을 통하여 진행되는 이야기는 때론 웃기게, 때론 슬프게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무척이나 담담합니다. 전형적인 일본 소설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책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아름답습니다. 어린 사키와, 그녀의 엄마는 서로를 보완하며 성장해 갑니다. 마냥 어리다고 생각했던 사키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때, 그리고 의도치 않게 사키에게 상처를 주었을때 엄마는 아이의 마음이 어리지 않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강물꼭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사키의 엄마에게 전화 한통이 옵니다. 비상연락망을 통해 등교 시간이 늦춰진다는 연락입니다. 사키는 엄마와 비에 관한 과거의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비가 그칠즘 강가로 나갑니다. 비온 뒤의 맑은 하늘. 그 청명한 풍경 안에서 모녀의 모습이 삽화로 그려져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수채화 같은 하늘속 두 모녀의 이야기가 어릴적 엄마와 함께 걷던 섬진강변을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이야기 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일엔 다 나름의 논리가 있구나. 사키야, 엄마는 널 사랑해. 하지만 네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앞으로도 종종 있을 거야. 네가 엄마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거구. ... 그런 법이거든, 좋든 싫든.'

 

-P.98-

3.

 

 재밌다는 말보다는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사키와 엄마의 일상은 즐겁지만 위에도 말했듯이 담담합니다. 큰 사건이 일어난다기 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가 되다보니, 극적인 재미는 없습니다.

 

 이야기보다 더 흥미를 끌었던건 작가가 미스터리 소설을 주로쓰는 '기타무라 가오루' 였다는 사실이였습니다. 국내에 출간된 책은 별로 없지만 일본에서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생각해보니 <이야기꾼 여자들>이라는 책의 작가가 '기타무라 가오루'였습니다. 미스터리라기 보단 잔잔한 괴담집의 느낌이였는데, 그 담담한 느낌이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던 것 같았습니다.

 

 한편의 수채화처럼 서정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사키와 엄마의 행복한 이야기가 종종 궁금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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