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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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아이를 시설에 맡기지도 않아. 제 자식은 책임지고 제 손으로 키우지. 그게 상식이잖아. 곱게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집사람은 그걸 몰라. 하지만 당신은 신문기자잖아. 세상의 상식이 뭔지 판단할 수 있는 교양이 있잖아."

"보육원 아이들은 처음부터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란 거야?"

 

-P.22-

1.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를 참 좋아합니다. 데뷔작 <고백>이 주는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 이후의 작품들이 저평가 되는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의 작품들도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취해 재밌게 읽었습니다.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인물 시점과, 조곤조곤 진실을 이야기하는 서정적인 문체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매력입니다. 얼마전 <왕복서간>이 출간되어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또다른 신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경우>입니다.

 

 사리나 도리, 놓이게 된 형편이나 처지를 의미하는 '경우'는 작품내에서 인물들의 엇나간 운명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단어입니다. 비슷한듯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경우'에 있어 큰 차이를 보냅니다. 이러한 차이는 악의를 키우고, 그 악의는 뜻밖의 사건을 만들어 내는데요. 역시나 '미나토 가나에'스러운 분위기로 이야기는 차분히 진행됩니다.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도, 깨닫지 못하면 죄가 되지 않는 걸까?

깨닫지 못하면 죄가 되지 않는 걸까?

잊어버리면 죄가 되지 않는 걸까?

죄가 되지 않으면 벌받을 일도, 속죄할 필요도 없이 태연한 얼굴로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걸까?

아니, 용서받을 수 있을 리 없다.

 

P.85

 

2.

 

 정치가의 부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요코와, 싱글 생황을 즐기며 살아가는 기자 하루미. 책은 두 주인공의 반복되는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성격도, 가치관도 얼핏 상반되 보이는 두 여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데요. 둘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불우했던 가정환경입니다. 요코는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키워졌고, 하루미는 고아원에서 성장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의 아픈 구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감싸주며 성장해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요코의 책 <파란 하늘 리본>을 인터뷰하는 하루미의 시점으로 시작됩니다. 인터뷰를 하던중 요코는 한 중년의 여성을 보며, 그녀가 자신을 미행하는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곧이어 요코의 아들 '유타'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팩스를 보낸 범인은 '진실을 공표하라'는 아리송한 말만 남기는데요. 요코는 어떤 진실을 의미하는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의심가는 모든 행동들을 기억하며 요코는 생각지 못했던 진실들을 알게 됩니다.

 


 

 

 

그날, 제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면, 오늘은 제 처지와 맞서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P.166-

 

3.

 

 앞에서 '미나토 가나에'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뻔한 그녀만의 색에 조금은 질리는것도 사실입니다. 금방 어떻게 사건이 진행될지 머릿속에 상상이되고, 그 추측이 대부분 맞아떨어집니다. 미스터리 장르를 읽는 이유중 하나는 뒷통수를 맞은듯한 짜릿한 반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반전이 느껴지지 않았던 작품은 미스터리보다 드라마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경우>는 영상화를 염두하고 만든 작품이기에, 사건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됩니다. 쉽고 명료한 문장은 책을 빠르게 넘기게 했지만, 그만큼 휘발성도 강했습니다.  아이가 납치된 긴박한 상황에서 한 여인의 진실찾기는 참으로 버겁습니다. 진실과 관련된 단서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치부를 샅샅히 드러내야 하는 어머니의 모성은 무척이나 애뜻해야 하는데, 사건 바깥의 독자로서는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였습니다. 이제는 다른 색깔을 보여줄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건의에 힘을 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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