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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시집인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이신통 그이의 집에 와서 우리가 부부라는 말도 내세우지 못한 채, 나는 어느 결에 이씨 댁의 식구가 되어버렸다. 누이는 우리가 길을 떠날 때 아버님의 제삿날을 가르쳐주면서 꼭 오라고 당부했고, 오라버니가 집에 들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설득하여 자기가 모시고 강경에 가겠노라고까지 말했다. 길 떠난 지 열흘 만에 안 서방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훗날을 위하여 이신통의 누이와 매제의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놓기로 하였다.

 

-P.133-

 

1.

 

 문학을 전공하며 역사관련 수업은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학창시절 역사과목들로, 사탐을 꽉꽉 채워 시험봤던 기억에 기인합니다. 다 지나간 일을 공부해서 뭐하나. 내가 살지도 않았던 그 시절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내가 왜 그 년도와 주요 인물들까지 달달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건가에 대해 스스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더욱 열이 받았던건 수능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지식들이 마치 포맷된 것 마냥 아득해져, 한국사 자격증을 공부할 때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두번의 학습 탓일까요. 저는 역사관련 수업이라면 피하고 보지만,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혹자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그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배우는 역사가 객관적일까요. 기득권의 기준에서가 아닌 일반 민중들이 바라봤던 역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몇년에 무슨법이 만들어졌고, 누가 반역을 꾀했는가 이런 사건들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민중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만약에 역사가 반복된다면 그런 다수 민중들의 삶을 밝히려 노력하는것이 더 옳은것이 아닐까요?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살아온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첩과, 양반의 사이에서 태어난 비주류의 이야기는 황석영이라는 이야기 꾼에 의해 생명을 얻었고, 있었을 법한 이야기로 탄생했습니다. 소설속 인물인 신통을 바라보는 부인 연옥의 시점은 1인칭이 아닌, 3인칭 전지적 시점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처럼 진행이 되다 어느새 그들의 성격과, 개인사까지 함께 진행이 되고있지요. 이런 작품의 특징은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함몰될 수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양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겠도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 학문을 서도라 부르고 천주를 섬긴다 말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하늘의 때를 알고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하면서 말로는 천주를 섬긴다고 하니 행동과 말이 이렇듯 상반되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나라와 백성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P.370-

 

2.

 

 <여울물 소리>의 배경은 외세와 신문물이 들이치며 봉건적 신분 질서가 무너져가던 19세기 입니다. 익숙했던 체제가 무너지며, 모든 부정부패가 판을 치던 시기. 유교적 이념이 공고했던 조선에서 코가 큰 서양인들이 전파한 천주학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혁신적인 화두를 던져주었습니다. 민중들은 그러한 정신들과, 우리 전통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정서에 필요성을 알게되고, 뜻있는 사람들이 '동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죠. 그것은 민중의 자생적 근대화 의지가 담긴 사상이었고, 기존의 부패한 질서에 대한 혁명이였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신통은 이런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로, 그 혁명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입니다. 서자로 태어나 능력이 있으나,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마주하고, 또 그것이 돈이 있으면 해결되는 웃지못할 상황을 보게 되며 그는 시대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동학에 빠져들게 되지요.

 

 책이 주는 첫번째 키워드가 '동학'이였다면 이 동학으로 이끄는 키워드는 '이야기꾼' 입니다. 조선 말기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전기수'라는 이야기 들려주는 사람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언문으로 된 소설을 읽어주는 이들은 대부분 중인 출신으로 관직에 뜻이 있어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 이들입니다. 신통역시 그들중 하나였구요. 그들의 이야기에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박씨전', '임경업전'같이 소외된 인물이 신통한 능력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마 그 증거일 겁니다.

 


 

 

 

그렇소이다. 갑오년에 시작된 혁명이 이제 다 끝났지요. 그러나 아주 끝나버린 것은 아니외다. 물이 말라 애를 태우던 가뭄이 지나면 어느새 골짜기와 바위틈에 숨었던 작은 물길이 모여들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오고, 강물은 다시 흐르겠지요. 백성들이 저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찌 죽은 이들의 노고가 잊히겠습니까?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 입니다. 하고 나서 그의 이야기는 신사께서 죽어 묻히던 그때로 돌아갔다.

 

-P.467-

 

3.

