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허방을 짚고 넘어질 뻔하였습니다. 급하게 서둘렀던 탓입니다. 경사가 진 산 중턱 비탈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는 마침 관리가 잘 된 가족묘 두 기가 서 있는데 묘를 관리하는 듯한 노인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올라 묘 주변의 잡초를 뽑고, 파인 곳을 돋우고, 봉분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등이 굽은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이는 일들을 거뜬히 해내면서 소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묘 앞의 작은 공터에 호박을 심어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물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 산을 올라 호박 구덩이 물을 주는 모습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노인은 새벽부터 산에 올라 묘를 관리하다가 '어이쿠!' 하고 넘어질 듯하다가 멀쩡히 일어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넘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말입니다. 노인의 미소 너머로 매미가 '맴맴' 기를 쓰고 울고 있었고,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묘 주변에 쪼그려 앉은 채 열심히 잡초를 뽑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인은 지금 잡초 뽑기를 핑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몰래 하곤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그렇게 죽음과 친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게 되었을 때, 당황하거나 불필요한 거부와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무던히 죽음과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또 해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산을 오가며 마주치는 저 노인처럼 말입니다.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불필요한 여자>를 읽고 있습니다. 요르단 암만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섯 편의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썼고, 화가로도 활동하면서  세계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글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에 나를 맡겼다.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이다. 나는 그 안에서 놀고, 요새와 성을 쌓고,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놀이터 바깥의 세상이다. 나는 눈앞의 세상에  온순하게, 그러나 관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적응해왔다. 모래의 비유를 변형해 보자면 문학은 내 모래 놀이터, 현실 세상은 나의 모래시계이다. 모래는 한 톨 한 톨 빠져나간다.   문학은 내게 삶을 주고, 삶은 나를 죽인다."  (p.16)


무척이나 덥고 습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짜증이 많아지는 요즘, 주식 시세마저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표정은 울상입니다. 현 정부가 잘못한 일은 주식의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하는 국민 대다수에게 주식 투자를 알게 모르게 권유하고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주가가 이렇게 하락하였을 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알지 못한 채 마냥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투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언론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묻지마 투자'에 뛰어드는 게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결과는 냉혹하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주가 하락기를 통하여 뼈저리게 겪게 될 것입니다. 주식 투자는 사실 원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투자 방식임을 이번 기회에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온종일 주식 시세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는 게 우리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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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삶의 여백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김신지 지음 / 잠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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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내가 그와의 어떤 추억이나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추리소설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하여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몇몇은 나 역시 읽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소설에 열광하여 갑자기 그의 열혈팬이 되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그는 웬만한 작가들이 따라잡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소설을 써왔던 까닭에 서점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에는 언제나 그가 쓴 새로운 소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의 소설이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열혈 독자들이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을 몇십 년 지켜보는 동안 나에게도 그의 이름이 친숙하거나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랬던 작가였기에 그의 별세 소식은 조금 느닷없었고, 소식을 듣자마자 맥이 탁 풀리면서 '아, 한 세대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던 그가(그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였다.) 소설가라는 직함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는 것은 꽤나 신선하고 멋진 일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비전공자이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던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를 쓴 김신지 작가 역시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하여 작가가 된 케이스는 아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을 시작해서 작가로 데뷔한 경우이지만 생활에서 길어 올린 김신지 작가의 글은 적당히 신선한 반면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p.57~p.58)


우리는 종종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너의 삶은 이러이러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보고 있는 영화의 스포일러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 때마다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각자에게 펼쳐질 삶의 전개를 약간의 허풍을 섞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들 각자의 마지막이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평안함 속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어도 우리는 지금 넘고 있는 삶의 고비들이 전보다 한결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렇게 쉬지 않고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그저 창밖을 더 바라보고 싶었던 그날 아침처럼, 내가 바라는 건 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없을 땐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지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여유를 마음에서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문제는 '생산성'이라고(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말이다), 예전 같으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나무랄 이유부터 찾았을 텐데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힘들다는데 왜 그 감정을 저울에 올려놓아야 하나. 일에 마음이 계속 깎여나가는데도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해도 되나 망설이며 살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자주 겪는 일처럼. "아프면 말씀하세요."라는데 얼마나 아파야 손을 들어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눈물이 흐를 때까지 참는 버릇. 내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견뎌보는 마음. 참으면 복이 안 오는데. 병이 오는데."  (p.163~p.164)


