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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평점 :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 코너 우드먼
(학교 과제로 제출했던 레포트입니다. 기존 서평과 양식이 다릅니다)
1.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세계일주
‘세계일주’라는 말은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아마 내가 살아온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인식되는 ‘세계일주’는 여행으로 치환되는 그런 개념이다. 누군가와의 새로운 만남, 맛있는 음식, 새로운 볼거리 등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관광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목적이 아닌, 의미있는 목적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한 사람이 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의 저자 코너 우드먼이 책을 써나간 과정은 한잔의 커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 라는 공정무역 재단의 마크는, 저자가 바른 소비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선물해 주었지만 동시에 특정한 커피를 소비함으로서, 커피 생산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도 품게 만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작가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9개 국가를 여행한다.
코너 우드먼을 따라 낯선 국가들을 여행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불편하다. 지구 반대편 북반구 국가들의 끝없는 욕심에 희생되는 남반구 국민들의 삶은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중앙아메리카의 니카과라에서 시작된다. 변변한 장치 없이 잠수하여 바닷가재를 잡는 사람들. 수압에 의해 다리를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들은 생계를 위해 바다로 향할 수 밖에 없다. 정말 화가 나는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잡아 올린 바닷가재를 본인들은 비싸서 사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은 니카과라라는 특정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다. 콩고, 라오스, 중국에 이르기까지 제3국이라 불리는 많은 국가들은 니콰과라의 노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들 나라를 착취하는 선진국과 대기업 중에는 우리나라, 한국 기업도 존재하고 있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애플의 제품이 중국의 어린이 노동자의 인권을 착취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알려져 대대적인 소비자 운동이 벌어졌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사실이 알려져도 혀만 차고 끝낼 뿐 불매운동이 벌어지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동양의 자본주의는 너무 급격하게 발달하여, 생산자에 대한 책임도, 노동자에 대한 인권도 재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과거 비슷한 환경의 피해자였음에도, 가해자의 입장에 선 기업들의 악랄함은 끝없는 악순환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2. 자본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자본주의는 완벽한 체제로 인식되었다. 오늘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있는데,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빈부가 결정된다는 이 체제는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심각한 부작용들을 가져오고 있다. 부를 선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큰 부를 축적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계속 가난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한 국가 내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어가는 오늘날 문제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먼은 경제적 자유가 없는 공간에서 정치적 자유가 싹트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이야기에는 동감하지만, 그것은 이미 부를 선취한 국가들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책속에 등장하는 가난한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한국인들보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더욱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 가난한 자본주의 국가의 현실이다.
책은 저자 본인이 이러한 국가들을 다니며 보고 들은 사례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때문에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저 제3세계 국가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로만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서두에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이나마 집어넣었으면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 그 점이 아쉬웠다.
또한 책의 제목처럼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면, 자본주의의 시초인 미국의 이야기와, 사회적 민주주의라 불리는 북유럽의 민주주의 등의 이야기도 함께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오로지 제 3국가의 불편한 진실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이야기 자체가 지루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격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두 번째 장에서 영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긴 했지만 자본주의라고 보기보단 공정무역이라는 제도를 악 이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일부사례만을 다루고 있어 이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는 책인지, 공정무역을 옹호하는 책인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만약 후자쪽 이라면 이름을 너무나 확대해석하여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3. 사회적 기업의 모순.
얼마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윤리적인 소비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기업들이 단순한 이윤추구가 아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실직자가 문제가 되며 그 개념이 대두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 기업의 물건을 소비하는 것은 얼핏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이면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아니 인식하고 싶지 않아하는 불편한 진실들이 녹아들어 있다. 책에 나와있는 사례들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공고히 뒷받침한다.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기업들 중 일부는 윤리적인 상품을 판매하며 자신들을 포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업을 위한 겉포장에 불과하다. 윤리적 무역 자체가 거대한 사업이 된 일부 대기업들은 순수한 본래의 목적보다는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한 마케팅이 1차 생산물의 생산자들 혹은, 그곳의 환경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면 이러한 사업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무역 인증 상표와 관련된 실상을 들여다 보면 오히려 이러한 공정무역 인증의 과정에서 수혜자는 1차생산자가 아닌 기업임을 알 수 있다.
일부의 경우 일지도 모르겠지만 윤리적인 소비를 주장하는 공정무역 제품의 경우 공정무역 단체의 인증 기준이 애매하거나, 인증 표시를 다는 대가로 내야 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공정무역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면서 운영되고 있는 소규모 기업들이 공정무역 인증 제품에 밀려 시장 점유는커녕,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윤리적 소비를 인증하는 상표가 오히려 더욱 윤리적인 기업을 가려내는데 어려움을 주는 셈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경제학을 배우는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에 있어 제 3국 국민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편법을 이용하여 소비자를 속이려 한다면 결국은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기업이 되고 말 것이다.
책에서 내가 몰랐던 이런 이면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것은 무척이나 새로웠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공정무역 인증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가 너무 부각되어 공정무역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또한 협동조합에 대한 개념 역시 지나치게 축소되어 부정적인 면을 많이 비추어 줬는데, 협동조합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사례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일부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무엇이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을까
책을 읽고 난 뒤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관련 수업을 통해 공정무역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었다 자부하지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척이나 막연하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마지막 장을 할애하여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한 여덟 가지 방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간다.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부분은 모두 옳은 내용이지만, 그 실천 방향이 지나치게 두루뭉실하다. 저자 역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제시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전 공정무역 재단인 ‘아름다운 가게’의 간사분들께 궁금했던 내용들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공정무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냐는 질문이였는데, 사실 그분이 설명하시는 것 역시 내가 생각했던 구체적인 대안은 아니였다. 직접 생산자를 만나 직접거래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장점에 관해서는 이해했지만, 그것이 가져올 나비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이 없다고 느껴졌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내가 가진 지식이 과연 효용이 있는 것 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세상은 나 혼자서는 바꿀 수 없다. 한 사람의 개인은 약하지만, 공통된 윤리의식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뭉쳤을 때 그때서야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기업들도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조금 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세계화가 아닌 국제주의를 지지할 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거인과 아이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거인이 아이가 잘 성장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구체화 시키는 것이 나의 몫이라 생각하고, 많이 고민하고 행동해 봐야겠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듯이 나의 이야기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