 

 시대의 피해자는 평생을 떠돌다 외로이 죽어간 '신통'뿐만이 아닙니다. 평생 떠돌수 밖에 없는 신통을 그리워하며 언제쯤 좋은날이 올까 기다린 '연화'도. 그녀의 어머니 '월선'과 신통의 또다른 여인 '백화'도, 좋은 세상을 그리다 죽어간 만복과 그의 동지들도 모두 시대의 피해자 였습니다. 행복하고 싶었던 그들의 삶은 끝까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수백종의 언패 소설과, 판소리 대본과 민담, 민요 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 황석영이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 낸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간 민중들의 발자취를 읽어내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책을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는데요. 한일회담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던 이력들이 얼핏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신통'의 모습과 닮은것도 같아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신통'의 삶이 이후 한국의 근 현대사에서 역시나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여울져가는 저 물길들의 소리를 나는 듣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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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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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진영 간의 전쟁이 있어. 한쪽은 안보기관들이야. 그들은 지금의 체제 안에서 이 지능 강화기술을 이용하고, 되도록 독점하려고 하지. 다른 한쪽은 강화인간들이야. 이들은 인류 공동의 운명을 걱정해. 그래서 이 기술이 사회를 파괴하기 전에 이 기술을 이용해서 사회를 개조하려고 하지. 자, 마리노. 내 질문은 이거야. 이런 전쟁이 있다면 자네는 누구 편에 서겠나?"

 

-P.45-

 

1.

 

 M.C.Escher's 의 작품은 참 신기합니다. 현시에서는 볼수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등장하며, 그것들이 시각적인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서클리미트 시리즈인 '악마와 천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천사가 보이기도, 악마가 보이기도 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천사와, 악마 즉 선과, 악은 항상 같은 공간에 있으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것의 판단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옥설계도>라는 책의 표지에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패턴의 연속은 제가 기존에 봤던 무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책의 표지에서 천사와 악마는 모두 인페르노라는 뒤틀린 공간안에 갇혀있었습니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을 의미합니다. 그곳에는 선과 악을 떠나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몰두했던 사람들이 떨어져 있죠. 인페르노라는 소설속 용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나만 잘살면 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 경제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사상으로 기득권은 더 큰 부자가 되고,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우리내 현실 말입니다. <지옥설계도>는 거대한 메타포의 집합체 입니다. 너무 많은 상징들이 녹아들어 있어 이사람이 도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건가 정신 사납기도 하지만, 하나 하나 그 의미를 유추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즐거웠던 책이였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초능력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자본의 완벽한 독재가 이루어진 세상. 자본은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지만 개인은 어디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세상. 절대다수가 실업과 가난과 고통의 집단적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디스토피아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초인간적 지능은 오늘날과는 전적으로 다른 대안적 사회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P.181-

2.

 

 대구의 한 호텔에서 젊은 남성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단서라고는 오래전 군용으로 사용되던 권총에 의해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 뿐. 범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본능적인 감각의 수사관 김호는 이번 사건이 쉽지 않음을 직감하며, 그 배후에 뭔가 거대한 것이 있다는 의심을 풀지 못합니다. 사건을 조사하던 김호는 마침내 그 배후에 보통사람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범국가적 조직 공생당의 존재를 알게되는데요. 진실에 다가갔다고 생각할때,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한편 강화인간이자, 피살당한 이유진의 측근 준경은 살인범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인페르노 나인’이라 부르는 최면 세계로 들어가, 전장의 한복판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되지요. 김호에게 주어진 15시간의 급박함과, 준경이 살아가는 150년의 긴 고통은 구성에 있어,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그러한 설정은 두 세계의 다르면서도 닮은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인페르노라는 가상의 세계와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그들의 비전과 허영심은 어제의 천사가 오늘의 악마가 되는 역사의 변증법에 뒤틀렸다. 인민의 뜻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했던 나라는 괴물이 되어버렸고, 친일파 인간쓰레기들의 역겨운 나라는 신흥공업국의 빛나는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이세대 전체가 자신이 젊은 시절 마음속 깊이 증오하던 체제의 충복이 된 것이다.

 

-P.434-

 

3.