1부 '쉬운 미움 대신 어려운 사랑을'에서 작가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고향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작가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다. 2부 '삶이 결국 우리가 쓴 시간이라면'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슴슴한 평양냉면 맛의 하루'를 살아가는, 전보다 헐거워진 자신의 삶에 대해 쓰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를 울고 웃게 하는 건 어쩌면 작가에게 많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웃의 마음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여유, 계절이 오가는 풍경들을 오롯이 가슴에 품고 와 그 풍경들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하나의 문장 속에서 요렇게 저렇게 꾸며 볼 수 있는 여유, 이웃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말 속에 깃든 사랑과 미움의 감정들을 쏙쏙 골라낼 수 있는 여유는 모두 작가가 누리는 헐거워진 시간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젠 얼굴도 희미해진 사람이 내 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해준 적 있다. 모든 흉터는 사실 훈장인 걸 아느냐고. 이 일을 겪어냈다는, 그 후로 여기까지 살아냈다는 흔적이니까. 어린 내게 '흉터'가 방향을 일러줬다는 건, 그러고 보면 삶이 건네는 짓궂은 농담 중 하나 같기도 하다."  (p.291)


나는 오늘도 텁텁한 무더위를 견뎌낸 하루의 시간에 길게 밑줄을 긋는다. 먼 훗날 내가 떠올리게 될 오늘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오늘과 사뭇 달라진 모습일 테지만, 힘들게 밑줄을 그었던 그 가상한 노력만큼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7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간, 창밖의 모든 소음이 말매미 울음소리에 묻힌다. 계절이 건네는 농담처럼 등을 타고 흐르는 무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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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나이는 대략 서너 살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는 뜻일 테지요.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공동체는 원활히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의 언어로 말하기와 쓰기를 배우고, 같은 언어로 쓰인 책을 읽고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덕목을 갖추는 것일 테지요.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가족 공동체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통하여 어린 나이부터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언어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얼빠진 어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런 얼빠진 어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인지 성인들 중에서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진 듯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동영상 쇼츠에 몰입하는 것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겠지요. 직장에서도 뒷귀가 어두운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한다는 건 꽤나 어렵고 답답한 일입니다. 하물며 방송에 출연하는 방송인이나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권의 인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그는 아마도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어 소위 정치비평가를 자처하는 방송인이나 정치인들 중 뒷귀가 어두운 사람을 너무 자주 목격하는 까닭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간결한 언어로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였지만, 소위 정치평론가라고 하는 작자들 대부분은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거나 엉뚱한 의미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치원만 제대로 나왔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은 없는 듯 보였는데 성인도 훌쩍 지나 장년이나 노년에 접어드는 그들이 그렇게 쉬운 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라면 반드시 ~~한다'라는 조건문에서 앞의 조건이 완성되어야 뒤의 문장이 성립하는 게 당연한데 이마저도 무시한 채 뒤의 문장만 따로 떼어 인용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과 같은 행태는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1년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는 사람들인지, 만약 읽는다면 그 책도 저런 식으로 엉뚱한 해석을 동반하여 읽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문학평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던 김현(본명 김광남) 작가입니다.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만 4년의 381일치의 일기이자 유고로 남겨진 그의 저서 <행복한 책읽기>에서 작가는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정치적 언어는 그 미숙함과 어리석음에 있는 듯합니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듯한 작자들이, 타인의 말도 해석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작자들이 정치 평론도 하고 심지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정치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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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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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동안의 장맛비에 세상 쓸모없는 것 같은 미국자리공이 가슴께까지 자랐다. 키가 작은 여뀌와 달개비가 그저 자신의 푸르름만 더하는 동안 '때는 이때다' 싶은 미국자리공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쑥쑥 자라난 것이다. 장마도 막바지에 이른 지금, 나는 모처럼 보는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있는 참나리꽃 군락지에는 꽃이 만개했고, 풀숲에 웃자란 미국자리공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다. 장맛비에 쑥쑥 자라나는 저 미국자리공처럼 나도 그렇게 쑥쑥 늙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나는 장맛비에 쑥쑥 늙어가기 위해 이응준의 에세이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읽었다. 이응준의 수필은 타인의 공감에 무관심한, 지극히 사적인 사유들로 채워져 있는 까닭에 때로는 나 역시 이해하기 어려워 이해를 포기한 채 수시로 건너뛰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쑥쑥 늙어가기 위해서는 이만한 책이 없다고 수시로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헛된 믿음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아직도 누군가는 내 어린 시절의 시를 읽어 주고 있고 나는 여전히 오리무중의 모독 속에서 새로운 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제히 묘한 슬픔을 안겨 준다. 다만 나는 속삭이고 싶다. 사실상 인생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고. 인생은 순간순간 한 편의 수필(隨筆)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나 소설가나 수필가도 아닌 '수필인간(隨筆人間)'이다. 인생과 인간은 시처럼 비장하고 아름답지도, 소설처럼 풍성하고 구조적이지도 않다."  (P.84)