 

 

 앞에서 소설이 수많은 메타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 했는데, 이는 작품의 구성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 세계와, 인페르노라는 가상의 세계, 소설속에 등장하는 '갑오징어 먹물 리조또'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들은 비슷한듯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세계에서 선과, 악은 종이 한장 차이이며 그 기준은 인페르노라는 지옥 안에서 결정된다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너무 방대한 이야기를 한권에 책에 담아냈기에 읽는 내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살을 붙여 다른 이야기로 진행시켜 나가도 될만큼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려 하다보니, 그 정체성에 있어 모호해집니다. 내가 지금 추리소설을 읽는구나 싶다가, 한편의 판타지구나 싶은. 정신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책을 보며 얼마전 본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수많은 메타포와 환생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음에도, 그 정신없이 진행되는 여러개의 이야기로 인해 영화가 끝난 후에 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실험적인 방법으로로 현실의 지옥을 낯설게 그려낸 이야기는 즐거웠지만, 난해했습니다. 실험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과거 <영원한 제국>처럼 깔끔하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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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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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즉 이 서양식 건물은 주택가 속에 완전히 매몰된 것이다. 이래서야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차라리 도시 안에 점점이 흩어진, 사방이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신사나 무덤을 찾아내는 편이 간단하겠다. 수수께끼는 풀렸지만 더 큰 의문이 떠올랐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폐가 같은 집은 이 부근에도 몇 채인가 있다. 하지만 이것과 같은 상태에 처한 집은 본 적이 없다. 마치 이 집 자체를 가둔 것처럼, 마치 이 집을 통째로 봉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집으로 집을 숨겼다.

 

-P.38-

 

1.

 

 유령이 나온다는 집의 소문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흔한 괴담입니다. 유럽의 서양식 저택에서도, 한국의 기와집에서도, 현대인들의 주거지 아파트에서도 유령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는 쉬이 들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 집이라는 공간이, 희미하게나마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특정한 기운이 되고, 그 기운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럴싸한 이야기로 재탄생 되는 것이죠.

 

 미쓰다 신조의 <기>은 한스미디어에서 출간된 '작가시리즈'입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로 푹 빠져버려, 이 작품 역시 꼭 읽어봐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출간되고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읽게되었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와 '호러'의 융합을 지향하는 작가의 기본 마인드는 '도조 겐야'시리즈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 구조에 있어 무척이나 난해합니다. 일단 작가 본인인 '미쓰다 신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본인의 상황을 캐릭터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잡지에 기고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그가 집필하고 있는 작품이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모두 실제 '미쓰다 신조'가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소설 밖의 작가 미쓰다 신조, 소설 내의 작가 미쓰다 신조, 소설 내의 미쓰다 신조가 지은 작품은 얽키고, 설켜 무척이나 어지럽게 느껴집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집에 얽힌 비밀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하고, 두렵게 만듭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확실히 소설을 쓰다 보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도 그렇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연재를 하면서 점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쓰면 쓸수록 어쩐지 들어가면 안 되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 줄 쓸 때마다..... 한 문단을 쓸 때마다..... 한 회 분량을 쓸 때마다.....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곰팡이나 잿물 같은 것이 서서히 몸에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최근에야 겨우 그 곰팡이나 잿물 같은 것이 사실은 공포라는 감정이 아닐까, 하고 깨닫기 시작했다.

 

-P.169-

2.

 

 미스터리 잡지의 편집자이자, 아마추어 작가인 미쓰다 신조. 어느날 그는 지인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미스터리 계열 문학상에 응모했냐는 물음에, 그는 계획은 있지만 아직 응모는 하지 않았다 답하는데요. 전화를 건 상대는 '미쓰다 신조' 본인의 이름으로 응모한 작품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누군가의 장난이려니 넘어가지만 이는 소름끼치는 사건의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평소 서양식 저택에 관심이 많았던 '미쓰다 신조'는 새로운 작품의 구상을 위해 '인형관'으로 이사를 합니다. 주택가에서 완전히 매몰된 듯 보이는 집은 무척이나 오싹한데요. 호러소설을 집필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장소를 만난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형관에 얽힌 끔찍한 사건을 전해듣게 됩니다. 한 건축학 교수에 의해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그대로 옮겨온 집은, 네명의 일가족이 일가족이 참살당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이 옮겨진 후에도 그 비극은 계속 이어져 이후에 살게된 다른 가족들 역시 끔찍한 죽음을 맞는데요. 그 집의 현재 주인이 바로 '미쓰다 신조'인 겁니다. 집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이한 일들은 더욱 빈번히 발생합니다. 그리고 어느순간 소설속 인물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묘하게 맞아 떨어져감을 느끼게됩니다.

 

 

 

어째선지 가족 네 명만 살고, 어째선지 7이라는 주기와 관련된 해에, 어째선지 낯선 청년이 한 명 나타나, 어째선지 일가족을 참살하고, 어째선지 막내아들만 살아남고, 어째선지 그 소년은 정신이 이상해지고,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런 무대가 펼쳐진 불길한 집에 미혼 남자가 들어오고 말았다.

 

...

그렇게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마침내 기준에 맞는 가족이 이사를 왔다. 이후 7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참극은 두 번 되풀이 된다.

 

-P.292-

3.

 

 사실 읽기가 편한 책은 아닙니다. 시점은 정신없이 바뀌고, 전문적이기에 낯선 동인지와,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독창적입니다. 반복되는 시점에 조금만 적응하고 나면, 서서히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어느순간 그런 낯섬이 현실과, 소설 속, 소설 속 또다른 이야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가는데요. 그 환상적인 세계에서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공포는 그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없어 더욱 소름끼칩니다.

 

 사실 어떤 이야기던, 열린 결말보다는 작가의 견해가 반영된 하나의 뚜렷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기관>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0점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무엇하나 뚜렷하게 드러나는 바가 없으며, 결말조차 어느곳 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읽는 내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생략과,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는 '인형관'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더욱 두렵게 느껴집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속 이야기인지 그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는, 설득력은 부족했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작가 시리즈'의 다음이야기가 더욱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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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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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아이를 시설에 맡기지도 않아. 제 자식은 책임지고 제 손으로 키우지. 그게 상식이잖아.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집사람은 그걸 몰라. 하지만 당신은 신문기자잖아. 세상의 상식이 뭔지 판단할 수 있는 교양이 있잖아."

"보육원 아이들은 처음부터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란 거야?"

 

-P.22-

1.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를 참 좋아합니다. 데뷔작 <고백>이 주는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 이후의 작품들이 저평가 되는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의 작품들도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취해 재밌게 읽었습니다.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인물 시점과, 조곤조곤 진실을 이야기하는 서정적인 문체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매력입니다. 얼마전 <왕복서간>이 출간되어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또다른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경우>입니다.

 

 사리나 도리, 놓이게 된 형편이나 처지를 의미하는 '경우'는 작품내에서 인물들의 엇나간 운명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단어입니다. 비슷한듯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경우'에 있어 큰 차이를 보냅니다. 이러한 차이는 악의를 키우고, 그 악의는 뜻밖의 사건을 만들어 내는데요. 역시나 '미나토 가나에'스러운 분위기로 이야기는 차분히 진행됩니다.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도, 깨닫지 못하면 죄가 되지 않는 걸까?

깨닫지 못하면 죄가 되지 않는 걸까?

잊어버리면 죄가 되지 않는 걸까?

죄가 되지 않으면 벌받을 일도, 속죄할 필요도 없이 태연한 얼굴로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걸까?

아니, 용서받을 수 있을 리 없다.

 

P.85

 

2.

 

 정치가의 부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코와, 싱글 생황을 즐기며 살아가는 기자 하루미. 책은 두 주인공의 반복되는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성격도, 가치관도 얼핏 상반되 보이는 두 여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데요. 둘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불우했던 가정환경입니다. 요코는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키워졌고, 하루미는 고아원에서 성장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의 아픈 구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감싸주며 성장해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요코의 책 <파란 하늘 리본>을 인터뷰하는 하루미의 시점으로 시작됩니다. 인터뷰를 하던중 요코는 한 중년의 여성을 보며, 그녀가 자신을 미행하는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곧이어 요코의 아들 '유타'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팩스를 보낸 범인은 '진실을 공표하라'는 아리송한 말만 남기는데요. 요코는 어떤 진실을 의미하는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의심가는 모든 행동들을 기억하며 요코는 생각지 못했던 진실들을 알게 됩니다.