1부 '명왕성에서 이별'에서 작가는 16년 동안 작가와 함께하며 곁을 지켜주었던 강아지 '토토'를 떠나보낸 소회와 다른 강아지 '토토'를 자신의 반려견으로 맞게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2부 '폭염서정(暴炎抒情)'에서는 표제작이기도 한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비롯하여 '죽음에 관한 소견', '수필인간(隨筆人間)' 등의 소제목으로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고독에 대해 쓰고 있다. 3부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에서 작가는 사라져 가는 것들과 상실에 대해 쓰고 있다.


"죽음이란 위대한 무기(武器)이자 부적(符籍)이다. 죽음을 각오하면 우리는 삶에서 못 해낼 일이 없다. 그 어떤 적도 멸망시킬 수 있으며 그 어떤 재앙도 씹어 삼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다 한 뒤에 당당히 죽을 수가 있다. 우리는 이런 기가 막힌 무기이자 부적을 공평하게 하나씩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죽음은 제대로 살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P.175)


이어지는 4부 '무장시론(武裝詩論)에서는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몰래 글을 쓰기 시작하여 스무 살에 시인으로 스물다섯 살에 소설가로 등단했던 작가가 자신의 문학관에 대하여 스스로가 읽었던 책과 자신이 쓴 글들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펼쳐 보인다. 5부 '나와 바오밥나무와 하나님과'에서 작가는 식물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를 키워보라는 출판사 대표의 권유에서 비롯된 다양한 사유와 과학 및 종교 등과 연관된 희망과 절망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쓰고 있다. 마지막 6부 '성찰하는 괴물'에서 작가는 누구나 화두와 같은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이 책의 절반 정도는 죽음이 내게 가까이 와 있던 시절에 쓴 것들이다. 만약 이 책에 뛰어난 점이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인생과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이며, 신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P..12 '서문' 중에서)


장마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뭇 싱겁게만 보이던 여름이 된맛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매미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높아진 것도, 땅에 스며들었던 습기가 햇볕을 받아 일시에 날아오르는 것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제 시작되는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고 나면 이번 장맛비에 허리께까지 자란 미국자리공처럼 나 역시 쑥쑥 늙어갈 수 있을까. 늙어간다는 말에 '쑥쑥이라는 부사를 붙여 쓰지는 않지만 나는 종종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죽음을 향해 쑥쑥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아주 장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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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숲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요했습니다. 과한 습기 때문인지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걷고 있노라니 내가 마치 거대한 한증막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그 많던 새들도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피서를 떠났는지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곧 덮칠 더위를 경고하려는 듯 참매미가 이따금 '맴맴' 우닐 뿐이었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새들이 더위를 피해 멀리 여행을 떠날지라도 계절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뻐꾸기는 차마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가 봅니다. 저편 하늘에는 까맣게 먹장구름이 밀려오는데 등산로 주변으로 눈부신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땀냄새를 맡은 모기가 앵앵거리며 달려들었습니다. 운동을 마친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숲의 고요가 아파트 현관까지 따라왔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새벽 숲의 고요를 떨쳐내고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고 있습니다.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제목처럼 우리는 이 여름에 이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해묵은 기억들을 하나둘 끄집어내어 버릴 것은 버리고, 갈무리할 것은 갈무리하고, 덧칠하거나 아름답게 꾸밀 것은 한 번 더 다듬어서 이제껏 버텨온 내 삶을 위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 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물방울이 되어버린 할머니나 오이지라면 목구멍이 아리도록 가슴이 막혀오는 나나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할머니와 나의 사랑이 이렇게 뜨겁고 애달프다고.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더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이야기에 온통 상처만 남아 잇지는 않다는 거예요. 요즘에도 저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밥을 해주는 꿈.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고 장바구니에 가득 담은 찬거리를 무겁게 들고 와, 채소를 다듬고 물을 끓이고 도마를 씻고 또 칼을 닦아 정성껏 밥을 해 먹이는 꿈. 단 한 번이라도 할머니에게 밥을 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자랑 같지만' 중에서)


장마철의 눅눅하고 퀴퀴한 하루하루가 불쾌지수를 높이는 요즘입니다. 최지은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흐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흘린 눈물 한 방울로 어쩌면 보송보송한 하루를 선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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