 


 

 

 

그날, 제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면, 오늘은 제 처지와 맞서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P.166-

 

3.

 

 앞에서 '미나토 가나에'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뻔한 그녀만의 색에 조금은 질리는것도 사실입니다. 금방 어떻게 사건이 진행될지 머릿속에 상상이되고, 그 추측이 대부분 맞아떨어집니다. 미스터리 장르를 읽는 이유중 하나는 뒷통수를 맞은듯한 짜릿한 반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반전이 느껴지지 않았던 작품은 미스터리보다 드라마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경우>는 영상화를 염두하고 만든 작품이기에, 사건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됩니다. 쉽고 명료한 문장은 책을 빠르게 넘기게 했지만, 그만큼 휘발성도 강했습니다.  아이가 납치된 긴박한 상황에서 한 여인의 진실찾기는 참으로 버겁습니다. 진실과 관련된 단서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치부를 샅샅히 드러내야 하는 어머니의 모성은 무척이나 애뜻해야 하는데, 사건 바깥의 독자로서는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였습니다. 이제는 다른 색깔을 보여줄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건의에 힘을 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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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가득한 심장
알렉스 로비라 셀마.프란세스 미라예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비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그렇지만 그 헌겊 별들은 의미가 있었다. 그것들은 큰 슬픔에 빠져 있는 누군가, 생명의 눈을 감았지만 다시 그 눈을 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누군가의 밤하늘을 환하게 밝혀주는 창공에 빛나는 별들이었다.

 

-P.15-

 

1.

 

 아주 예쁜 책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별이 가득한 심장> 이라는 제목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아기자기한 삽화들과, 가슴 설레는 이야기도 무척이나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 책이였습니다. 별과, 사랑이라는 앙증맞은 소재들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은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작년에 읽었던 <쥬제페, 사로잡힌 남자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작품은 좀 더 단순한 플롯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더 예쁩니다. 사랑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책을 덮는 순간 더욱 진한 감동을 선물하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사랑의 의미가 점점 쇠퇴하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마 탄 왕자나 아름다운 공주 모두 우리 내면에 살고 있단다." 주방장이 결론을 내리며 미셸을 놓아주었다. "이게 바로 매력의 비밀이지. 본인이 개구리라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널 사랑하지 않을 게다. 이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경구가 있단다. 그대가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삶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P.50-

 

2.

 

  책은 한 소년이 각기 다른 사랑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 후,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 위치한 고아원에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삶의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는 소년이 있으니 바로 주인공 '미쉘'입니다. 고아인 소년이 그렇게 밝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이 가진 소중한 보물 '에리' 때문인데요. 어린시절부터 떨어지지 않고 지내온 두 사람은 고아원의 둘도 없는 단짝입니다. 하지만 어느날 '에리'가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되며 '미쉘' 역시 절망에 빠지게 되지요. 그때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가 미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아홉 가지의 사랑을 찾아 각각 그들의 옷에서 별 모양으로 천 조각을 오려 온다면, 그 아홉 가지 천 조각을 꿰매어 '에리'를 낫게 해줄수 있다고 말입니다.

 

 '미쉘'이 찾아가는 사랑은 낭만적인 연인들의 사랑 외에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 동물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문화에 대한 사랑 등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이 폭넓은 사랑들을 하나로 묶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비밀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요. 답을 보는순간 무척이나 명쾌한 한편,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들을 하나로 묶는것은 결국 행동이고, 표현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당연히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상대방이 그 마음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처음에 등장했던 커플들처럼 차갑게 식어가게 될 겁니다.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읽은 걸 사랑해야 한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 어쨌든 책도 사람이 썼고,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때문에 독서는 곧 사랑의 행위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예술, 음악,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창조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에 접근해야만 하지."

 

-P.109-

 

3.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나,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남녀간의 에로스적 사랑이지요. 하지만 사랑의 범위를 조금만 넓게 바라봤을때,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받게되는 부모님의 사랑, 자연으로 받게되는 수많은 배려들, 내가 좋아하는 습관이나 취미까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별이 가득한 심장>이 감동적인건 이런 사랑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루며,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책은 실제로 작가가 경험한 한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하는데요. 그 곰인형의 모습이 별이 덧대진 헝겊 조각과 겹쳐져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꼭 선물하고 싶은 아름다운 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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